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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을 찾아서

담양 소쇄원에서 2.

 

 

 

 

   소쇄원에서  2

 

 

 

   

이런 하서는 소쇄원이 어느 정도 완성된 1548년(그의 낙향 후 3년 되는 해)에는 <소쇄원 48영> 시를 지어 소쇄원의 경치를 찬양한다. 이후로도 그는 틈이 날 때는 이곳에서 몇 달씩 머무를 정도로 소쇄원을 좋아하였다 한다.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중  초정에 대한 시는 제1영으로 지어져 있다. 



제1영 자그마한 정자 난간에 기대어 小亭憑欄



소쇄원의 빼어난 경치

한데 어울려 소쇄정 이루었네.

눈을 쳐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귀 기울이면 영롱한 물소리 들려라 


  小亭憑欄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廳瓏玲



한편  송강 정철도 그의 첫 번째 창평 낙향 시절인 1575-1576년 사이에  소쇄원 초정에 관한 시를 쓴다.  



소쇄원 초정에 쓰다.


나 나던 해에 이 정자를 세워

간 사람 남은 사람  40년 역사.

시냇물 흘러가는 벽오동  아래

찾아온 손님 취하게 술이나 마시세.


 瀟灑園題草亭   


我生之歲立斯亭     人去人存四十齡    

溪水泠泠碧梧下     客來須醉不須醒  


이 시를 보면 초정은 송강이 태어난 1536년에  지어졌고, 그 후 40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정자 밑으로는 시냇물이 흘러가고 벽오동이 심어져 있음이 표현되고 있다. 



이윽고  나는 ‘오곡문’이라고 써진 담장을 지나  ‘소쇄처사양공지려’라고 벽에 써진  글씨를 보면서 제월당에 이른다. 이 두 글씨들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이다. 그는 양산보의 4대손 양진태의 스승이었는데 1685년에 양진태의 증조할아버지 고암  양자징을 기리는 ‘고암공행장’을 써서 소쇄원과 맺는데 이런 연유로 소쇄원에 그의 글씨가 많다.





2절   제월당에서



  제월당은 높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세칸 측면 한 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간결한 집이다. 거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있다. 문화 해설사 한분이 소쇄원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도 하고 있다. 제월당.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 같은 집. 이  이름은 중국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1045~1105)이 성리학자 주돈이(1017~1073)의 인품 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가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胸懷灑落 如光風霽月)고 말 한데서 따 온 이름이다.


  제월당은 두 칸의 마루와 한 칸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주인이 거쳐하며 독서하던 곳이었다. 마루에 올라 제월당 현판을 보고서 먼저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 내부에는 벽에 글씨가 여러 폭 붙어 있고, 천장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있으며 소치 허련의 난초 그림도 붙어 있다. 나는 벽에 붙은 한문 글씨를 좀 더 자세히 본다. 거기에는 <귀거래혜...>로 라고 써진 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남북조 시대에 살았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이다. 양산보는 평소에 은일시인  도연명을 흠모하여 <귀거래사>와 <오류선생전>, <독산해경>을 즐겨 읽고 도연명 같은 삶을 살려고 하였다 한다.



 도연명.  그는 이름이 잠이고 자는 연명이다. 그는 현 중국 강서성 구강시 九江市 일대의 심양 시상 柴桑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시상은 양자강의 중류에 있으며 북으로는 여산을 등에 업고 남으로는 파양호를 바라보고 있는 명승지이다. 그는  29세부터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얼마 후 스스로 그만두었고, 그 후 몇 번의 벼슬을 하였으나 그만 두다가,  41세에 팽택 현령을 사직한 뒤에는 두 번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그가 쓴 <귀거래혜사 (보통 귀거래사라고 한다.)>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는 63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23년간을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은일시인(隱逸詩人),’ 혹은 ‘전원시인(田園詩人)’이라는 평에 걸맞게 많은 시문을 남기었다.  

   그가 살았던 시절인  동진 말에서 송나라 초는 왕실의 세력이 약화되고 군인세력이 커진 때였으며 농민 봉기와 반란, 그리고 사회혼란으로 백성들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리고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의 문제를 고민하는 도연명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나는 먼저  제월당 방에 걸린 <귀거래혜사>를 읽는다.


귀거래사는 도연명이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 현령 자리를 80일 만에 그만두고  고향인 강서성 심양 시상 柴桑에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고,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연명은 이 <귀거래사>를 쓴 그 서문에서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양(梁)의 소명태자 소통의 《도연명전》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정중하게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여 사직하였다고 적혀있다. 

그러면   이 기회에 중국문학의 진수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귀거래사>를  한번 음미하여 보자.


귀거래혜사



자, 돌아가자. 歸去來兮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였고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하겠는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중략)

마침내 저 멀리 나의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나는 기쁜 마음에 뛰었다.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자식들은 문에서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온통 잡초가 무성하지만,

아직도 소나무와 국화는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나는 귀거래사를 읽다가 ‘삼경취황 송국유존’이란 말이 눈에 익다. 삼경三徑, 세 갈래 길이란 이 말은 한나라의 장후가 정원안에 송, 죽, 국이 심어진 세 갈래 길을 내 놓고, 구중과 양중이라는 친구만 오게 하여 놀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뒤에는 은자의 거처를 삼경이라고 하였다. 그래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도 시들지 않았음은 그만큼 은자의 절개가 굳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어서 나는 시를 계속 읽는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하다. 

술 단지를  끌어당겨 혼자 자작하여 술을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남쪽들을 내다보며 의기 양양해하니,

참으로 무릎 하나 들어갈 정도의 좁은 내 집이지만 안빈낙도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전원을 매일 거닐며 손질을 자 제법 운치있게 되었다.

또 대문이 있기는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어 노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로는 고개를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무심한  구름은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저녁에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중략)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부귀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오.

또 죽은 후에 천제가 사는 천국에서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때가 좋다 생각되면 혼자 나가서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랴.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료승화이귀진하니  낙부천명부해의아



화는 자연의변화를 뜻하고, 진은 인생의 다함 곧 죽음을 뜻한다.


부해의는 다시 의심을 하여 무엇하리!란 말이다. 세상이 천명에 따라 조화의 수레를 타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 무에서 왓다가 무로 돌아가는 것인데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망설이랴. 최희준의 하숙생 노래가 생각난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이렇게  귀거래를 한 도연명은  농사  일을 하고 평소 좋아하던 술을 주로 혼자 마시고  책 읽기를 즐기면서 스스로를 오류선생이라고 칭하였다.  스스로 농사  일을 한 시가 <귀원전거歸園田居 5수>이고, 술을 즐겨 마시면서 지은 시가 <음주 飮酒 20수>이며,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여러 세상을 안 것이 <독산해경 13수>이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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