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두 번 울리지 마세요.
김세곤 (노동부 부이사관)
# 장면 1
대학 웹사이트에서 모회사 00발표회 진행요원을 모집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다. 희망자는 A 업체의 갑에게 이메일로 연락을 주란다. 응모를 하고 서울의 모 호텔에서 진행요원으로 하루 일하다. 갑은 일당을 송금하여 주겠노라고 나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통장 구좌번호를 적어갔다. 그런데 일 한지 20일이 지나도 입금이 안 되었다. 갑에게 이메일이나 휴대폰으로 연락을 여러 번 하였어도 연락두절이다. 한마디로 갑은 완전히 잠적하듯 하다. 나와 같이 일한 5명도 모두 임금을 못 받게 될 처지이다.
# 장면 2
별 수 없이 00 발표회를 한 모 회사에 연락을 하였다. 모 회사는 자기는 임금을 줄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하면서, 행사 대행업체인 B 업체에 이 사정을 이야기 하였단다.
다행히도 하루 뒤에 B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일당을 금일 중에 입금하여 주겠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다음 날 만나서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돈만 입금하여 주면 되는데 왜 구태여 만나서 주려고 할까.
다음 날 오전 11시에 오기로 한 B업체 직원은 내가 몇 번 연락을 한 끝에 저녁 8시에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만난 자리에서 B업체 측은 임금을 주겠노라고 하면서 미리 써 온 확인서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 거기에는 ‘ 임금 3만원을 지급받았음. 급여 지급 후에는 모 회사와 B업체에 불만을 노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만약 이를 어길 시는 회사 측이 제기한 명예훼손 및 기타 어떠한 불이익에도 대응하지 않고 감수할 것을 약속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 확인서를 보니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임금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는 불만을 제기 못하도록 확인서를 받으러 온 것이다. 옆에 같이 계시던 부모님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랬더니 업체 관계자는 자기는 책임이 없으니 돈은 갑에게 받으라고 하고 자리를 뜬다. 그런데 30분 뒤에 B업체 관계자가 다시 와서 돈을 주었다. 돈을 받긴 받았지만 너무나 어이가 없다.
위 두 장면은 복학을 준비 중인 대학생 아들이 며칠 전에 겪은 아르바이트의 비애입니다. <88만원 세대> 라는 책을 읽었을 때만 하여도 청소년 알바시장이 이 정도로 심각한가 하고 의아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의 사례를 겪고 보니 청소년 알바시장은 정말 법도, 인권도, 피와 눈물도 통하지 않는 사각지대이더군요.
명색히 내가 노동부 공무원임을 밝혔는데도 인권 침해가 명백한 확인서를 받으려 하는 B 대행업체 직원의 용감성은 너무 놀랍습니다. 더구나 인터넷 상에서 만난 A업체 갑 모가 잠적하면 임금을 받기가 힘들어 지는 다단계 업무대행 구조도 면밀한 검토대상입니다.
청년 실업에 절망하는 20대들이 이렇게 임금을 떼이거나 인권이 무시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일은 그들을 두 번 울리게 하는 일입니다. 한 두 번의 알바에서 아픔을 겪은 청소년들은 이런 기성세대를 ‘나쁜 기업인’으로 각인합니다. 일자리 창출에 애쓰고 계시는 기업인들이 이런 인상을 남기기 않도록 청소년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2008.1.28)
'세상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마음의 숭례문 -박노해 (0) | 2008.02.13 |
---|---|
입춘 대길 건양다경... (0) | 2008.02.08 |
청소년 알바 피해 사례 모집합니다. (0) | 2008.01.26 |
88만원 세대 - 청소년 알바 (3) (0) | 2008.01.25 |
88만원 세대 - 청소년 알바 문제점 (2) (0) | 2008.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