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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강의 부패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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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청백리(淸白吏) 가. 조선의 청백리(淸白吏) 1) 청백리(淸白吏) 청백리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벼슬아치(공직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청백(淸白)’이라는 말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의 약칭으로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료의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영춘 외 지음, 조선의 청백리) 그런데 청백리는 국어사전에 나오듯이 ‘성품과 행실이 올바르고 무엇을 탐하는 마음이 없는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청렴뿐만 아니라 인의(仁義)가 넘치는 관리라야 청백리이다. 1) 한편 청백리는 작고한 사람들에 대한 호칭으로, 살아 있을 때는 염근리(廉謹吏)라고 불렀다. 국어사전에는 염근리를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관리’로 정의하고 있다. 염..
조선의 청백리- 1회 청백리 퇴계 이황 조선의 청백리 - 1회 청백리 퇴계 이황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퇴계 이황(1501∽1570)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1천 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청백리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황은 1551년(명종 6)에 청백리에 뽑혔다. 퇴계(退溪)는 항상 물러나고자 했다. 이황은 1545년 을사사화 이후 병약(病弱)을 구실삼아 관직을 사퇴했다. 1546년에 그는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의 바위 위에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독서에 열중했다. 이때 실개천 토계를 퇴계(退溪)로 고치고,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안동시 퇴계 종택 앞에는 퇴계 시비가 세워져 있다. 몸이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내 분수에 편안한데 학문은 퇴보하니 늘그막이 걱정스럽네. 이 시..
호조 서리 김수팽 호조 서리 김수팽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백성은 토지를 논밭으로 삼지만, 아전들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아전을 이렇게 혹평하였다. 그런데 청렴한 아전으로 이름을 남긴 이도 있다. 영조 때 호조서리(戶曹胥吏) 김수팽이 그렇다. 그는 기개가 뛰어나고 대장부다운 절조가 있었다. 하루는 김수팽이 선혜청 서리인 동생 집에 들렀다. 그런데 마당에 항아리들이 줄지었고 검푸른 염료가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이게 무엇인가?” 김수팽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동생에게 물었다. “아내가 염색업(染色業)을 하고 있습니다.” 아우는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김수팽은 노하여 항아리를 모두 엎어 깨뜨려 버렸다. 엎어진 동이에는 푸른 염료가 콸콸 흘러 도랑에 가득 찼다. 이..
[역사이야기] 사리(私利)의 유혹 [역사이야기] 사리(私利)의 유혹 천지일보 (newscj@newscj.com) 승인 2022.02.24 18:31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하필왈리(何必曰利)’는 ‘맹자’ 첫머리에 나온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말했다.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오셨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시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것은 제후나 대부, 선비와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리(私利)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위아래가 다투어 사리를 앞세우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왕께서는 오로지 인과 의를 말씀하시옵소서. 어째서 이익..
부패 완판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 조선 망국사 연재
부패 망국 -LH 사건 터질 것이 터졌다. 부패 방국을 생각한다. 직업윤리 실종 우리 사회는 망조로 치닫고 있다. 이기심이 극도로 ... 견리사의는 점 1도 없다. 누구나 LH 공사는 공사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하고 해체해야 한다. 공공성은 점 1도없다. 공무원 공직자 이럴 것이면 이름 바꾸어라 ... 사회가 망조다. 특히 내로남불 편가르기 사회 . 정치 행정 사회 사법부 온통 .... 요즘 대한제국 망국사를 공부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운다. 부패는 망국이다.
조선 망국의 주된 이유는 부패 조선 망국의 이유는 부패였다. 세도정치의 매관 매직 돈 주고 벼슬을 산 수령들의 수탈과 아전들의 착취
<김세곤칼럼>『목민심서』는 호찌민의 애독서인가? (3) 박헌영의 『목민심서』 기증설 『목민심서』는 호찌민의 애독서인가? (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박헌영의 『목민심서』 기증설 등록날짜 [ 2020년09월22일 10시33분 ] 2006년 1월 9일 연합뉴스에 김선한 하노이 특파원이 쓴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유품을 모은 호찌민박물관과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2009년에 안재성은 에서 박헌영은 호찌민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책 앞부분에 수록하고, ‘1929년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단야, 박헌영, 양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뒷줄 맨 왼쪽은 베트남의 호찌민,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세죽.’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사진 1 박헌영의 국제 레닌학교 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