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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그림 감상

  • “현란한 색채의 바다… 숨이 멎는 듯”
  • 소설가 김미진씨 관람記
    “인상주의…아방가르드…6개 전시구역 모두 알차 놓칠 작품 하나 없는 역작”
  • 김미진·소설가
    입력 : 2006.12.22 01:02 / 수정 : 2006.12.22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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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진·소설가
    • 미술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걸까. 뭘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솔직히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들어야 하며, 사랑은 어느 정도 순결한 떨림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없는 것처럼 미술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혹여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에 현혹되어 두꺼운 미술책부터 펼쳐든 분이라면 잠시 책장을 덮고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곳부터 한 바퀴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막한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걸작전은 현대 미술의 태동기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속이 꽉 찬 ‘알짜배기’ 전시회다.

      그동안 외국의 유명한 미술관 순회 전시회라고 해서 가보면 미술책에 나와 있는 중요작품 몇 개 가져다 놓고 어중이떠중이 펼쳐놓은 예가 허다했다.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의 걸작들만 추려서 꾸민 이번 순회전은 그리스식 이오니아 원주를 재현한 입구에서부터 출구의 마지막 작품까지 작은 미술관 하나를 축소하여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기획이 돋보인다.

      전시 내용은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사실주의 회화에서부터 현대 조각의 기원을 이룩한 조각품까지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근대 조각의 선구자 로댕과 로소, 20세기 아방가르드, 북유럽의 빛,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선별된 미술품들은 동시대 남부 유럽과 북구 유럽의 화풍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술사적으로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회화의 황금기이자 격동의 시기였다. 파리를 중심으로 모여든 미술가들은 서로의 아이디어와 사상을 공유했으며 그것을 자양분으로 각자의 세계를 펼쳐나갔는데, 화단의 온갖 악평을 들어야 했던 인상주의자들은 훗날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화가들이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천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것들만 그리겠다고 주장한 쿠르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던 마네, ‘인상파’라는 용어를 탄생 시킨 모네를 아틀리에 밖으로 끌어내 생생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부댕이나 용킨트의 작품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던 당시 작가들의 고뇌를 느끼게 한다.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큰 플라타너스 나무’ ‘생 레미의 포플러’, 죽음의 그림자가 덧씌워지기 시작한 오베르 시절의 ‘애들린 라보 양의 초상’은 한 예술가의 거룩한 영혼을 느끼게 하는 귀한 작품들이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김혜수의 팜므파탈 이미지의 원형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뭉크의 ‘죄’도 빠트릴 수 없다.

      존 버거에 의해 미술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명명된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색채의 바이올린을 연주한 마티스의 작품들도 보는 이의 숨을 멈추게 한다. 한국에는 거의 한 번도 선보인 적인 없었던 뭔터나 수틴, 조지 민느의 작품들도 모처럼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예술이란 결국 어떤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적인 도치이기도 한데,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했던 미술가들이 새로움의 원천을 전통에서 찾았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통과 새로움. 적이자 동지였던 이들의 경계가 서로 주고받는 탁구공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클리블랜드 미술관전시회/조선일보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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