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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감상

두보- 당나라 시성

 

 

  당나라 시성  두보에 관한 해설 

 

 

   두보는 인간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월야(月夜)』는 자신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今夜?州月                  오늘밤 부주의 달,

                  閨中只獨看                 규중에서 홀로 보겠지.

                  遙憐小兒女                 멀리서 어린딸 가련히 여기니,

                  未解憶長安                 장안의 애비 마음 아지 못하리.

                  香霧雲?濕                 구름같은 머리카락 안개에 젖고,

                  淸輝玉臂寒                 옥같은 팔 맑은 달빛 받았으리.

                  何時倚虛幌                 어느때나 창가에 기대,

                  雙照淚痕乾                 눈물없이 밝은 달 함께 볼까.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픔을 노래한 시이다. 멀리서 달을 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두보의 모습에서 두보의 인간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인간의 삶의 본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 대해 몹시 분노한다.

  두보를 중국의 사회시의 비조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호리(石壕吏)』라는 작품은 전쟁에 고통받는 백성들의 참담한 삶을 노래했다. 세아들을 둔 노파가 아들을 모두 전쟁터에 보내어 두아들이 이미 죽었는데 관에서 다시 늙은 남편을 붙들어 전쟁터에 보내고자 하자 남편을 담 넘어 도망치게 하고 스스로 전쟁터에 자원한다는 내용이다. 삶의 본질이 절대 권력에 의해 파괴되는 그 현장을 두보는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병거행(兵車行)』에서는 어린 나이에 출정하여 40이 넘도록 전쟁터에서 고통을 겪는 백성의 원망을 한 병사의 입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전출새(前出塞)』 9首도 같은 부류의 시이다.

반면 『여인행(麗人行)』이라는 작품에서는 양귀비의 사치와 향락을 통해 절대 권력자들의 방종을 고발한다.

집권자들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과 전란에 허덕여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대비하여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다 명확히 했다. 두보의 이러한 시풍은 그가 생존했던 시기가 안록산의 난을 정점으로 번영에서 쇠망으로 향하던 시기여서  백성들의 삶이 처참하게 찢겨졌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에게 따뜻한 인간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보의 인간애를 증명하는 시는 『이백을 꿈꾸고』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사흘밤 연속해서 이백을 꿈꾸고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없다면 사흘밤 연속해서 꿈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낮에 생각한 일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는 동양적 사고에 근거하면 두보는 이백을 한순간도 잊지 못한 것이다. 『가인(佳人)』이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전쟁때문에 몰락한 양반가의 규수가 남편에게 버림 받고 궁벽한 산골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에 무한한 연민의 정을 보낸다. 『증위팔처사(曾韋八處士)』라는 시는 두보의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20년만에 친구를 만나 밤새워 술마시며 회포를 푸는 장면은 두보가 아니면 연출할수 없는 장면이다.

  두보의 이러한 인간에 대한 열정은 만년에 이르러 고적감으로 바뀐다. ‘병 많은 인생 백년, 홀로 누에 오르니, 고난속에 돋은 서릿발 귀밑머리 너무도 서글퍼라. 이젠 몸도 전같지 않아 술마저 끊었다'라는 『등고(登高)』라는 시가 그렇고, ‘옥구슬 이슬에 단풍 숲 시들고, 무산 무협에 가을 기운 소슬하다. 국화 거듭보니 옛날이 눈물 겹고 매어둔 배에 고향생각 엉키노라'라는 『추흥(秋興)』이 그렇다.

  그의 만년의 고적감은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움'속에서 어느정도 위안을 얻는다. 맑은 강 굽이져 흐르는 강촌에서 아무런 욕심없이 병든 몸 요양하며 조용히 살고 있음을 노래한 『강촌(江村)』이라는 시가 그렇다. 불꽃처럼 솟아오르던 혈기를 모두 태우고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와 조용히 눈을 감고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가 보인다.

  中國 시에서 자연은 늘 평화의 상징이다. 현실에서의 좌절은 자연으로의 귀의를 요구한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자연에 귀의함으로써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보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작가를 이해하면 작품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된다. 두보는 인간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두보의 본질을 이해하면 두보의 시를 시사(詩史)라 하고 두보를 시성(詩聖)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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