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를 당하여 , 박상의 편지글...

기묘사화를 당하여 - 눌재 박상,  윤구 ․ 신잠, 그리고 고운에게 시를 보내다.

   1519년 11월 기묘사화가 일어난 때 눌재 박상(1474-1530)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광주에서 삼년상을 치르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화를 면하였지만 기묘사림들이 고난의 길을 가고 있음에 동병상련하였다. 그는 유배중인 윤구, 신잠, 그리고 낙향한 고운과 위로의 시를 주고받는다.

어떤 나그네가  금강 錦水의 구석에서 가을을 서러워하네.

근심이 막막하더니 가슴 열리는 듯하다.

시비가 뒤섞여 황금을 녹여내고

벗들은 사라져 백골에 이끼 낀다.

외로운 울분 다만 시에 담아 노래하고

괴로운 마음 때때로 술로써 푼다.

서녘 바람에 평생의 뜻 무한하여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소리 내어 읊으리.

 

   이 시는 박상이 전라도 해남에서 유배중인 윤구(1495-1549)에게 화답한 시이다.  시에 금강이 언급된 것을 보니 1521년 충주목사 시절에 쓴 시 같다.  사림들이 모두 화를 당한 시절. 어떤 이는 사약을 받아 죽고 , 어떤 이는 유배지에서 자살을 하고, 어떤 이는 절해고도에 위리안치 되어 사는 시대,  눌재는 그 울분을 시에 담고 괴로움을 술로  달랜다. 

   

   귤정 윤구는 1516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서 주서 注書(정7품)로서 일하다가 1520년에  훈구파들에게 핍박을 당하여 해남으로 유배를 온다. 

   그가 귀양을 오게 된 사연을 살펴보자.  좌의정 김응기가 면직되기를 청해서 임금의 윤허를 얻었다. 그는 왕명을 받들고 영의정 정광필과 우의정 신용개의 집에 가서 정승 될 만한 사람을 고르고( 이를 복상이라 한다) 승정원에 돌아왔다. 승지 박세희가 맞이하여 묻기를, “오늘 복상된 사람은 안당安塘 어른이겠지.” 하였다. 그가 복명 復命하기를, “영의정 정광필은, ‘마음가짐과 일처리 하는 것은 오직 안당이 첫째다.’ 하였고, 우의정 신용개는, ‘만약 직책의 차례를 말한다면 김전ㆍ이계맹이 있지만 안당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하여, 드디어 안당을 정승으로 삼았다.

   기묘사화가 일어난 뒤에 당시의 재상들이 ‘이전에 복상할 때에 우의정 신용개가 이계맹을 천거하였는데, 윤구가 박세희의 말을 듣고 다르게 복명하였다.’ 하여 윤구를 추문하였다.

   그는 해남군에서 18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다. 그 후 1538년에 복직되어 전라도사 全羅都事를 거쳐 홍문관 부교리에 올랐다.

   윤구는 최산두 ․ 유성춘과 함께 호남 3걸로 이름이 났으며 퇴계 이황과 같이 호당에 뽑혀 사가독서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찍이 초나라 왕 의제(義帝)를 위해 발상(發喪)하는 글을 지었는데 온 세상에 전해졌다. 뒤에 참판 송재 나세찬(1498-1551)이 중국에 가서 《향시록(鄕試錄)》을 보니 귤정이 지은 글이 그 중에 실려 있었다.

(나세찬은 1547년에 성절사로 연경에 다녀왔는데 이때 윤구의 글을 본 것 같다.)

   <기묘록>은  이 향시는 양광(兩廣 중국의 광동성과 광서성)이 아니면 서북 지방의 과시(科試)였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윤구의 글이  어느 경로를 좇아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윤구는 해남윤씨 종조 어초은 윤효정의 아들이다. 윤효정은 금남 최부에게 공부를 배운 사람이고 최부와는 동서간이다. 원래 윤효정은 강진군 도암면에 살았는데 해남의 대부호인 호장 정귀영의 사위가 되어 재산을 물려받았다.

   윤구의 묘는 해남군 북일면 갈두리에 있고,  해남 해촌사에는 그와 그의 증손자 고산 윤선도의 신위가 함께 모시어져 있다. 

   이 시절에 눌재 박상은 장흥에 유배중인 영천자 신잠(1491-1554)과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비록 깊은 산에 숨어 이름 없이 산다 한들

천기 변할 때는 또한 가슴 조인다.

밤사이 비바람이 얼마나 휘몰아쳤을까.

아름다운 꽃 뜰에 가득 떨어져 눈물겹구나.

雖遁深山晦姓名      수둔심산회성명

有時天變亦關情      유시천변역관정

夜來風雨知多少      야래풍우지다소

揮淚佳花落滿庭      휘루가화낙만정

   이 시는 눌재가 전남 장흥에 유배되어 있는 신잠의 시를 읽고 쓴 100구의 절구 가운데 한 수이다. 사화로 참사를 당한 사림들을 모진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에 비유하여 애통해 하는 시이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지조론>을 쓴  조지훈의 시 ‘낙화’가 생각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중략)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신잠은 1519년 현량과에 천거를 받아 벼슬하였으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 당하고 진사 시험 합격증 까지 몰수당한다.

홍지(대과 합격증)는 거둬가고 백패는 잃었으니 /  紅紙已收白牌失

한림과 진사가 모두 허명일세. /  翰林進士摠虛名

지금부터는 아차산 아래 살 것이니 /  從此峨嵯山下住

산인이란 두 자는 뉘 다툴 것인가. /  山人二字孰能爭

   그는  1521년 신사무옥에 휘말리어 장흥에서 유배 중이었다.

신사무옥은 1519년 기묘사화로 몰락한 사림세력들이 뿌리 채 제거되는 사건이다. 송사련(宋祀連)은 그의 처남 정상(鄭鏛)과 모의하여 외사촌 안처겸(安處謙), 안처근 등이 무리를 모아 변란을 일으키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무고한다. 송사련은 남곤·심정에게 아부하여 출세하기 위해 안처겸의 모친상 조객록(弔客錄)과 발인할 때의 역군부(役軍簿)를 가지고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반란을 꾀하려 한다고 고발했다.  그 결과 안당· 안처겸· 안처근(安處謹)을 비롯하여 권전·이경숙·이충건(李忠楗)·이약수(李若水)·조광좌(趙光佐) 등 많은 사림들이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수십 년 후에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심정·남곤 등의 훈구파 세력들이 사림계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조작사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조작이 있다.)

    신잠도 신사무옥으로 피화를 당하였다.  송사련(宋祀連)이 바친 장부에 신잠의 이름이 들어 있어 그는  여러 차례 형신(刑訊)을 더한 뒤에 장흥(長興)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 경기도 아차산 근처로 이배하여 20년 가까이 유배살이를 한다.  나중에 그는 복직되어 계자를 뛰어넘어 태인 현감(泰仁縣監)으로 제수된 후 여러 번 전임되어서 상주 목사(尙州牧使)가 되었는데, 백성 다스림이 첫째라 하여 통정(通政)으로 승진한 다음 죽었다.

그는 신숙주의 증손자이다. 시율(詩律)을 잘 짓고 행서(行書)를 잘 쓰며 대[竹] 그림을 잘 그렸으므로 세상에서 삼절(三絶)이라고 일컬었다. 4월에 국립고아주박물관의 탐매전시회에서 그의 <설중탐매도 雪中探梅圖>를 본 적이 있다. 

   1554. 12.13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신잠의 졸기를 읽어보자. 

상주 목사(尙州牧使) 신잠(申潛)이 졸하였다. 신잠은 자질이 영민하고 서화(書畫)에도 솜씨가 있었으며 글을 잘 지었다. 처음에 현량과(賢良科)로 진출(進出)하였다. 기묘년의 화로 폐치된 지 20년 동안에 아차산(峨嵯山) 밑에다 거처를 정하고 혼자서 서화를 즐기며 장차 일생을 마칠 듯이 했었는데 인종때에 특별히 6품직을 제수하였다.

   벼슬살이를 부지런하고 조심스럽게 하여 일찍이 일 그르치는 때가 없었고 상주 목사가 되어서는 은혜로운 정치를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부모처럼 친애하였다. 염근(廉謹)으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졸하였다. 애석하다. 재능을 크게 펴보지도 못했는데 하늘이 너무 빨리 빼앗아갔다.

   한편 박상은 광주에 사는 고운(1479-1530)과도 교류를 한다. 고운이 눌재에게 편지를 보내와 답장을 한 것이다.  고운은 자(字)는 언룡(彦龍)이다. 151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하다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광주 압보촌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 낙향 중이었다.

비바람에 세상은 비록 어두운 것 같지만,

닭 우는 소리 새벽을 어기지 않네.

강한 창자 원래 세속을 미워하기 마련이니

냉랭한 얼굴에 어찌 봄기운이 생기리오.

우아한 글 좋은 선비를 만나서,

그 시편이 고인을 위로해주네.

그대의 아름다운 글 무엇으로 답례하리.

오므라드는 손에 부끄러움이 다시 새로워라.

   사화가 몰고 온 비바람이 세상을 휘저어서 칠흑처럼 캄캄하다. 그런 암흑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닭은 울어서 새벽을 알린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1970년대에 한 때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민주화를 아무리 막아도 민주주의는 반드시 꽃이 핀다.’라는 희망과 신념과 염원을 담은 말이었다.

   490여 년 전 호남의 비분강개한 선비 박상도 그의 친구 고운에게  ‘비바람에 세상은 비록 어두운 것 같지만, 닭 우는 소리 새벽을 어기지 않네.’란 글을 보내면서 지금은 절망이 와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 하고 있다. 동토의 땅에서도 봄은 오리라는 염원을 담은 격려의 이야기요, 서로간의 다짐이다

   고운은 호랑이 그림을 잘 그렸는데 간송미술관에 맹호도가 소장되어 있다. 그의 묘는 송학산 아래에 있는 데 1986년에 묘를 이장하다가 묘에서 복식, 만장 등이 나와서 광주민속박물관에 민속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그의 손자가 임진왜란 때 60세의 나이에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킨 세독충정 世篤忠貞의 의병장 제봉 고경명 高敬命(1533-1592)이다.  포충사에는 고경명의 영정과 위패가 모시어져 있다.

   

   .

   기묘 사림들이 사약을 받고 유배를 가고 고문을 당한 그 시절, 사림의 씨가 거의 다 말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림들이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세상을 기약하고 사림의 씨를 뿌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세월이나 낚으면서 잘못된 세상을 한탄하는 일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변절하여 세상과 영합하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