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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충남 예산 4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충남예산


일본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매헌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덕산이다. 덕산 읍내에서 수덕사 방향으로 2km 정도 떨어진 시량리에는 매헌을 모신 충의사(忠義祠)가 있다. 이 유적지는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널따란 주차장이 마련된 쪽에 기념관 지역과 본전 지역이 있고, 국도 건너에 생가 지역과 성장가 지역이 따로 있다. 굳이 관람 순서를 꼽자면 우선 사당에 들러 향을 사르고 난 후, 유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에 들른 다음, 생가 지역과 성장가 지역을 여유롭게 거닐면서 국가의 의미와 윤 의사의 일생을 짚어볼 수 있으면 좋다. 육교를 통해 길을 건너야한다는 아쉬움이 있으나 제법 짜임새 있게 펼쳐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휴식삼아 즐길 수 있는 산교육 장인 셈이다.

▲ 덕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생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의사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방으로 냇물이 흘러 섬처럼 보이는 생가 지역은 윤봉길 의사가 도중도(島中島)라고 명명하였다. ‘한반도 가운데 섬’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윤봉길 의사가 출생하여 4세 때까지 살던 광현당(光顯堂)과 망명 전에 야학을 운영하던 부흥원 등이 있다. 성장가 지역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의 저한당(狙韓堂)이 중심이다. 윤봉길 의사는 4세 때부터 망명 전인 23세 때까지 여기서 기거하며 농촌 계몽과 부흥에 힘썼다. 야학회와 독서회를 조직해서 농촌의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1929년에는 농촌 발전을 위하여 월진회를 조직하였다.

보부상 유품전시관은 충의사 성역 안에서는 성격이 조금 다른 듯이 보이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보부상 관련 유품 28점이 있으며, 인감 6개 도장 1개 유건 3개 을람상자 보 1장 청사초롱 1쌍 공문 15권이 있다. 이는 예덕상무사 보부상의 조직과 기능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다. 예덕상무사는 조선시대 예산 인근 고을의 삽교, 당진, 홍천시장을 아우르던 보부상 집단이다.

여기서 잠깐 보부상(褓負商)에 대해 살펴보자. 보부상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교환경제를 매개한 전문적인 행상인(行商人)을 말한다. 원래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의 두 개의 상단(商團)으로 구분되었고, 취급하는 물품도 서로 달랐다. 조선시대엔 부보상(負褓商)이라 했다.

역사적으로 먼저 발생한 부상은 나무그릇·토기 등과 같은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녔기에 ‘등짐장수’라고도 했다. 보상은 필묵이나 금·은·동 등 비교적 값진 제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으므로 ‘봇짐장수’라고 했다. 신라시대에는 부상으로 하여금 성을 쌓을 때 필요한 돌을 운반하였다든가, 고려 공양왕 때에는 소금을 운반케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조선 말기에 들어서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들은 정치 참여도 활발히 했다. 특히 나라에 일이 발생할 때마다 통치권자 입장에서는 보부상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국가에서는 그 대가로 시장의 전매권을 주었다. 임진왜란 때는 상병권을 조직하여 운송, 가설, 축성, 통신 등 온갖 군무에 협조해 조선의 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했고, 병자호란 때도 군비와 식량을 모아서 전투에 가담하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도 강화도 보부상들이 나서서 전령, 운반 등의 일을 완수하여 정부군에 도움을 주었다. 몇 해 뒤 오페르트 일당이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 하자 예산의 보부상들은 이를 막기 위해 긴급히 출동하기도 했다. 반면에 동학혁명 당시에는 정부군에 가담해 동학군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고, 궁중 수구파가 세운 어용단체인 황국협회에도 이용당해 보부상들이 중심이 되어 테러행위를 자행하는 등 독립협회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매헌의 매운 정신과 보부상의 양면성을 생각하며 충의사를 벗어난다. 삽교읍 신리 수암산 중턱에 위치한 예산삽교 석조보살입상(보물 제508호), 봉산면 화전리 산기슭에서 발견된 예산 사면석불(보물 제794호)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산 읍내에서 1913년 5월21일 창립된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湖西銀行), 대술면 상항리에선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이남규 선생의 고택도 살필 수 있다.

이렇게 돌아서 도착한 예당저수지(禮唐貯水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는 예당저수지는 붕어찜과 소주 한 잔이 아니더라도 예산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어찌 예당저수지에서 건져 올릴 게 민물고기뿐이랴.

▲ 예산 대흥동헌 앞에 세워진 '의좋은 형제'상. 이 마을엔 에전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대흥면 사무소 근처의 대흥동헌 앞엔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있다. 바로 ‘이성만 형제 효제비’. 이제는 교과서에서 빠진 모양이지만 형제의 이야기는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밤중에 벼를 나르다 서로 만나는 ‘의좋은 형제’로 각색되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또 한 명의 매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최익현 선생의 묘소를 들렀다 예당 임존성(사적 제90호)에 오른다. 예당저수지 서남쪽의 봉수산(483.9m)에 있는 임존성은 백제 때 수도 경비의 외곽기지 역할을 한 성이다. 성벽에 서면 동북쪽으로는 무한천에서 예당저수지를 거쳐 삽교천과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홍성 시가지와 들녘, 그리고 공주 청양 부여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와 그 옛날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오는 적으로부터 공주와 부여를 방어하려면 아산만쪽에서 해로를 이용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적을 살피는 데 아주 중요한 지점에 있다.

▲ 임존성 동쪽 망루 풍경. 임존성은 아산만 쪽에서 해로를 이용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적을 살피는 데 아주 적합한 지점에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주류성과 더불어 백제 부흥군이 활동했던 곳으로, 사비성을 되찾기 위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그렇다. 임존성은 백제 부흥운동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성이었던 것이다.

서기 660년 7월18일, 사비성에서는 나당연합군의 전승축하연이 열렸다. 신라왕과 소정방 및 여러 장수들이 당상에 앉고 의자왕과 그의 아들 융은 당하에 앉아 의자왕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여러 신하들이 목이 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의자왕과 함께 당에 항복했던 흑치상지는 이를 본 후 사비성을 탈출하여 임존성에서 의자왕의 사촌인 복신, 승려 도침과 함께 나당연합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전의 불을 밝혔다. 이후 임존성은 주류성(한산, 부안, 홍성 등 다양한 설이 있음)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부흥운동의 중심 세력들은 주류성과 임존성을 거점으로 해서 한때 크게 기세를 떨쳐 부여 200여 성을 회복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왕자 풍을 맞아다가 왕으로 삼고, 사비성과 웅진성 등을 포위하여 주둔하는 당군을 괴롭혔으며, 여러 차례 나당연합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풍이 또 복신을 죽이는 내분이 생기자 부흥군은 와해되고 말았다. 나당연합군은 이 기회를 이용해 주류성을 공격했다. 풍왕은 고구려로 도망가고, 임존성을 지키던 흑치상지가 당에 투항하자 임존성은 결국 663년 11월에 함락되고 말았다.

▲ 봉수산 정상에 있는 임존성은 백제 때 수도 경비의 외곽기지 역할을 맡았다.

임존성은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가파른 경사를 1시간쯤 올라야 하지만, 내포지방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망루였음직한 동쪽 성벽에 서면 예당저수지와 예당평야, 그리고 이것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금북정맥의 산줄기들이 한눈에 내려다본다. 저 아래 벌판에서 나당연합군의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백제 부흥군을 옥죄어오던 그 마지막 날, 아마 성안에서는 끝인 줄 알면서도 항전을 불태우던 부흥군의 함성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우성이 멈추며 부여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죽어서도구천을 떠도는 부흥군의 넋일까? 성벽을 넘어온 칼바람에 길손의 옷깃이 펄럭펄럭 나부낀다. 

글·사진 민병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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