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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그림과 함께 하는 여행

 

 

 

[산마을 그림순례(23)] 가을비 속의 정자와 솔숲

포항 침곡산 덕동문화마을

▲ 가을 들녘과 소나무(47×70cm).
때 아닌 동해안 태풍경보와 폭우예보가 염려되었는지 포항에서 전화가 왔다.

“이 선생, 곧 폭풍이 온다는데 어쩌지요?”
“관장님 염려 마세요. 반드시 제 날짜에 가야 합니다. 부탁한 숙소나 준비해 주세요.”

사정인즉 배낭 매고 홀로 떠남을 원칙으로 세운 수년간의 마을 순례에 특별한 동행이 있으니 그분의 스케줄을 위해서도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10년 전(1996년)부터 한결같이 내 작품에 관심을 보여주신 이인호(李仁浩·전 핀란드·러시아 대사·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현 명지대 석좌교수) 교수님과 함께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첫 여성 대사로서 세계를 두루 여행하였으나 정작 국내여행은 아쉽다며 꼭 한 번 화가를 따라 가고 싶다고 청한 지가 여러 차례였다.

따라서 이참에 동참할 수 있는 지역 지인에게 차편을 부탁하고 마을에 알린 후 열차에 올랐다. 한편 정병모 교수(경주대학 문화재학과)를 한 열차칸에서 만나 함께 동대구역에 내렸다. 그리고 상경시 미리 주차해 놓은 그의 차로 경주로 내달린다. 경주로 향하는 목적은 정 교수도 참여한 ‘천년의 황금도시 경주’ 전(경주국립박물관 2006. 9. 5~ 9. 28)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출품작 4점 중 2점은 안강의 양동마을과 옥산서원(玉山書院)을 그린 것인데, 마을 입향조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1491-1553) 선생이 태어나고 머문 곳이다. 그런데 목적지인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마을 또한 사료를 보니 회재 선생의 집안인 여강이씨(驪江李氏) 집성촌이 아닌가. 하여 작품 관람 또한 마을 들머리의 물안개와 바람, 물소리가 될 수 있는 터였다. 어쨌든 우연 치고는 한 집안의 350년 역사와 뿌리를 세 차례나 더듬는 화첩기행이 되고 있는 줄이야.

정 교수의 후의로 토속음식을 대접받고 함께 떠나니 안강의 양동 마을 입구에서는 이재란 선생(포항 신흥중 음악교사)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선생은 경주는 물론 방학 때마다 세계 문화기행을 하는 분인데 동행을 권하자 흔쾌히 응한 것이다.

이 만남 덕분에 졸작으로 보았던 설창산 양동마을을 잠시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가지며 향단(香壇·보물 제412호) 마루에 올라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계절 변함없는 만상의 조화’

오전 내 일기예보를 비웃었으나 마침내 먹구름이 짙어지고 가랑비가 비낀다. 서둘러 포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또 한 분의 동행이 합류하니 마을소개를 자청한 이점동 선생이다. 이재란 선생의 청이 있었던 모양이다.

들녘은 그야말로 황금물결, 사과밭이 알알이 붉은 등을 달았고, 코스모스 행렬과 억새가 비껴간다. 농부가 아닌 여행자에겐 가을 바람 속에 너울너울 춤추는 허수아비마저 낭만과 향수를 자극한다.

▲ 침곡산 덕동마을 전경(139×87cm).

가랑비와 바람 속에서 덕동 마을(기북면 오덕1리)에 이르는 길은 실로 옛길 정취로 그윽하다. 솔숲과 활엽수가 둘린 마을 입구의 청소년수련관은 폐교(덕동초교)를 활용한 공간이다. 비 맞는 교적비엔 1961년 개교 후 1,394명의 졸업생을 내고 1992년에 폐교되었다고 씌어 있다. 고작 30년 역사이니 거반 생존해 있을 마을의 증인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마을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도하송(到下松)을 지나자 마을회관 옆 전시관에서 손짓하며 반기니 이동진(李東震·76) 덕동민속전시관장과 주민들이다. 곧 바로 덕동 마을의 상징인 용계정(龍溪亭)으로 일생을 안내하니 정자방에서 마을 어른들이 둘러 앉아 있다. 함께 맞절을 나누자 낯선 얼굴이 금세 친숙해진다. 여장을 풀고 정자마루 기둥에서 내다보자 계곡 암반이 기괴한데 연어대(鳶漁臺)란 글씨가 선명하다.

▲ 용계정(33×24.5cm).
용계정은 1687년(숙종 14년)에 준공, 애초 이름을 사의(四宜)라 했으니 이는 ‘사계절 변함없는 만상의 조화’를 뜻한다. 하지만 1778년 현 위치 상단부에 세덕사(世德祠)가 건립되어 많은 정자가 세워졌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중 용케 살아남은 사의정은 그 후 용계정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현판은 지족당(知足堂) 최석신(崔錫信)의 글씨다.

용계천이 흐르는 정자 주변은 푸른 이끼와 석벽이 병풍처럼 둘렸고, 연못과 솔숲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었다. 이곳의 솔숲은 ‘생명의 숲’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2003년 마을숲 복원 대상지였으며, ‘전통의 복원과 숲문화 회복’이라는 의미로 지원할 계획이다. 마을숲은 입구의 송계숲, 용계정 위쪽의 섬솔(도송)밭과 용계천 석벽 너머의 정계숲을 포함한다.

금년에 이 숲에서 ‘덕동문화마을 전통숲 제례 및 써레치 복원’ 행사가 있었다(2006. 8.15). 써레치란 농민들이 농기구 씻는 행위로, 8월 중순께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고 푹 쉬게 한 데서 비롯된 400여 년간 이어져온 풍습이다.

우중관계로 우선 마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덕동민속전시관에 들어서니 마을에서 수집, 관리해온 애장품으로 가득하다. 천장 위에 벌이 살고 있어 벌떼소리 가득한 전시관엔 옛 숨결이 오롯하다.

마을은 사전에 살폈듯이 여강이씨 집성촌인데, 회재의 아우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의 4대손 사의당(四宜堂) 이강(李?·1621-1688) 선생이 안강의 양동 마을에서 거처를 옮김으로 비롯되었다. 이로써 입향조 사의당의 호가 용계정 전에 씌었음을 살필 수 있다.

▲ 덕동민속전시 관장 이동진-이옥주 부부(58×45cm).
소장품은 이 관장의 5대조로 진사를 지낸 분의 말안장, 세덕사현관이 착용한 쪽물을 들인 예복. 그리고 각종 전적과 서간문이 즐비하다. 130년간 보관되었다는 마을 방명록인 첨배록(瞻拜錄)과 함께 나온 옥수수대로 만든 효자손은 옛사람의 체취로 뭉클하다. 내용인즉 ‘아침에 다녀간다. 말 한 필과 노비 몇몇이 함께 다녀간다’ 등 단순하지만 일상의 삶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기록이다.

하여 정 교수는 혹 이곳에 옛 화가들이 다녀간 기록을 찾고자 하나 이 관장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워한다. 하지만 세덕사 현판은 시서화(詩書畵)의 대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써서 남겼고, 명흥당(明興堂)은 승지를 지낸 이익회(李翊會), 입덕문(入德門)은 입암인(立岩人) 권신추(權愼樞)의 글씨로 남았다.

마당 깊은 곳에서 출토된 망와(기와)의 문양은 다양하고 아름다워 당시 건축문화의 기품을 보게 한다. 닥종이를 꼬아 만든 바랑, 거북이 등판 비석처럼 새긴 원목의 등잔도 눈에 띄는 우수한 생활공예품이다. 마침내 참관을 마친 후 일행에게 방명록을 권하여 붓을 드니 오늘의 인연 또한 미래에 한 자취로 남을 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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