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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내마음의 숭례문 -박노해

 

» 박 노 해(시인)

 

설날 새 마음으로

고향을 다녀온 날

남대문이 불탔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요구도 없이

때론 위엄있게 때론 쓸쓸하게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하던 내 마음의 숭례문



그가 분신하듯 타오르고 있었다

600년 지켜온 이 땅의 자존심이

우리들 인간에 대한 예의의 약속이

시커멓게 무너지며 절규하고 있었다


아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설날 아침 나는 무슨 말들을 피워냈던가

주식과 펀드와 뉴타운과 경제성장의 단어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밥 먹여주느냐고 소리칠 때

그래도 건강하고 정직하고 우애있고 자기답게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진정 소중한 것은 지켜가야 하지 않겠냐고

두 눈 맑게 뜨고 말없이 바라보던 숭례문



저 텅 빈 슬픔의 자리에서

태워야 할 것들을 스스로 불태우며

불의 침묵으로 다시 일어서는 내 마음의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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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실린   박노해 시인의  시입니다.

 

정말 텅빈 가슴에  숭례문은 이제  없습니다.  진정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숭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