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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한 시

[스크랩] 동심초

同心草(동심초) | 其 他
2006.02.04 19:19

    꽃 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시 :    김안서     '  동심초 (同心草) / 원작시 : 설도  '  
    ♬ :    신영옥     '  동심초 (同心草) / 김성태 : 곡  '  
    

김억 시인의 번안시에다가 작곡가 김성태씨가 
곡을 붙인 우리들의 귀에 익은 '동심초(同心草)' 노래다. 
동심초는 설도(薛濤)의 오언절구인 춘망사 4수(春望詞 四首) 중 
세 번째에 등장하는 시어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노)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만날 날은 아득하여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설도는 당대(唐代)의 기녀이다. 자는 공도(洪度). 
태어난 해와 죽은 해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개 770년과 832년 쯤이라고 한다. 
원적(原籍)은 장안(長安). 
어려서 하급관리였던 아버지가 성도(成都)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그곳으로 이주해 살았다. 
8, 9 살에 능히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아버지가 죽자 가세가 기울어서 16세에 악적(樂籍: 고급기생이 되는 것)에 올랐다. 
설도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아주 총명하고 말재주도 좋았기에 
그 지방의 군사장관이었던 웨이가오라는 사람의 총애를 받았다. 
웨이가오는 설도 나이 약 35세에 졸(卒)했는데, 
그는 그 때까지 그 녀를 계속해서 약 20년 동안, 돌봐주었다. 
웨이가오가 죽으면서 설도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겨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나머지 생애 동안 독립적으로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악적(樂籍)에서 나온 후로 끝내 시집가지 않았다. 
설도는 그녀의 재능을 흠모한 당시의 일류 문인들과의 교류가 많았는데,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禾眞]), 유우석(劉禹錫), 두목(杜牧)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원진과의 정분은 각별했다고 한다. 
'동심초' 시는 설도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그녀를 돌봐주고 총애해 주던 웨이가오를 향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웨이가오가 죽고 나서 만나 연모하게 된 
원진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원진(779 - 831)은 설도보다 10여세 연하였다. 
자는 미지(微之). 9세 때 시를 짓기 시작했고, 
15세 때 과거에 급제한 수재였다. 
그는 백거이와 아주 절친한 관계였고, 
그와 더불어 알기 쉬운 새 시풍을 개척했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경박하고 속되다며 비방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권력 다툼에 져서 중앙에서 밀려나 동천(東川))에 좌천되었는데, 
이것이 대략 809년의 일이다. 
약 5년 후에 백거이도 '강주'라는 곳으로 귀양을 갔다. 
809년 3월 설도와 원진이 처음 만난다. 
당시 원진은 동천으로 좌천되어 와 있었는데, 
설도의 문명(文名)을 듣고 사모해서 방문하게 된다. 
설도 역시 원진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설도는 자기가 직접 만든 아름다운 색종이에 백 여편의 시를 써서 
그에게 주며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원진 역시 설도에게 향한 정을 시로써 화답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 지나서 두 사람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 
그때 둥근 벼루를 반으로 나누어서 하나씩 간직하며 
다시 만나 그것을 둥그렇게 만들 날을 기약했다. 
원진은 옛날 은사였던 위하경(韋夏卿)을 만났는데, 
그는 원진이 기생을 좋아하고 있다고 책망하면서, 
자기 질녀(姪女)가 그의 처가 되기를 바랬다. 
후에 원진과 설도는 성도에서 만났는데, 
그위(韋)씨녀가 원진을 사랑하여 그 벼루를 잡고 가는 것을 막았고, 
급기야 벼루를 시냇물에 빠뜨려 버리고 말았다. 
설도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고, 원씨 문중과 부딪칠 수 없음을 알았으며, 
또 위씨가 원진을 따르려 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어, 
드디어 사랑이 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게 되었다. 
원진과 위씨는 결혼을 했고, 
설도는 홀로 남아 외로운 신세가 되어 버렸다. 
40세나 되어서야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설도였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떨어진 꽃의 심사(心思)였고, 
그녀에게 오로지 정을 바칠 수 없는 원진은 흘러가는 바람이었다. 
사람은 찾았으나 영원히 마음을 엮을 수 있는 
'동심인(同心人)'이 되지는 못한 것이었다. 
설도는 비록 원진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각설하고, 
풀을 가지고 엮는다거나 매듭을 만든다거나 민들레. 들국화 클로버 등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행해진다. 
또 나무잎새나 풀이나 꽃을 가지고 점, 특히 사랑의 점을 치기도 한다. 
거기에 인간의 바램이 끼어 들어갈 소지가 충분히 많이 있다. 
이란에서는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봄이 시작되는 첫날을 
새해로 생각하는데, 
새해 축제기간을 노루즈(NOROOZ)라고 부르며, 
2주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간의 마지막 날이 
시즈데 베다르(SeezDeh Bedar)라 불리는 날인데, 
이 날에는 남녀들이 풀로 매듭을 만들고 
소원 특히 배우자를 원하는 소원을 빈다고 한다. 
그 매듭이 풀릴 때 행운도 함께 열려서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또한 신혼부부들도 풀 매듭을 매고 
아기나 집 같은 것에 대한 소원을 빈다고 한다. 
설도는 원진과의 이별 후에도 계속 시를 썼는데,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도교의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약 450편의 시를 썼다고 하는데 
지금은 약 90수만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숫자만으로도 
당대(唐代)의 어떤 여류 시인의 글보다 많다고 한다. 
설도의 '春望詞 四首' 전시를 곁들이며 이만 줄인다. 
花開不同賞(화개부동상) 꽃피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꽃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그대 생각에 계신 곳 물어본다.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꽃 피고 꽃 지는 시절인데... 
攬結草同心(람결초동심) 풀을 잡아매어 한 마음임을..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봄 시름 정녕코 끊으려는데, 
春鳥復哀吟(춘조부애음) 봄 새가 다시 구슬피 우네.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어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만날 날은 오히려 아득하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한 마음의 사람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가지.. 
煩作兩相思(번작양상사)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눈물이 아침 거울에 떨어짐을..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끝으로 사족이지만.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공결동심초 이 부분은 문맥상 과거형이지만, 
김억 시인은 
'맺으려는고?' 미래형으로 휠씬 시적으로 번안했다. 
출처 : 주님사랑
글쓴이 : 주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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