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10.30 (월)
"국어는 국가의 품위 … 지도자들이 먼저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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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이란 말도 선생의 창작품이란 걸 모르는 이가 많다.
"지금도 길 다니다 혼자 뿌듯해하고 그런다. 문화부 장관 때 '이벤트 장관'이라고 욕도 먹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칼럼 1000번 써도 못 고칠 걸 한번의 문화행정으로 이룬 것 같아 보람도 느낀다. '갓길'은 내 전집에 들어갈 수 없는 글쓰기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종이 위에 쓴 글이 아니라 공공의 장소에 쓴 글쓰기 말이다."
-등단 50년의 감회를 묻는다면.
"아쉬운 점부터 말하겠다. 말하자면 나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컴퓨터로 글을 쓴 작가다. 내 글쓰기 공간은 82년 원고지에서 액정 화면으로 이동했다. 한데 요즘 들어 너무 일렀던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컴퓨터에 글을 쓰는 건 모래 위나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처럼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종이에 쓰는 글쓰기는 한 번 쓰면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진검승부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한 자 한 자에 대한 긴장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잘했다 싶은 점이 있을 텐데.
"내가 다른 일을 한 게 아니라 바로 글을 썼다는 사실일 것이다. '홀로 독(獨)'이란 글자가 있다. 독재.독선.고독 따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어는 대체로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글쓰기에서는 다르다. 독창적이라고 할 때 이 '독'이 쓰인다. 이건 글쓰기 작업의 어떤 운명 같은 걸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글쟁이는 고독해야, 다시 말해 당파가 없어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단 생활 50년 동안 한번도 계파를 만들지 않은 건 바로 '홀로 독'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우상을 파괴하겠다며 문단에 들어섰다. 그랬던 내가 우상이 되면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50년 전 난 젊은 문학의 기수(旗手)로 불렸다. 그런데 기수란 게 무엇이냐. 전쟁터에서 적의 총탄에 제일 먼저 맞아 죽는 게 기수 아니냐. 앞장서겠다는 건, 희생을 감수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겸손한 의미로 나는 기수이고자 했다."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
"내 글쓰기는 소위 장르를 뛰어넘는 글쓰기다. 내 글쓰기가 비평이 된 건 문단에 등장할 때 시와 소설은 신춘문예란 제도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평만이 그와 같은 제도를 통과하지 않아도 됐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처럼 나에게 고통스러운 말은 없다. 소설의 갈증이 풀어지면 시에 대한 갈증, 희곡에 대한 갈증으로 내 글쓰기는 끊임없이 옮겨졌다. 내 글쓰기는 여러 우물을 파는 것이다. 지금도 글을 쓰는 건 아직도 새로운 글쓰기의 갈증이, 새 우물을 파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기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88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를 굴리자고 제안했던 것도 나에겐 똑같은 의미였다. 내가 올림픽 개막식에 관여한 건 공연에까지 손을 뻗친 게 아니었다. 그것 또한 문학적 행위였다. 김영태 시인이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쓴 시가 있다. 굴렁쇠 굴리는 걸 본 시인은, 풀밭에 쓴 가장 긴장되고 아름다운 일행시라고 노래했다. 내 의도가 바로 그러했다. 잠실의 광장, 그 초록색 원고지에 일행시를 쓴 것이었다. 88올림픽 개막식은 나에게 몇십 억원짜리의 호사스러운 글쓰기였다."
-요즘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인문학도 위기고, 공학도 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성과 지식의 창조원이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파당 의식이 가장 큰 문제다. 옛날에 과거 치다가 망한 게 우리나라다. 과거에서 모범답안을 못 써내면 출세를 못했다. 결국 획일화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국문학도 사정이 비슷하다. 주례사인지 비평인지 모를 글이 요즘 우리 문학엔 너무 많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비평은 사라지고 해석만 남은 것 같다. 자유인이 아니면 올바른 비평을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품위 없는 말과 글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제 때 다 잃은 것 같지만 잃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우리말이다. 우리에겐 두 개의 영토가 있다. 한반도라는 국토와 우리말이라는 언어의 영토다. 언어는 말하자면 나라의 땅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언어에는 아름다운 말과 속된 말이 있다. 두 개가 합쳐져 하나의 국어가 되는 것이다. 점잖은 말이 있기 때문에 상스러운 말도 탄력을 받는 것이다. 두 가지의 말 가운데 상스러운 말만 통용된다면 그건 국토의 상실을 의미한다. 고운 말을 쓰면 바보가 되고, 거친 말을 써야 어울리게 되는 건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다. 국어는 국가의 품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먼저 품위를 훼손하고 있다."
-글쓰기 교육에도 문제가 많은 것 아닌가.
"나 역시 요즘의 서울대 논술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다. 명색이 50년 동안 글을 썼다는 나도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다. 다양성은 안 길러주고 논술지도란 명목으로 수십만 명에게 획일적인 글을 쓰라고 가르치고 있다. 획일화한 글쓰기 교육의 도도한 광풍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글쓰기 교육은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우는 데 힘써야 한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떠한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인가.
"제 생각을 쓰면 된다. 남의 생각을 자꾸 내 글에서 쓰려고 하니까 좋은 글이 안 되는 것이다. 누구나 제 생각이 있다. 그걸 밝히는 용기만 있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제 생각이 없으면 감히 없다고 쓰고, 아무리 바보 같은 생각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충실히 옮긴다면 좋은 글의 자격은 일단 갖춘 것이다. 어휘가 부족하거나 논리가 약한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만 쓴다면 독창성 있는 글쓰기가 될 수 있다. 글쓰기 작업이 황금이냐 배설물이냐의 차이는 독창성에 달려 있다."
-앞으로의 글쓰기 계획은.
"최근에 완간한 전집 30권은 문학이론서 등 사고의 체계에 관한 글은 뺀 것이다. 그것만 정리해도 열 권 정도가 될 것 같다. 이것 말고 펴내고 싶은 건 시집이다. 거기에서 내 글쓰기 인생 반세기를 정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평론가.교수.칼럼니스트.장관 등 수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크리에이터(creator)로 불리고 싶다. 광고 쪽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고, 크리에이터를 대문자로 시작하면 조물주를 뜻하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란 내 뜻에 가장 가까운 단어인 듯 싶다. 장관.교수.평론가 등 어떠한 직함도 나에겐 생소하고 어색하다. 그냥 선생으로 불렸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
정리=손민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 이어령씨는
1956년 5월 6일자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란 글을 발표하며 문단에 발을 디딘다. 당시 문단의 '우상'이었던 백철.조연현.서정주.김동리 등을 맹렬히 비판한 글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60년대엔 김수영 시인과 '순수-참여 논쟁'을 일으켜 다시 주목을 받는다. 참여문학론을 옹호한 김수영 시인에 맞서 이어령씨는 문화 자체의 창조력 고양을 강조하는 순수문학론을 펼친다. 이 대립 구도는 아직도 유효하다. 88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90~91년)을 역임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이어령이란 이름은 그의 숱한 베스트셀러에 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63년), '축소지향의 일본인'(82년), '디지로그'(2006년) 등은 새로운 시대를 연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공저.편저 등까지 합하면 저작 수가 130편이 넘는다. 최근 '이어령 라이브러리'(전 30권)가 완간됐지만, 앞으로 10권은 더 쓸 작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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