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독서가 이덕무] |
| 벼슬 욕심 버리고 책에 파묻혀 한평생 |
| 서자 후손 탓 출세 힘들자 일찌감치 관직 포기 … 읽고 또 읽고, 순수한 책 읽기 |
|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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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서파(庶派)였다. 그 자신이 서자라는 말이 아니다. 그의 직계를 거슬러 올라가 서자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 후손은 서파가 된다. 조선시대에 서파라는 것은 관료로서의 출세 길이 막힌다는 것,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스스로 태어나기로 결정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된다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사소절’ ‘관독일기’ 등 많은 저서 남겨
벼슬이 최고의 가치라 하고는 ‘너만은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 차별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이 차별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분노하고 좌절한다. 술과 도박에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탕진한다. 그리하여 ‘서자는 할 수 없다’는 평가를 스스로 얻고 만다. 하지만 슬기로운 사람도 있다. 분하지만 참고 단정한 길을 걷는다. 이덕무가 그런 사람이었다. 이덕무 역시 과거공부를 하고 34세 되던 해 가을 증광초시(增廣初試)에 합격하지만, 이것은 그의 생애에 어떤 의미를 갖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관료로서의 길을 일찍 포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덕무의 행로는? 그는 비상한 사람이었다. 세상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단정한 삶을 산다. 그가 남긴 모든 문자는 그가 얌전하게 처신하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선비가 일상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꼼꼼하게 정리한 ‘사소절(士小節)’을 보면, 평생 조심조심 살아갔던 그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렇게 자신을 다독여도 이따금 가슴속에서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관독일기(觀讀日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밤에 희미한 달빛이 은은히 비치고, 뭇 벌레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더니 이내 또록또록 들린다. 등불은 가물가물하는데, 말없이 홀로 오뚝 앉아 있노라니, 강개(慷慨)한 감정이 겹겹이 생겨나고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아마도 가을의 기운이 장부(丈夫)의 뻣뻣한 창자를 단련시키려고 하여 이런 것인가 보다. 희미한 달빛과 풀벌레 울음소리에 강개(慷慨)한 감정과 까닭 없는 슬픔이 솟구친다. 가을 기운을 핑계대지만, 이것이 어찌 가을 기운 때문이랴. 소외된 인간의 심사가 아닌가. 이덕무는 직업이 없었다. 정식 직업이라 부를 만한 것은 39세 되던 해(정조 3년, 1779) 얻은 규장각 검서관(檢書官) 자리였다. 이전의 그는 백수였다. 농사꾼도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 사는 그에게는 농토가 없었다. 또 약질이라 농사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덕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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