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독서가 이덕무] |
| 벼슬 욕심 버리고 책에 파묻혀 한평생 |
| 서자 후손 탓 출세 힘들자 일찌감치 관직 포기 … 읽고 또 읽고, 순수한 책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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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양반 이덕무에게 책 읽기는 모순이다. ‘책을 읽으면 선비이고, 벼슬을 하면 대부(讀書曰士, 從政曰大夫)’란 말이 있듯, 독서란 곧 관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덕무의 독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오로지 지적 행위로서의 독서가 생겨난다.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순수한 책 읽기! 과연 이덕무는 오로지 책 읽기 자체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목적 없는 책 읽기라 해서 과연 목적이 없을 것인가.
나는 늘 예나 지금이나 인가(人家)의 자제들이 밀랍을 먹인 종이로 바른 창문에 화려하고 높은 책상을 두고, 그 옆에 비단으로 장정한 서책들을 빽빽하게 진열해놓고서, 자신은 머리에 복건(幅巾)을 쓰고 흰 담요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기침이나 캉캉 뱉다가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글자도 읽지 않는 것이 가장 유감스럽다.
좋은 서재에 책을 쌓아두면 뭐 하나?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글자도 읽지 않는다. 부귀한 인간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점잖은 이덕무도 이런 인간에게는 결코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에 이어 이덕무는 맹자와 양웅(揚雄)을 인용한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지낼 뿐, 만약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禽獸)에 가깝다.”(맹자)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비록 걱정거리가 없다 한들, 금수가 될 것이다.”(양웅) 이덕무는 맹자의 ‘가르침’과 양웅의 ‘배움’이 바로 독서라고 말한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귀할지라도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이덕무에게 독서는 곧 인간이 되는 길이다. 나는 독서하는 이덕무에게서 지금 세상에서 거의 멸종된 ‘교양인’의 모습을 본다.
스스로 책 읽는 바보 ‘간서치’라 불러
이덕무는 독서에 골몰하는 자신을 ‘책 읽는 바보’, 간서치(看書癡)라 불렀다. 그가 초년에 쓴 자전 ‘간서치전(看書癡傳)’은 아주 짧다. 같이 읽어보자.
남산 아래 바보가 살았다. 눌변이라 말을 잘하지 못했고, 성격이 졸렬하여 세상일을 알지 못했고, 바둑이나 장기 따위는 더더욱 몰랐다. 남들이 욕을 해도 따지지 않고, 칭찬해도 뻐기지 않았고, 오직 책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도 더위도 주림도 아픈 줄도 아주 몰랐다. 글을 막 배웠을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손에서 옛글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가 지내는 방은 아주 좁았다. 하지만 동쪽 남쪽 서쪽에 모두 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가 옮겨가면 햇볕이 드는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보았다. 예전에 보지 못한 책을 보게 되면 기뻐 웃으니, 집안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는 곧 그가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을 알곤 하였다. 그는 두보(杜甫)의 오언율시를 더욱 좋아해 중얼거리는 것이 마치 병자의 앓는 소리와 같았다. 그러다 심오한 뜻을 깨치면 기쁜 나머지 일어나 방 안을 빙빙 돌곤 했는데, 그 소리가 마치 까마귀가 우는 것 같았다. 때로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곳을 응시하기도 하고, 혹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간서치(看書癡)’라 해도 그냥 기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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