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한국적 가치를 세계적인 것으로 | |
金煥基, "영원의 노래" 李興雨 (시인) ![]() "휘황찬란한 빛깔의 이불만큼씩한 깃발"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집 마당에 섰었다. 그런 태몽을 꾼 어머니는 나중에 "그래서 천상 환기는 그림 그리게 태어난건가 했느니라"하고 며느리 김향안 여사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들이 그리는 화포의 그림은 "꼭 그때에 태몽에 비쳤던 오색찬란한 깃발들"이었다. <김향안 "1944년 어머님의 회고에서"/"金燥基"화집 1978, 한국브리태니커 발행> 태몽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은 아들의 운명을 바라보는 어머니 자신에게 충분히 정서적인 의미와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현대화가의 작가적인 생애를 어머니의 태몽과 굳이 더 운명적으로 결부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화가의 생애와 업적은 그의 천분과도 관계되지만, 더욱 후천적인 환경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지며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휘황찬란한 빛깔의 이불만큼씩한 깃발"은 예부터 동양에서 상서로운 조짐을 말하는 서운(瑞雲)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김환기의 많은 작품에 나오는 줄무늬의 구름들을 생각하게 한다. ![]() ![]() 동경시대의 그의 작품은 어딘가 상징주의적으로, 물동이를 인 한국여인을 그린 "종달새 노래할 때"(1935, 二科會 입선작)에서 기하학적이며 구성적인 추상("구성", "론도", "섬의 이야기" 등), 분할주의, 표현주의적인 구상회화, 또는 입체파적인 작품 등으로 여러가지 모색과 탐구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 작풍은 서울의 제1기와 부산시대를 거쳐 서울의 제2기인 1955년께까지 발전적인 탐구와 모색을 계속하며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그의 청색이 주조가 되는, 산, 달(해), 구름, 새, 나무들의 세계가 의욕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 ![]() "1955년에서 1956년 사이에 김환기의 팔레트는 예기치 않은 광택을 지니게 된다. 채색된 표면은 세월의 바탕에서 온 선(線)의 변주로 아로새겨지며 형상들이 나타난다‥‥ 김환기는 그의 아틀리에에서 청색의 조화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우리에게 보여준 이젤 위의 작품도 청색이다. 사면의 벽도 청색이며 도자기 항아리도 청색이다. 모든 것이 청색인 것이다. 그리하여 김환기의 양식은 정묘하게 전조(轉調)된 면과 함께 장식적이자 동시에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 하나의 독창성을 지니게 된다. 그는 깊이에로 스스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피에르 쿠르티옹 "김환기 그 어디에" 이일 번역) 피에르 쿠르티옹이 이젤 위의 작품도, 사면의 벽도 항아리도 청색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1958년작인 "달밤의 화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로의 화폭이 몇 개의 작고 큰 사각형들로 분할되며 바닥과 벽, 이젤의 달과 창밖으로 하늘에 뜬 달, 그리고 항아리 등이 각각 다른 농도와 마티에르로 다듬어진 청색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어딘가 전통적으로 달빛을 표현한 푸른 달빛의 청색을, 아울러 "청산도 절로절로"의 청색을 생각하게 한다. 푸른 달빛을 받아, 혹은 "언어적"인 청산의 청색을 따라 방안도 푸르고 이젤도 푸르고 조선시대의 백자 항아리도 또한 더 청색으로 푸르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전조되는 유채의 갖은 색조와 마티에르가 만들어내는 김환기의 청산같은, 푸른 달빛같은 청색인 것이다. 쿠르티옹은 그것을 "그의 생명의 흔적이 담겨진 청색"이라고 말했다. "김환기의 작품에서 가장자주 나타나는 것이 청색이며 이 빛깔은 넓이, 커다란 공간, "고요의 메아리"를 환기시킨다. 그의 청색에는 메마름이 없으며 작가의 손에 의해서 가꾸어지고 전조됨으로써 그의 생명의 흔적이 담겨진 청색이다. 청색! 그것은 원소의 색채요, 커다란 몽상 즉, 공기와 소리의 몽상을 불러 일으켜주는 색채이다. "(위와 같은 글) ![]() 김환기의 "영원의 노래"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는 대체로 1950년대 중반 이후, 서울시대 제3기인 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이 될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55-58년)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또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환기의 60년의 생애, "평생을 미술에 종사했지만 작업에 골몰한 시간은 파리의 3년과 뉴욕에서의 11년"("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이라고 했다. 또한 프랑스에 가서 자신의 개인전을 갖기 전에는 그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 보아 전람회를 가보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 시기의 작품들의 중요한 모티브는 산, 해와 달, 구름, 새(학), 사슴, 나무(특히 매화, 소나무, 대나무 등)이고, 또한 항아리 (다른 기획전을 위해서 이번에는 전시 안함)가 일관적인 주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그 시대의 작품들이 "수화" 라는 화가의 아호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조선)의 산에, 구름에, 나무에, 하늘에 비치는 한국의 푸른 달빛과도 같은 것이다. 달빛은 이윽고(그리고 항상) 한국의 하늘과 아울러 두루 모든 세계를 비치는 것이다. 달빛이 두루 세계를 비치듯이 자연에서, 산과 달과 구름과 새와 나무들은 각각 별개의 것이면서 하나로 어울린다. 수화의 그림에서도 대상들은 그처럼 종합적으로 파악되며 그의 새로운 조형의 언어로써 태어난다. ![]() 화면을 지배하는 청색들은 산의 형태를 따른 건강한 붉고 검은 선과 변조되는 색조들로써 분할되는데, 한국의 가을 하늘, 비취빛 청자의 빛깔, 청혈한 맑은 가을물, 그리고 푸른 달빛으로 전조(轉調)되는 여러가지 청색들을 각각 생각하게 한다. 산의 형태를 긋는 윤곽선의 원형을 동양화의 힘찬 부벽준(斧劈 )과 같은 산주름에서 찾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더 일월병(日月屛), 수병풍(繡屛風)이나 십장생도(十長生圖) 등 민화의 양식화한 산의 형태에 연결된다. 아울러 추상화한 그런 산들에서 느껴지는 리얼리티는 화가가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산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수화는 60년대의 한 수상에서 "십수년 해와 달과 새와 산을 그렸어도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더 그리고 싶다"고 했으며 "서울의 산들, 삼각산, 북한산, 성북산협, 서울거리에서는 어디를 보고 걸어도 산이 보여서 아름답다"고 했다. 산과 더불어 섬의 풍경이 또한 등장하는데, 섬은 바다에 뜬 산이다. ![]() "산", "산과 달"이라는 명제로 거듭 그려지는 산의 선들이 더 분방한 수묵화의 선처럼 변주되며 어우러지는 경우도 있고, 삼각산의 정상의 바위 봉우리들과 우거진 숲들이 함께 더 내면적으로 접근되며 종합되기도 한다. 그 많은 청색이 주조가 되는 산들 중에서, 마치 색동같은 축제의 산처럼 빨강, 노랑 등 현란한 색깔들이 청산의 청색과 푸른 숲을 흥겨운 북장단 소리로 물들이는 듯한 색다른 "산"(1955-56)도 있다. 수화의 달은 산과 어울리는 일이 많지만, 강("달과 강" 1962), 배("달과 배" 1959), 나무, 새나 매화( "달과 매화와 새" 1959, "달과 매화" 1961),사슴("꽃사슴" 1958), 구름들과 어울리며,그리고 청색의 추상화한 바다와 대지를 비치는 달빛 자체로서도("달빛" 1959) 표현된다. 거듭 흐려지는 "달 둘"(1961)은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달 자체 속에, 산을, 오색의 긴 깃발같은 줄무의의 구름을, 은하와 같은 강을, 바다를 달 속의 계수나무처럼 간직한다. 수평적인 직선의 색깔(지평, 그리고 구름)의 띠와, U자를 거꾸로 그린 형태로 단순화한 산 위에 커다란 달이 구름의 띠에 걸려 있기도 하고, 숲과 봉우리들이 우거진 선들로 함께 뭉쳐진 산이 달 위로 구름처럼 떠 있기도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오선지처럼 리드미컬한 줄무늬의 선 위로 산이 있고 하늘이 있고 달이 있어 "야상곡"(1961-64)이 연주되기도 한다. 전조된 산의 색조, 변형되고 추상화한 산의 형 태, 그리고 산과 달(해)과 구름이나 나무의 관계는 그 모든 것이 자연에서 지구 물리학적으로 어울리듯이 수화의 회화의 세계에서 아울러져 파악되고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며 다시 창조된다. "차츰 구상적인 요소가 희박해지며 나아가서는 아예 자취를 감춘다. 밝은 청색 바탕 위에 그리고 빨강과 초록의 반짝이는 분포와 더불어 타원형의 형태는 두 개의 넓직한 줄무늬에 의해 진기한 공간의 인상을 주며, 이 두 줄무늬는 서로 대립하면서 그 하나는 마치 바퀴 위에서인 것처럼 놓여 있다. (그것은 大地라기보다는 우리의 관습적 시각으로는 땅의 관념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김환기에 있어서의 일종의 "기호(記號)의 언어"가 있으며, 이 화가는 자신의 작품에 수수께끼의 리듬을 주기 위해 그것을 즐겨 쓰고 있는 것이다." "김환기의 작품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의 전체를 묶고, 암시하고 리듬짓게 하려는 흔들림과 욕구를 느낀다. 그 자신이 "밀접하게" 전통과 결부되어 있다고 했을 때 이 공경함은 그에게 있어 새로움에 대한 야릇한 힘과 양식과 색채의 재창조를 수반하는 것이다. "(이상 피에르 쿠르티옹의 먼저 글) ![]() 수화의 새는-1960년의 어떤 "새"처럼 안개 속에 떠오르는 듯한 엷은 핑크의 태양 위에 단순화한 검은 새(해 속에 있다는 三足烏?)가, 나이프로 문지른 유채의 두터운 색면 위에 유동적인 형상으로 앉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수화의 새들은 거의 날으는 학들이다. 학이 새라는 더 일반적인 개념으로 전화한 새이다. "새"나 "날으는 새"들은 역시 항아리와도 매화와도 어울리고, 달과도 어울리고, 때로는 종이로 오려 붙인 것 같은 단순한 형태가 되어 산호섬 위를 날기도 한다. 날아가는 학, 특히 날개 짓하는 학의 날카로운 톱날 형태의 날개는 쌍구법(雙鉤法)의 윤곽선이나, 굵은 선 가운데에 가는 색선으로 뼈대를 그은 도형처럼 그려지기도 하는데, 더 많은 새들은 두터운 화면에 역시 두터운 마티에르의 하얀 청색면으로 메워지며 (充壞) 수화의 독특한 새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새는, 산과 구름, 혹은 달 사이를 일점투시법으로 전망되며 날아가기도 하지만, 원근법을 초월해서 대지(구름이나 산이나 땅이나 혹은 선회하는 물의 청색)를 조감하는 상공에서 "투시(透視)" 되어지며, 활짝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도 한다. 어떤 "새"(1962)는 고려상감청자의 운학문(雲鶴文)같이 마치 하늘같은 땅 속에 상감되어 더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는 화석처럼 굳어진 유채의 화면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푸르게 살아 있다. 가지가지로 변형되고 형상화한 수화의 새들은 산이나 구름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한국과 동양의 무의(청자, 십장생도, 벽돌, 기와의 무늬 등)와 도형들에 그 맥과 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모든 한국의 것, 수화 김환기의 것 -학이며 산이며 구름이며 달이며 해며 나무가-하나의 "하늘"(1955-57년작), 하나의 화면에 모이기도 하는 것이다. ![]() 수화가 수집한 조선 목공예 중의 일부(사방탁자, 문갑 등)가 실측, 재현되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일찍이 그 시절에 그런 목공예를 고른 수화의 안목을 아프도록 절감하게 한다. 그런 데서도 분명하게, 한국의 아름다움의 본질에 투철한 그의 지식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멋을 폭넓게 창조해내고 멋으로 세상을 살아간 참으로 귀한 예술가였다" "동양미를 꿰뚫어보는 그의 안목도 매우 높아서 그가 좋아하는 동양의 그림과 글씨도 그 테두리와 차원이 분명했고 또 이조(조선)의 목공이나 백자의 참맛을 아는 귀한 눈길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동양의 미나 한국의 멋 특히, 한국공예미의 참멋을 꿰뚫어 보는 그의 뛰어난 안목이 우리들 사이를 더 빨리 좁혀 주었다고 생각된다. "(崔淳雨 "樹話"/먼저 "金煥基" 화집) 수화의 1950-60년대 중반, 산과 해와 달, 구름과 새, 사슴, 나무들은 한국의 하늘과 땅에 청산과 녹수처럼 생성되어온 전통의 깊은 뿌리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현대 서양화의 기법이 결합되면서 한국의 풍토에서 불러진 보다 더 한국적인 영원한 노래이다. ![]() "그는 오직 혼자서 동양과 서양의 접합을 형성하고" "위대한 시대의 한국미술에서 출발하면서, 옛것과 현대, 소중한 전통과 필요 불가결한 모험과의 통합을 실천했다"고 쿠르티옹(먼저 글)은 그 시대의 "환기"를 말했다. 김환기가 뉴욕의 화실에서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 (쿠르티옹이 "청색의 소용돌이요, 입자들의 교향악"이라고도 말한), 무한히 반복되며 찍어지는 동양적인 필촉감의 점들과 그어지는 선, 그것은 모든 현상(萬象)이 하나의 유전인자 같은 최소한의 단위나, 궁극의 원리(동양의 性理學의 경우 道, 또는 理氣)로 환원된 것 같은 점과 혹은 선들이다. 그것을 그림이 그려가는 "광대한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생명의 전율"이며, 그 생명은 "물과 불이 형제와도 같고 땅과 하늘이 양극의 힘으로 혼합되어 있던 때인 태초의 시간에 최초로 형성된 깊은 곳에서 감지한 생명"(장자크 레베크)이라고, 장자의 혼돈과 같은 말을 한 유럽 사람도 있다. 나는 간혹, 수화 김환기의 별처럼 많은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행위가 별이 가득찬 어느 우주공간을 끝도 없이 유영하면서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전에 수화는 말했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지금도 아직 유효한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1993, 3.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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