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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벽파를 건너며 = 김정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8. 벽파를 건너며 - 기묘명현 김정
입력시간 : 2009. 07.30. 00:00



진도 벽파항 전경

36세에 접어야했던 도학의 꿈

젊은 형조판서 기개 기묘사화로 유배의 길

금산·진도·제주도 유배 중 다수의 글 남겨

 

 

 



우주는 원래부터 그 유래가 깊었으니

인생살이도 본래 떠다니는 삶이라네.

조각배 한척에 몸을 싣고 이곳을 떠나면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득 아득하구나.

渡碧波口號 도벽파구호

宇宙由來遠 우주유래원

人生本自浮 인생본자부

扁舟從此去 편주종차거

回首政悠悠 회수정유유

한 유배객이 벽파를 건너면서 시를 읊는다. 진도를 떠나는 유배객의 마음은 착잡하다. 삶이란 원래부터 부평초 같다지만 다시 의금부로 끌려가니 참 기구한 운명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는 유배객은 충암 김정(1486-1521)이다. 그는 중종 시절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주도한 사림파의 중심인물이다. 1515년 6월에 중종의 왕비 장경왕후가 왕자를 낳고 일주일 만에 산후통으로 죽은 후 괴변이 자주 일어났다. 낮에 별이 나타나 며칠씩 사라지지 않는가 하면, 발이 다섯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이에 중종은 괴이한 일들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구한다는 전교를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담양부사 박상, 순창군수 김정, 무안현감 유옥은 전라도 순창군 강천사 근처 삼인대에서 모였다. 그리고 폐위된 중종비 신씨 복위를 결의하였다.

1515년 8월8일 박상과 김정은 중종이 임금되기 전의 첫 부인 신씨 즉 조강지처를 허물도 없이 폐출한 것은 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의리를 저버리는 것으로서 신씨를 복위시키고 관련자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밀봉된 상소문을 뜯어본 중종은 너무나 당황하여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일은 조정에서 크게 논란이 일어났고 대신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명분과 실리, 이상과 현실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미 원자 아기(훗날 인종)가 태어난 마당에 신비가 복위되어 혹시 왕자라도 낳으면 어찌될 것인가. 중종도 이 상소가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박상을 전라도 남평으로, 김정을 충청도 보은으로 귀양 보낸다.

다음해 5월에 두 사람은 조광조의 간언으로 사면을 받는다. 이후 김정은 고향인 보은에서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지내는데 다시 중앙 정계에 발탁된다. 부제학, 대사헌이 되더니 33살의 젊은 나이에 형조 판서가 된 것이다.

형조판서로 임명되자 그는 그 자리를 극구 사양한다. 젖내 나는 아이가 판서의 임무를 맡는다면 조정을 심히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라며 그는 네 번이나 사퇴하였으나 중종은 끝내 그 자리를 맡긴다.

1519년 11월 15일 밤에 기묘사화가 일어난다. 신진 사림들의 현량과 설치와 위훈삭제에 위협을 느낀 훈구대신 심정 남곤 등은 그날 밤에 신무문을 들어와 중종에게 조광조 일파가 붕당 하였다고 죄상을 아뢴다. 조광조 일파의 개혁에 염증을 느낀 중종은 이들을 모두 잡아들이도록 어명을 내린다.

숙직중인 윤자임, 기준은 그 자리에서 잡히고 조광조, 김정, 김식등은 집에서 있다가 끌려온다. 영문도 모르고 옥에 갇힌 그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중종이 조광조, 김정등을 모두 죽이라는 명이 내렸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옥에 갇힌 사람들은 함께 술을 마시고 세상과 이별하는 영결식을 가진다. 이 날 밤은 유난히 하늘에는 구름이 없고 달빛만이 뜰에 가득하였다 한다. 감옥 안에서 김정은 “황천으로 가는 오늘 밤. 괜스레 밝은 달이 인간을 비추는 구나” 하니, 김구가 “ 흰 구름 속에 뼈를 묻으면 그만인 것을. 공연히 흐르는 물만 남겨두어 인간으로 향하게 하네” 라고 화답한다.

다음날 조광조와 김정은 사형을 명받는다. 다행히도 성균관 유생들이 시위를 하고 일부 중신들이 간언을 하자 두 사람은 죽음만은 면한다. 조광조는 전라도 능성현(지금의 화순군)으로, 김정은 금산으로 유배된다. 그런데 12월 중순에 능성에 유배중인 조광조에게 사약이 내려지고 김정은 외딴 섬 진도로 이배된다.

1520년 5월에 김정은 다시 의금부로 압송이 된다. 금산에서 유배중일 때 병중인 모친을 보기 위하여 금산군수에게 잠시 말미를 얻어 배소를 이탈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의금부로 끌려간 그는 국문을 당한다. 피투성이 상태에서도 그는 여러 번 죄 없음을 상소를 하여 겨우 죽음만은 면하고 중종은 6월17일에 곤장 백대에 제주도에 위리안치(圍離安置)하도록 어명을 내린다.

김정은 제주도로 유배가기 위하여 다시 전라도 땅을 밟는다. 그가 순창 고을을 지나갈 때 순창의 백성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술과 반찬을 앞 다투어 가지고 와서 길을 막았다. 그리고 “우리 고을 사또, 우리 고을 사또”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소달구지가 못가게 하였다.

그는 제주도 가는 포구인 해남군 화산면 관두포 바닷가에 도착한다. 길가의 소나무 밑에서 쉬면서 시 3수를 짓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희게 한 다음 거기에다 적는다.

한 여름 길가다가 목말라 죽어가는 백성 덮어 주려고

멀리 바위 골짜기 떠나 긴 몸을 구부렸네.

도끼 들고 날마다 찾아오고, 장사치는 불 질러 태우는데

그 공로를 알아주는 사람, 요즘 정치와 같아 아무도 없어라

바닷바람 불어오니 구슬픈 소리 멀리 들리고

산위에 높이 뜬 달 외로이 파리하게 비치네.

곧은 뿌리 샘 아래 박혀 있으니

눈서리 몰아쳐도 그 기상 변함없네.

가지는 꺾이고 잎은 나부끼니

이 몸 도끼와 함께 모래 위에 눕히려 하네.

기둥이 되려던 바람은 끊겼지만

가지 얽혔어도 바다 신선의 뗏목이 될 만하네.

때를 잘못 만나 피어나지도 못하고 꺾이는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지는 꺾이어도 뿌리는 뽑히지 않으리라는 기개를 보이는 시이다. '기묘록'에는 나중에 이 시를 읽은 선비들이 너무 슬퍼서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전한다.

제주에 도착한 김정은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가 집 주위에 쳐지는 귀양살이 모습을 시로 읊는다.

세상과 끊겨져 찾는 이 없고

외로운 신하는 가시 울타리 집에 둘러싸여 있네.

꿈속에서는 변방인 듯 가까운 것 같았는데

일하는 아이 종을 형제처럼 의지하네.

근심과 병은 귀밑으로 들어오고

바람과 서리 차건만 옷도 주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임금은 명월일런가.

하늘가에도 멀리 빛을 부치네.

위리안치 중에도 그는 제주도에서의 일상에 대하여 글을 남긴다. 제주도의 지형 기후 동식물 특산물을 파악하고 특이한 가옥구조와 언어, 무당이 많고 뱀을 섬기는 신앙이 성행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폈으며, 주민의 생활상과 관원의 횡포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귀양살이 하는 자신의 심정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이 책이 바로 '제주 풍토록'이다.

1521년 10월17일 신사무옥의 여파로 김정은 금산 유배지에서 도망했다는 죄목으로 자살하라는 어명이 내려진다. 사약을 받은 순간 그는 얼굴빛도 변치 아니한 채, 술을 가져오게 하여 통쾌하게 마신다. 그 다음 제주목사의 손을 잡고 조정의 일을 묻고, 형과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어 노모를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고, 절명시를 짓는다.

외딴 섬에 버려져 외로운 혼이 되려하니

어머님 두고 감이 천륜을 어기었네.

이런 세상을 만나 내 몸 죽지만

구름을 타고 가서 상제문 지나갈까

굴원을 따라가서 높이 거닐기나 할까

긴 밤 어두워라 어느 때나 밝으려나.

일편단심 빛났건만 쑥대에 묻히고.

당당하고 크게 품은 뜻 중도에서 꺾이는구나.

아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라.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벽파항을 간다. 김정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김정이 쓴 시 ‘벽파를 건너며’가 붙어 있다는 벽파정(碧波亭)을 찾았으나 정자의 흔적은 아예 없다. 벽파항 역시 간혹 제주도 가는 배가 다니고는 있으나 포구로서의 분주한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로지 언덕위에 있는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만이 410여 년 전의 명량대첩의 역사를 말하여 주고 있다.

내친김에 남종화의 본산지, 소치 허련이 살았던 집 운림산방을 들렀다. 그런데 운림산방 안에 있는 진도역사유물전시관 한 곳에서 김정을 만났다. ‘진도문화와 유배’ 판에 김정의 약력과 함께 ‘벽파를 건너며’ 시가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36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과 이별한 기묘명현 김정. 요순시대를 만들고자 하는 도학의 꿈, 백성을 주인처럼 모시고자 한 민본의 뜻은 한반도 끝 진도 바닷가에 묻혀있는 것일까.

김세곤(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segon53@hanmail.net

다음 회는 '적벽에 새긴 도학의 꿈, 신재 최산두 - 화순 적벽, 물염정, 도원서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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