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제월당 마루에서
그리고 보니 내가 제월당 방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도연명과 주돈이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이제 나는 마루로 발길을 옮긴다. 제월당은 마루가 두 쪽이다. 방 바로 옆 마루 위에는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글씨도 역시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이다. 또한 면앙정 송순 , 송천 양응정, 고봉 기대승등의 시가 함께 적힌 편액, 그리고 석천 임억령의 시가 적힌 편액, 소쇄옹과 하서의 시가 같이 있는 편액이 걸려 있다. 두 번째 마루 위에는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현판이 있고, 김성원, 고경명, 송강 정계함의 시가 같이 있는 현판 등이 걸려 있다.
나는 여기에서 송강의 스승인 하서와 고봉, 송순, 석천, 송천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니 약간 흥분을 느낀다. 그리고 서하당, 제봉등 소위 식영정 4선의 일원인 송강의 친구들도 같이 이곳에서 본다. 이 제월당 편액의 배치를 누군가가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였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가장 먼저 송강의 시부터 본다. 거기에는 <소쇄원 운에 차하다> 2수가 한문으로 써져 있다.
소쇄원 운에 차하다 2수
산림이 구름 속에 들어 있으니
도덕군자 마음은 생생하구나.
바람 속의 소나무는 신통한 피리소리 보내오고
달 아래 대나무는 맑은 그늘 띄우네.
여기에서 알맞게 익은 술을 마시며
길고 짧은 소리로 글을 읊조려
산에 사는 사람이라 어찌 벗이 없으리오.
때로는 두어 마리 새들도 있네.
次瀟灑園韻 二首
林壑隱雲表 生君道者心
風松送靈籟 月竹散淸陰
爰以淺深酒 遂成長短吟
山人豈無友 時下兩三禽
개결하고 고상한 한 인물이
산중에 홀로 문 닫고 사네.
물은 청산을 따라 어울리고
울타리는 자주빛 등넝쿨로 에웠구려.
숨어 살자는 뜻이 본래 아닌데
자연히 거마가 거의 없구나.
그래도 여기에도 정말로 참다운 낙이 있으니
숨어사는 일이라고 아주 미미한 것은 아니라오.
耿介高蹤客 山中獨掩扉
水因靑嶂合 籬以紫藤圍
非是隱淪志 自然車馬稀
此間有眞樂 幽事未全微
다음은 바로 옆에 있는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현판에서 소쇄옹 양산보에 관한 시를 본다.
제2영 개울가에 누운 글방
창이 밝으면 책을 읽으니
물 속 바위에 책이 어리비치네.
한가함을 따라서 생각은 깊어지고
이치를 깨닫는 연비어약의 경지에 들었네.
이 시는 하서가 양산보를 일컬어 쓴 시이다. 그는 ‘소쇄옹의 학문과 생각이 연비어약의 경지에 들었다’ 고 대단한 칭찬을 하고 있다.
연비어약이란 <시경>에 나오는 말로서 솔개가 하늘을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도의 작용으로서 군자의 덕화가 널리 미침을 의미한다.
또 하서는 소쇄옹과의 관계를 이렇게 적고 있다.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를 비껴 안고
거문고 타기가 쉽지 않으니
온 세상을 찾아도 종자기가 없구나.
한곡조가 물 속 깊이 메아리치니
마음과 귀가 서로 알더라.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타지 않아다는 이야기는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바 있다. 1, 2구는 온 세상을 찾아도 종자기 같은 지음의 친구가 없어 거문고 타기가 쉬지 앟은 소쇄처사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3.4구는 거문고 한 곡조를 타니 그 음을 서로 안다고 읊고 있다. 소쇄옹과 하서와의 친교를 나타내는 글귀이다. 여기에서 소쇄옹은 거문고를 타는 백아가 되고, 하서는 지음의 종자기이다.
한편 양산보는 1557년 3월에 소쇄원의 안방에서 별세한다. 하서의 슬픔은 컸다. 그의 벗이자 사돈이 저 세상으로 갈 때 하서의 슬픔은 너무 컸다. 그는 그 슬픔을 <소쇄원주인만 소쇄원主人挽> 이란 시에서 담고 있다.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한 것이 몇 해이던고.
고요하고 한가한 소쇄원이네
이 사람 지금 이미 이승 사람이니
병든 내 다시 무슨 말 하겠는가.
백발이 온통 목을 뒤덮었는데
청산은 가물거려 넋을 끊어놓네
부질없이 오곡의 물만 남았으니
누워서 전원을 거슬러 볼까 생각하네.
또한 하서는 소쇄옹에게 이제는 저 세상에서 먼저 죽은 그의 딸이며 소쇄옹의 며느리(양자징의 부인)를 보겠노라고 하면서 만나거든 그녀에게 안부나 전해 달라고 했다 한다.(하서의 딸이며 소쇄옹의 며느리 는 1548년에 죽었다)
양산보가 죽을 때 송강은 22살이었다. 그의 공부는 한참 물이 오를 때였으리라. 나는 이 소쇄옹의 장례식에 하서와 면앙정, 석천과 사촌, 고봉, 제봉, 송강, 서하당 등이 참석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서와 면앙정이 만사를 했을 것이다. 나이 어린 송강은 만사를 지을 형편도 못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송강도 소쇄옹과는 먼 친척이 되는 만큼 그도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리라 ( 소쇄옹 행장에 보면 송강은 소쇄옹을 대할 때 마다 마음속에 상쾌함을 느꼈다고 적혀 있다. 소쇄옹의 부인이 사촌 김윤제의 누이이고, 송강의 부인이 김윤제의 외손녀이니 송강과 소쇄옹도 먼 친척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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