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2월16일에 처음으로 환기 미술관을 찾았다. ‘아침의 메아리’란 주제의 전시회를 구경하고 나서 갤러리 숍에서 카드 한 장을 샀다. 푸른 색 바탕에 점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는 카드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카드를 뜯어보았다. 이 그림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었다. 그리고 카드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70년 제1회 한국일보 주최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차지한 한국현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김환기 선생이 김광섭 시인의 시 한 구절을 표제로 삼아 뉴욕시기에 일궈낸 추상 점화의 세계를 소개한 것이다.
뉴욕의 밤하늘 아래 고향의 그리운 얼굴들을 점 하나하나로 떠올리며,
마치 성좌와 같이 무수한 점들로 가득 찬 깊고 푸른 아름다운 공간을 보여준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리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의 <저녁에>
김환기(1913-1974)는 이 그림을 구상할 때부터 친구 김광섭의 <저녁에> 시를 맘속으로 노래하였다 한다.
1970년 2월11일 일기
한국일보사로부터 내신. 한국미술대상전람회 제1회에 출품의뢰. 출품하기로 맘먹다. 이산 (怡山 : 김광섭) 시 <저녁>을 늘 맘속으로 노래하다.
시화 대작을 만들어 ‘한국전’에 보낼까 생각해 보다.
-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324에서-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청색 바탕에 점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다. 김환기는 무수하게 점 하나하나를 찍으면서 고향의 그리운 얼굴들을 생각하였다 한다. 고향은 그가 태어난 전남 신안군 안좌도인 동시에 서울이고 한국이다. 그리운 얼굴들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죽어버린 친구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 한 사람 한사람이다.
또한 이 그림에서의 점들은 윤동주가 쓴 시 ‘별 헤는 밤’에서의 별 하나에 그리움이고,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의 ‘꿈엔들 잊힐리야’이기도 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화제(畵題)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고갱이 1897년에 비소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그렸다는 그림 제목을 생각하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또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김환기의 그림이나 고갱의 그림 제목 모두 인간의 생에 대한 근본적 질문임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조선 백자를 특히 사랑하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세계에 널리 알린 김환기. 뉴욕시절에 고향이 그리워서 자주 일기장에 고향이야기를 남긴 김환기.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갔어도 그의 예술은 지금도 우리 가슴속에 있다.
1974년 7월11일 일기
“ 구구삼정(鳩鳩森亭)에 나오면 하늘도 보고 물소리도 듣고
불란서 붉은 술에 대서양 농어(弄魚)에 인생을 쉬어 가는 데
어찌타 사랑이 병이 되어 노래는 못 부르고 목 쉰 소리
끝일 줄을 모르는가. “
一九七四年七月十日一 유나이티드병원 망해실(望海室)
수화청취(樹話晴醉)........
-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37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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