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조광}, 1937.6)
가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시는 4행이 한 연을 이루는 전 4연 구성 속에 사 랑의 기쁨과 정열, 그리움과 애달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매우 아름답게 담고 있다. '호수'·'촛불'·'나그네'·'낙엽' 등으로 은유된 '내 마음'을 주지(主旨, tenor)로 한 다음, 거 기에 대응되는 '배'·'옷자락'·'피리'·'뜰' 등으로 표현된 '그대'를 각각의 매체(媒體, vehicle)로 하여, 앞의 두 연은 동적(動的)이고 직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즐거운 것과 타오르는 것으로, 뒤의 두 연은 정적(靜的)이고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외롭고 슬픈 것으로 구상화하여 참신한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1연에서는 임을 위해 부서짐으로써, 2연에서는 타 버림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1연에서는 호수를 통한 넓이의 사랑으로, 2연에서는 촛불이라는 소멸의 의지를 통한 깊이로 임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촛불은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임에 대한 절 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부서지며'·'태우며'로 노래한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나그네'·'낙엽'으로 전이된 화자가 만남의 약속도 없이 쓸쓸히 임의 뜰을 떠 나가겠다고 하면서 사랑의 감정에서 빚어지는 외로움을 심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사랑의 상반된 두 감정의 교묘한 배합을 통해 기쁨과 아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각 연의 매 2행은 경어체인 '오오'·'주오'·'하오'로, 매 4행은 '지리다'·'오리다'로 끝 맺음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더욱 절실하고 호소력 있게 하였으며, 아울러 이 시를 섬세한 어감과 분위기의 작품으로 이끌고 있다
수선화
김동명
그대는 차디찬 의지(意志)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孤獨)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 곳 없는 정열(情熱)을
가슴 깊이 감추이고
찬 바람에 빙그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神)의 창작집(創作集)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不滅)의 소곡(小曲).
또한 나의 적은 애인(愛人)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水仙花)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1연 : 바람에 의해 떨어진 꽃잎이 끝없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 다시 자신이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그럴 수 없어 슬퍼하는 꽃잎
⇒2연 : 피고 지고 또 피는 수선화 모습. 항상 반복된 삶을 사는 수선화의 가여운 모습.
⇒3연 : 하고 싶은 말(?)을 겉으로 들어내지 않고 혼자서 마음속에 담아둠. 그리고 들판에서 찬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수선화.
⇒4연 → 1행+2행 : 이 세상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수선화.
→ 3행 :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수선화.
→ 4행 : 영원한 나의 벗
→ 5행+6행 : 수선화를 닮고 싶은 화자
♡도움말: 화자는 그대를 고독한 상황에도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대는 수선화이지만 수선화에다 마음의 주체인 인간의 영상을 오버랩 시키면 수선화는 어떤 사람을 지칭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죽음을 불사하는 넋을 지니고 있으며 고난 속에서도(찬바람에도) 얼굴에 웃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보입니다. 마지막에 화자는 그대를 수선화라고 하고 있으며 자신도 그러한 눈길(고난의 길)을 수선화처럼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