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 5
김세곤
한편 나는 이 제월당 마루 위에 같이 붙어 있는 하서와 송강의 소쇄원시를 감상하면서 송강과 하서와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한다.
<국역 송강집>의 송강의 연보에 의하면 송강은 하서 김인후와 고봉기대승에게 공부를 배운 것으로 적혀 있다.
이즈음 송강은 스스로 배워야할 필요성을 깨닫고 드디어 하서 김인후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을 청하였고, 그 후 고봉 기대승을 좇아 배웠다.
또한 김장생의 <송강행록>에도 하서의 고봉이 송강의 스승이라고 적혀 있다.
공이 자라면서 기고봉 대승을 좇아 근사록등의 책을 배워서 향방을 알았다. 또 김하서 인후의 문하에 드나들며 항상 그 사람됨을 흠모하고 그 절개를 칭송함으로서 나고 듦의 올바름을 기렸다. 비록 근세의 유현들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송강은 하서의 제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떻게 송강이 하서에게 수학을 하였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아마도 송강의 스승이며 처 외할아버지인 사촌 김윤제가 송강을 하서에게 소개하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소쇄원이었을 것이다. 하서는 소쇄원에 들를 때는 한 달 이상도 머물렀다 하는데 이때 하서의 친구이자 사돈인 소쇄옹 양산보와 소쇄옹의 처남 김윤제와 어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하서는 송강의 장인인 유강항을 만나기도 하였다 한다.(유강항은 중종의 폐비 신씨를 복위하고자하는 상소를 올린 무안군수 유옥의 아들이다)
또한 하서는 송강에게 <대학>과 초나라 재상 굴원(기원전 339-278)의 ‘이소’가 수록된 <초사>를 가르쳤다. 특히 ‘슬픔을 만나다’라는 뜻의 노래인 ‘이소’는 우국지정과 연군지정이 잘 표현된 노래이다. (지금도 순창의 쌍치마을 점암촌에는 하서가 송강에게 대학 大學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이른바 ‘대학 바위’가 있다 한다.)
한편 하서와 송강은 사제 간에 매우 각별하였던 모양이다. 짐작컨대 두 사람 간에는 인종 임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송강은 큰 누나가 인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이고, 하서는 세자시절 인종의 선생이었다.
인종은 세자 시절에 하서와 매우 돈독하였다. 새로 간행된 주자대전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고, 인종 스스로가 묵죽도를 그려 주기도 하였다. (이 그림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인후는 이 묵죽도에 대하여 이렇게 적었다.
뿌리와 가지, 마디와 잎새가 이리 정미하니
바위를 친구 삼은 정갈한 뜻이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비로소 성스런 혼이 조화를 기다리심을 보았나이다.
온 천지가 어찌 어김이 있겠습니까.
또한 하서는 을사년 7월 초하루에 승하한 인종을 못 잊어하는 절의의 신하였으니 송강과 하서의 두 사람 관계는 인종이 맺어준 인연이라 할 것이다. 하서전집에는 <정계함에게 보냄>이란 한시가 있는데
철이야 어릴 때도 잘 아는 사이
세상살이 일거리가 많기도 많다.
여러 날 머무르며 취흥 돋우니
병든 몸이 오히려 절뚝거리네.
아울러 송강은 <하서를 그리며>란 시를 쓰는데, 이 시에는 하서가 인종을 못 잊어 하고, 해 마다 인종의 기일에 고향의 난산에 들어가 통곡한 출처가 분명한 사람임이 잘 나타나 있다.
동방에는 출처 잘 한 이 없더니
홀로 담재옹만 그러하였네.
해마다 칠월이라 그날이 되면
통곡소리 온 산에 가득하였네.
東方無出處 獨有湛齋翁
年年七月日 痛哭萬山中
또한 <송강 연보>에 보면 하서가 일찍이 송강을 전송하면서 다음 두 구의 시를 즉흥적으로 지어 불렀다.
엷은 가을 구름 나직히 드리운 저녁
취중에 더 하구나 이별의 아쉬운 정
秋雲低薄幕 別意醉中生
그러자 송강도 다음 두 구를 지어 즉석에서 화답하였다.
험한 앞길 구불구불 아득도 한데
정말 애달프다 서로 두고 머무는 정
前路崎軀甚 相留多少情
이 얼마나 사제 간의 정이 흠씬 나는 이별의 시인가. 스승은 제자를 보내니 이별이 아쉽고 제자는 정을 두고 떠나니 더욱 애달프다.
이렇듯 사제 간의 정이 깊었던 둘 사이에 이별이 온다. 하서가 1560년에 별세한 것이다. 이때가 양산보가 죽은 3년 후이고 송강의 나이는 25살이었다. 그 때 그는 아직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창평에 있었다.
송강은 스승 하서에 대한 제문을 이렇게 쓴다.
슬프도다! 선생이시어. 맑은 물에 연꽃 같은 덕의 순결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다 말하리오만, 나가시면 세상을 상서롭게 하는 기린이시오, 드시면 산을 빛내는 옥이셨도다. 선생님이 출처가 마땅하였다고 이르는 것은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옛날일이야 잘 알 수 없으나, 이 나라 천년 역사에 오직 우리 선생님 뿐 이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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