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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을 찾아서

송강 문학기행 -담양 송강정 4

 

 

 담양 송강정  4

 

 

   

율곡 이이(1536-1584). 조선조 최고의 학자요 정치가. 우리나라 5천원 권 화폐에 나오는 인물로서 왜란을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고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율곡과 송강의 만남은 21세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강의 친구 이회참의 소개로 서울에서 둘은 만났다 한다. 최근  발간된 최인호의 소설 유림 5권을 보면, 율곡은 23세 때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만나러 갔고 그해 겨울에 과거 시험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였는데 이 때 송강 정철이 율곡의 장원급제를 축하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최인호는 이 책에서  ‘송강은 율곡과는 당대 제일의 문장가를 다루던 호적수였으나 뛰어난 정치적 영향을 펼쳐보았던 율곡과는 달리 평생을 가사문학에만 매어 달렸던 풍류시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율곡은 송강이 조정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항상 감싸주고 도와준다. 그런 율곡이 1584년 1월에  49세의 나이로 죽자 송강의 슬픔은 너무 컸다.  송강은  이렇게 만사를 쓴다.




     율곡의 만사 3수


    물 위로 솟은 연꽃 볼수록 천연하니

    수 백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빼어난 기운이리.

    하늘이 이 나라에 끊어진 학문을 전하려고

    이 사람을 낳아서 앞 성현을 잇게 했나니

    마음 속엔 환중의 묘수가 넉넉히 있고

    눈 아래엔 어려운 일 전혀 없었네.

    어느 곳에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이제 서로 이별하니 어느 때 돌아올까.

    挽栗谷 三首     


芙蕖出水看天然     間氣難逢數百年    

天欲我東傳絶學     人生之子紹前賢    

心中剩有環中妙     目下都無刃下全    

何處得來何處去     此時相別幾時旋


첫수는 율곡이 위대한 성현임을 칭송한 글이다. 수백 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인물인 율곡은 마음은  자유자재로 융통한 묘수가 넉넉히 있고 (환중은  융통자유자재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장자 제물론의 ‘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에 나오는 글이다.) 눈 아래엔  마치 포정이 소를 도살하듯이  전혀 어려움이 없이 일 처리를 잘 하였다(刃下全: 어려울 일이 없다는 뜻. 장자 양생편에 ‘庖丁의 칼날에는 全牛가 없다’ 하였음.) 그런데 다시 못 볼 이별이라니  이 어인 일인가.





 소학이란 책에서 성리를 깨쳤으니

 성현의 자질이 이미 삼분이나 있었네.

 과거 科擧 길이 어찌 공명 功名만의 일이리오.

 글월은 도의 道義의 근원 아님이 없었네.

 선동 仙洞에는 용龍과 麝의 흔적 가득하고

 석담 石潭엔  물구름 자취 잠겼네라.

 황천에서도 슬픔은 다함없나니

 임금님의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하여.

     


  小學書中悟性存   聖賢資質已三分    

  科程豈是功名事   翰墨無非道義源    

  仙洞漫留龍麝跡   石潭空鎖水雲痕    

  泉臺想有無窮痛   未報吾君不世恩    



  나 보다 먼저 왔다가 또한 먼저 가니

  죽고 삶을 조금도 주선하지 못하는가.

  진헐대 가의 달을 따르고져

  마침 비로봉 위에 신선이 되었을테니.

  천겁이 비록 재 되어도 그대를 얻지 못하니

  구원에 가게 되면  다시 그대를 보려나.

  아양곡 알아들을 이 없으니

  종자기위해 거문고 줄 끊을 수 밖에.





     先我而來去亦先     死生何不少周旋    

     欲從眞歇臺邊月     會作毗盧頂上仙    

     千劫縱灰難得子     九原如作更逢賢    

       無人解聽峨洋趣     却爲鍾期一斷絃

    

1. 九原: 춘추 때 晉의 경대부의 묘지. 후에는 묘지의 범칭. 혹은 九泉. 黃泉.       2. 千劫縱灰: 추상적인 개념을 물질에 비유한 것을 현대시론에서는 존재론적 은유라고 한다. ‘천겁’이는 시간 개념이 ‘재’라는 물질로 비유되었다. 상상력의 폭과 절묘한 비유가 너무나 뛰어나지 아니 한가.   3. 峨洋曲: 백아가 거문고로 산수곡을 타니  종자기가 듣고서 ‘山峨峨 水洋洋’ 이라 하였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



 挽栗谷 三首     


芙蕖出水看天然     間氣難逢數百年    

天欲我東傳絶學     人生之子紹前賢    

心中剩有環中妙     目下都無刃下全    

何處得來何處去     此時相別幾時旋    


小學書中悟性存   聖賢資質已三分    

科程豈是功名事   翰墨無非道義源    

仙洞漫留龍麝跡   石潭空鎖水雲痕    

泉臺想有無窮痛   未報吾君不世恩    



先我而來去亦先     死生何不少周旋    

欲從眞歇臺邊月     會作毗盧頂上仙    

千劫縱灰難得子     九原如作更逢賢    

無人解聽峨洋趣     却爲鍾期一斷絃

    

이 얼마나 애절한 추모인가. 송강과 율곡의 관계를 백아와 종자기로 비유하면서 임금에 대한 은혜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적고 있다. 



한편 한 쪽 마루 위에 붙어 있는 ‘신원에 있으면서  습재에게 부치다’ 시를 본다. 



   매번 생각하니 송강의 옛 별장도 거칠었음을

   풀무장이 해중산도 산양을 떠났으니

   物外의 은거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인간의 벼슬사이에 바쁘네라.

   일년에 아홉번 옮기던 일 모두 꿈이려니

   조정에 거듭 들어간 적이 몇 해던고

   춘양 가지고서 다시금 남주로 멀리가나니

   선정전의 성덕을 뵈올 길 없어라.


   每憶松江舊業荒  鍛爐中散離山陽   

   消殘物外烟霞想   辦得人間卯酉忙  

   一歲九遷都夢寐   修門重入幾星霜  

   舂糧更適南州遠   宣政無由覲耿光


  

1. 烟霞想: 노을과 안개에 대한 느낌 곧 산수를 사랑하는 마음. 은거하는 마음.       2. 星霜: 세월.      3. 耿光: 밝은 빛. 聖德의 형용.      4. 卯酉: 옛날 관인은 묘시에 입직하고 유시에 퇴근하였다.      5. 修門: 대궐을 이름.       6. 舂糧: 장자 소요유 편에 ‘適百里者 宿舂糧’이 있음. 먼 길을 가기위해 양식을 찌어서 준비함을 이름.      7. 稽中散: 晉나라 사람 해강이 中散大夫를 사직하고 山陽에 숨어 풀무장이를 하였음. 




이 시는 고양 신원에 있으면서 습재 권벽(1520-1593)에게 쓴 시이다. 권벽은 같은 서인 강경파로서 송강과 친하게 지낸 사람이었다. 그의 벼슬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시문에는 상당한 일가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송강의 묘를 지나며 過松江墓’란 유명한 시를 쓴 송강의 제자이며, 당대 최고의 시인인 석주 권필(權韠, 1569-1612)이다. (권필은 그의 꿈에 나타난 술에 취한  충장공 김덕령장군을 노래하는 취가곡을 지은  시인이기도 한데 이 취가곡이 있는 곳이 광주 충효동 환벽당 옆의 취가정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시 이야기 하련다.)



이 시는 송강이 고양 신원에서 다시 멀리 남주 창평으로 가게 되니 임금을 뵐 길이 막막함을  토로한 시이다. 1585년 8월 송강은 당초에 부모의 묘가 있는 경기도 고양 신원에 머물렀다. 그런데 동인과 사헌부 사간원 양사의 압박이 너무 심하여 멀리 남쪽 창평으로 오게 된다. 이런 정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시가 바로 이시이다. 그래서 이 시가 이  송강정에 붙어 있는 것이리라. (원래 이 시는 두수이다. 첫 번째 시는  습재에게 신원의 생활을 알리는 시이고 두 번째 시가 바로 우리가 지금 감상하는 시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천리 떨어진 창평에 온 송강은 그의  마음을 도연명의 귀거래와 비유하여  귀래 歸來라는  시를 읊는다. 



 돌아오다


  꼭 세상을 등지자고 돌아온 게 아니라 

  우연히 도연명처럼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기 때문이네.

  황국화 실컷 따다 취하도록 즐기거늘

  두건도 벗겨진 채 남쪽으로 온 기러기는 소리 높여 읊나니.



  歸來   


  歸來不必世相違    偶似陶公悟昨非   

  采采黃花聊取醉    倒巾高詠鴈南歸   



 다시 남방으로 곧 창평으로 내려 온 것이 아예 세상을 등지자는 것   은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도연명처럼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작비昨非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각금시이작비 覺今時而昨非’ 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벼슬을 안 하겠다고 깨달은 지금은 옳고 今時, 벼슬을 하겠다고 한 어제는 잘못이었다. 昨非’


  황국화를 따다가 만든 술을 실컷 마시고 취하면서 즐기거늘, 두건도 벗겨진 채 남으로 온 기러기는 소리 높여 읊고 있다.  이 국화 술도 도연명의 음주 시에서 자주 나오는 대목이다. 귀거래를 하는 은자의 삶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 국화 술이다.


  송강은 자신을 기러기에 비유하면서 ‘비록 아예 머물자고 온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속세에 미련은 있지만, 이왕에 이렇게 낙향하여 사는 몸이니 이제라도 도연명의 삶을 본으로 삼아서 잠시라도  현실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하고 살자. 귀거래의 무위자연을 즐기자.’ 고 이 시에서 읊고 있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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