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사건, 제대로 처리하고 있나?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I. 심판 사건, 제대로 처리하고 있나?
혹시 오판 誤判 하는 것은 아닌가?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근무한 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심판사건을 처리한 건수가 300건이 넘는다. 많은 심판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내가 잘못된 판정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 점은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취소되었을 경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행정법원에서 그대로 인용될 경우는 오판을 하였다는 자괴심이 일어난다. 반면에 행정법원에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취소되고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을 때는 필자의 판단이 맞았다고 안도를 한다. 이 자리에서 오판한 사건과 그런대로 제대로 판정한 사건을 소개한다.
1. 공기업 간부가 10만원 금품을 받았다고 한 해고는 재량권 남용이라고 잘못 판정하다.
어느 공기업 직원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24년간 근무를 한 간부 직원이 관련 업체로부터 10만원 받은 것이 특별 감사에 걸린 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10만원의 금품 수수는 징계사유가 되기에는 충분하나 해고까지 한 것은 비위행위에 비하여 양정이 과하다고 판단하여 부당해고로 판정하였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정당해고로 판정하였다. 즉 초심 판정을 취소한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공기업은 직무의 특성상 고도의 성실의무 및 청렴의무가 요구되는 점, 근로자의 비위가 결코 경하거나 고의가 없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이 사건 해고가 징계재량권을 남용하거나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정하였다.
행정법원도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 근로자의 금품수수행위는 그 비위의 도가 중할 뿐만 아니라 고의가 있는 경우에 해당되며, 공기업의 사업 목적과 성격 및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직무의 내용,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금품수수행위는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에 해당하고, 해고가 징계재량권을 일탈 ․ 남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였다.
행정법원의 판결로 인하여 필자의 판정은 잘못된 것임이 명백하여 졌다. 공기업의 경우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도덕성과 청렴성이 더욱 강조되는 사회적 추세를 간과한 것이다.
2. 대형버스 운전원과 중형버스 운전원의 근로조건 차이는 합리성이 인정된다.
광주지역은 이용승객이 적고 지체도가 낮은 외곽지역에는 중형버스를, 이용승객이 많고 지체도가 높은 시내지역에는 대형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대형버스 운전원은 1일 9시간 2교대제로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이고, 중형버스 운전원은 격일제로 근무하는 기간제 근로자이다. 중형버스 기간제 근로자 A는 통상시급, 상여금, 무사고 수당, 근속수당에 있어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차별시정 신청을 하였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이 사건을 심문한 결과 차별시정 신청을 기각하였다. 대형버스와 중형버스의 근무여건과 노동강도, 사고율등에 차이가 있어 중형버스 운전원과 대형버스 운전원간에 임금 ․ 수당등의 차이를 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중앙노동위원회는 통상시급의 차이는 합리적 이유가 있으나, 대형버스 운전원은 무사고 수당을 4만원 지급하면서 중형버스 운전원은 3만원 지급한 점과, 상여금 지급액에 차이를 둔 것, 대형버스 운전원에게 지급하는 근속수당을 중형버스 운전원에게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로 인정하였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하여 행정법원에 항소하였다. 이 소송에 대하여 행정법원은 대형버스는 중형버스에 비하여 노동강도가 높고, 사고율도 높아 차량운행에 있어 기술적인 조작능력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점과 대형버스 운전원과 중형버스 운전원의 근로형태 등을 감안하여 통상시급, 상여금, 무사고 수당에 차이를 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이라고 판결하였다. 다만 근속수당의 경우는 근로조건의 차이를 감안하여 그 액수를 달리하는 것은 몰라도 중형버스 운전원에게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로 인정하였다.
행정법원의 판결은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상당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즉 대형버스 운전원과 중형버스 운전원과의 비례의 원칙에 의한 임금의 차이는 인정하되, 중형버스 운전원에 전혀 지급되지 않는 근속수당은 제도 설정을 통하여 지급되어야 함을 판결한 것이다.
II. 노동법, 제대로 알아야 한다.
심판 업무를 처리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근로자나 사용자가 노동법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법을 잘 알거나 공인 노무사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일을 처리했다면 심판 사건 자체가 발생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노동법을 잘 몰라 낭패를 보는 수가 종종 있다.
1. 해고 시점을 잘못 기산하여 각하되다.
한 유치원장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이 사건 근로자는 2008년 3월부터 1년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무를 하던 중 2008년 10월경 사용자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만두라 하여 12월말에 그만두었다. 이후 근로자는 사용자가 후임원장이 채용될 때까지 원장자격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2009년 1월부터 월 50만원을 받아왔다. 또한 2월말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에 의원퇴직 신고를 하여 퇴직금을 수령하였다. 2009.10월에 사용자는 후임 유치원장을 채용하였고 이 사건 근로자를 관할 교육청에 해임신고 하자, 이 사건 근로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것이다.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 근로자의 근로관계가 2008.12월말에 종료된 사실이다. 2009년 1월부터는 실제 근무를 하지 않고 유치원장 자격증 대여 대가로 50만원을 받은 점, 퇴직금을 자진 수령한 점도 고용관계가 2008년 12월에 종료되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따라서 제척기간 3개월이 초과되어 사건이 각하된 것이다. 만약 2009년 1월경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다면 종교를 이유로 한 부당해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너무나 안쓰럽다.
2. 근로계약서 작성일 이전에 업무인수인계를 위하여 근무한 기간도 근로기간에 포함된다.
기간제법이 시행됨에 따라 2년 기간이 기간제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만약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하여 근무하면 기간을 정하지 않는 근로자가 되는 것이어서 2년 초과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A업체 사건은 근로계약서 작성일 이전에 업무인수인계를 위하여 근무한 기간도 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여 2년 5일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고용계약 해지는 부당하다는 판정이 내려진 경우이다.
사건 개요를 살펴보자. A업체는 2007.10.1부터 2008.6.30까지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 확정된 근로자에 대하여 사전 교육을 목적으로 9.19부터 9.28까지 5일간 업무 인수인계를 하도록 하였다. 이후 이 사건 근로자는 2008.7.1부터 2009. 6.30까지 1년간, 그리고 2009.7.1부터 9.30까지 3개월간 더 근무하였다. 그런데 사용자는 2009.8.20경 근로자에게 9.30자로 고용계약이 해지됨을 통지하였다.
이에 이 사건 근로자는 입사시기가 근로계약서상의 2007.10.1이 아닌 9.19이며 2년을 초과하여 근무하였으므로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되었는바, 정규직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해지한 것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이에 대하여 사용자는 5일간의 근무는 채용 전 교육기간이므로 근로기간으로 볼 수없다고 답변하였다.
심문 결과 2007.9.19부터 9.28까지 기간 중 휴무일인 토요일, 일요일과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정상근무일이 5일이고, 이 5일간을 모두 근로자가 근무한 점, 이 기간 중에 임금을 지급 받은 점, 전임자와 업무인수인계를 한 사실이 밝혀져 5일간을 근로기간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사건 근로자는 2년 5일간 근무한 것이 되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되었고, 이 근로자에 대한 근로계약 해지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하였다.
III. 심판, 더욱 자세를 낮추고 공정하게
심판 審判이란 심문 審問과 판정 判定을 합한 것이다. 심문은 자세히 묻는다는 뜻인데 사실관계에 대한 자세한 파악이 주 임무이다. 따라서 심판위원은 사건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꼬치꼬치 질문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시시비비, 즉 옳고 그름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심판은 일종의 진실 게임과 같은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심문을 잘 하려면 3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기록을 꼼꼼히 읽는 일이다. 이유서와 답변서를 철저히 검토하여야 한다. 행간의 의미도 파악하고 전체 사건의 흐름도 읽어야 한다. 둘째는 경청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양 당사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여 중간에 말을 끊는다거나 요지만 말하라고 채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말을 들어주되 그 말이 횡설수설하는지 진실성이 있는지를 간파하여야 한다. 셋째는 평형감각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특히 심문을 할 때 어느 쪽 일방의 편을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발언이나 어느 한쪽이 잘못하였다고 하는 발언은 절대 금물이다. 이런 발언은 공익위원은 물론이고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도 함부로 하여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다.
한편 판정회의에서는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법의 형식 논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실상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약하면 심판위원들은 <중용>에 나오는 박학, 심문, 신사, 명변 (博學, 審問, 愼思, 明辯)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넓게 공부하고, 자세히 묻고, 깊이 생각하며, 뚜렷하게 분별하여야 한다.
요즘 법원이 흔들리고 있다. 공중부양 한 것을 무죄라고 판결한 것에 대하여 언론에서 말들이 많다. 판사의 막말도 도마에 올랐다. 39세의 판사가 재판 도중에 69세의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법원도 이렇게 몰매를 맞고 있는 데 노동위원회라고 하여 비난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욱 자세를 낮추고 공정하게 심판을 하여야 한다. 한 퇴임 고등법원장의 말이 생각난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 당사자의 고민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고, 형식적인 법리가 아닌 지혜로 판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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