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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매창을 찾아서 - 부안 기행

 부안기행 -매창을 만나러 가다.

 

 북에는 황진이 , 남에는 매창. 조선 시대 최고의 기생시인 두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매창(1573-1610)을 만나러 전북 부안을 간다.  그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정과 한의 체취를 맡기 위하여.     



2009.2.7 토  날씨는 안개가 끼었다. 입춘이 지나니 날씨는 풀렸지만. 오전 10시 친구인 화가 조진호와 같이 부안기행을 하다. 매창을 만나기 위하여. 11시에 부안군 I/C 도착.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관광안내지도를 얻다. 먼저 행선지는 매창공원이다. 부안군청부터 찾아 나선다. 그런데 군청 가는 길목에 서림공원 500m란 표시를 보았다. 부안군청 뒤 서림공원 . 공원 입구에 매창시비가 있다.


  부안군청에서 4거리를 네 개 지나니 매창로가 나온다. 매창 공원(매창이 뜸). 매창 묘소에 참배하고  매창 유희경 허균의 시비를 보다. 공원 바로 옆에 부안문화원이 있다. 점심을 먹고  매창로 길을 따라 23번 국도를 달리니 개암사이다. 정경이 아늑하다. 특히 들어가는 입구의 당산나무는 인상적이다. 이곳이 바로 매창집 목판을 만든 곳. 개암사 절 뒤에는 울금바위가 있고. 

직소폭포와 내소사, 월명암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다. 1607년에 두 번째로 만난 매창과 유희경이 열흘 동안에 돌아다니었다는 곳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4월에 매창문화제가 열린다니 그때 더 구경하기로 하고.


  서림공원 , 이 근처가 부안군청인데 예전의 관아터 였다.  매창은 이곳에서 놀았다. 시와 거문고를  가지고. 허균 ,이귀, 권필을 만난 곳이 바로 여기이다. 

 매창시비는 서림공원 바로 입구에 있다.  시비에는 이화우 시조가 적혀있다.

  매창공원에 있는 매창 묘. 여기는 원래 공동묘지였는 데 2001년에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기갱으로서 여류시인은 송도의 황진이 그리고  부안의 매창이  손꼽힌다. 

 

  매창은  절개를 지킨 여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이긴 하나 아무에게나 정을 주지는 않았다.  이시에서도 정인에 대한 지조가 나타나 있다.  

  매창공원 근처길이 매창로이다.

  ... 

 촌은 유희경의 시.  매창과 유희경은  동병상련한 사이이다. 기생과 천민. 유희경은 임진왜란 이후 신분 상승을 하였지만

  매창의  임 생각. 매창의 임은 여러사람이다.  유희경, 이귀, 그리고  부안현감.... 허균과는 몸을 안 섞어서  정인이라고 하여야 하나, 아니면 진한 우정관계라고 하여야 하나.  시체말로 플라토닉 러브 같은 것. 

 허균의  만시.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원래 이 시는 율시 두수이다. 이비는 첫 수만  적혀 있다. 첫  수가 압권이어서. 

 가람 이병기의 매창뜸 시. 이시에는  매창 묘에 대한 묘사가 기막히다. 이화우 시조 , 거문고,  명주저고리(나빈상),  운우 (운우는  정인과의  러브(sex)이다.) 정. 한가지 빠진 것은  매창이란 단어이다. 매화 그리고 창가에 핀 매화.     

  매창시를  목폰으로 인쇄하였다는  개암사.

  입구의 개암나무. 정경이  너무 황홀하다. 뒤에는 울금바위가 있고. 개암사.  바위가 열린 절. 이 근처의 개암죽염이 유명하단다.

 절 입구에 있는 홍매. 붉은 매화 나무. 매창이 환생하였다면 아마 홍매이었을 것이다.

 개암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