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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조선의 독서광 - 이덕무3

[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독서가 이덕무]

벼슬 욕심 버리고 책에 파묻혀 한평생
서자 후손 탓 출세 힘들자 일찌감치 관직 포기 … 읽고 또 읽고, 순수한 책 읽기
 

스물한 살 때의 이야기니 요즘으로 치면 대학 2학년이다. 대학 2학년이 이토록 책을 읽다니 책 읽지 않는 학생들은 반성할 일이다. 어쨌든 이렇듯 책에 빠진 인간이었으므로 그는 천지간의 책을 다 보고야 말겠다는 애교 있는 과대망상증을 보인다. 24세 때 쓴 ‘갑신제석기(甲申除夕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성현들이 남기신 경전과 이런저런 믿을 만한 역사책들 속에 푹 잠겨 헤엄치듯 그 책들을 읽어내어 오묘한 이치를 얻어내고야 말리라. 그리고 그 밖의 패관야승(稗官野乘)과 잡가(雜家)의 말을 섭렵한다면, 천지간에 가득한 책을 거의 다 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호서가, 독서가는 알 것이다. ‘천지간의 서적을 다 보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지. 하지만 그 욕심은 정녕 아름답지 않은가.

이렇듯 책탐(冊貪)에 빠진 이덕무는 그 욕심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오직 읽는 것뿐이었다.

나는 세상사에 대해서는 손방이다. 하지만 오직 시서(詩書)를 모으는 일에는 마음을 두고 있다. 그래서 남의 책 수백 권을 빌려 좌우에 가지런히 쌓아두고 있다. 혹 읽을 책을 계속해서 빌리지 못하게 되면, 장부(帳簿)나 달력이라도 싫어할 줄을 모르고 뒤적이며 읽었다.(‘갑신제석기’)

장부나 달력이라도 보기를 마지않는다는 말은 얼마나 재미있는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 읽을거리에 굶주린 나는 책을 빌리기 위해 싫어하는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반나절을 따라다닌 기억이 있다. 가장 부러운 집안은 대궐 같은 부잣집이 아니라 책이 많은 집이었다. 가난한 이덕무는 책을 살 돈이 없으니, 빌리고 베끼는 것이 책탐을 푸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기에 책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만권(萬卷) 장서를 두고도 빌려도 주지 않고 읽지도 않고 햇볕을 쪼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하자. 빌려주지 않는 것은 어질지 않은 것이요,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않은 것이요, 햇볕에 쪼이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사군자(士君子)라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법이다. 빌려서라도 읽어야 하나니, 책을 묶어놓고 읽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세정석담(歲精惜譚)’]

스스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짓이요, 자신이 읽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짓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세상도 다를 바 없다. 어떤 사람은 무슨 귀중한 책을 가지고 있노라 자랑하다가 보자고 청하면 난색을 표하고, 유명 도서관에서는 귀중본이 있다고 목록에 밝히고는 ‘귀중본’ 도장을 쾅쾅 찍어 너무 귀중하여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책 빌리고 빌려주는 예의에 관한 기록도 남겨

이덕무의 편지를 보면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 허다하게 나온다. 이런 이덕무이니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데 대한 예의가 없을 리 없다. 그는 ‘사소절’에서 책을 빌리는 예의에 대해 일장 설교를 늘어놓는다. 몇 가지를 보자. 책을 빌려주는 것의 기본 정의다. “남에게 책을 빌려주어 그 사람의 뜻과 사업을 키워주는 것은, 남에게 돈과 재물을 주어 그 곤궁과 굶주림을 구제해주는 것과 같다.” 어떤가. 책을 빌려주는 것은 남에게 재물을 주어 곤궁과 굶주림을 구제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자선이 없다.

하지만 남에게 책을 빌려주기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의 책이나 시문(詩文), 그림은 보고 난 뒤 빌려주기를 청할 것이며, 주인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억지로 빼앗아 소매 속에 넣고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요즘도 통하는 말이다. 좀더 읽어보자. 남의 책을 빌리면 정하게 읽거나 베끼고 기한 내에 돌려주어라. 기한을 넘기거나 주인이 독촉하는데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지켜야 할 예의는 이것뿐이 아니다. 남이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책이나 장정이 안 된 서화를 빌려서는 안 된다. 완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이 손상될 수 있는 탓이다. 빌려준 사람에게 보답도 해야 한다.

남의 책을 빌렸을 경우, 책주인이 만약 호고(好古)하는 사람이라면, 그 책의 오류처를 바로잡아 종이쪽지에 따로 써서 그 곁에 붙여두어야 할 것이다. 함부로 책 본문에 마구잡이로 어지러운 글씨로 적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의 책을 빌렸을 경우, 다 읽은 뒤 다시 먼지를 털어 차례대로 정돈하고 보자기에 싸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법서(法書)를 빌려서 베낄 경우는 다른 책보다 더러워지기 쉬우니, 더욱 마음을 써서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덕무는 이렇게 책을 빌려 읽고 거창한 지식을 쌓았다. 지금은 책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독서하는 교양층은 얇아지고 인문서는 팔리지 않는다. 참으로 걱정이다. 이덕무 역시 베이징에 간다. 다음 호에는 이덕무와 베이징의 책 이야기를 해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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