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만나다.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노자를 만났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노자를. 대한민국에서 온 공무원이라고 내 소개를 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 왔노라고 말하였다. 나는 먼저 미국 산 수입 소고기 파동과 촛불시위, 유가상승 ․ 고물가로 어려운 우리 경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남북문제, 독도 사태 등 최근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서 첫 질문으로 ‘국민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었다. 노자는 “실기복 강기골”이라고 짧게 답변하였다. 내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가?’를 묻자, 그는 ‘ 위무위 사무사 ’라고 답변하였다. 다시 “국민들에게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여야 하는가?”를 묻자 그는 ‘상선약수’라고 짤막하게 답하였다. 사실 나는 노자께서 상당히 자상하게 이야기 해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노자의 말씀은 너무나 짧았다. 일종의 선문답이었다. 이어서 나는 “나랏일은 어떻게 처리 하여야 하나?”고 물었더니 그는 ‘약팽소선’이라고 말하였고, 다시 ‘공무원들은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가?’를 묻자, ‘여유’라고 답하였다. 그런데 내가 계속 질문하려 하자, 노자는 이제 그만하자는 표정을 지으면서 푸른 소를 타고 길을 떠났다. 나는 ‘선생님’ 하고 불렀으나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꿈이었다. 요즘 <노자> 책을 읽다보니 꿈에서도 노자를 만나나 보다. 깨어보니 노자의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래서 왕필, 기세춘, 장일순의 <노자>책을 번갈아 보면서 꿈에서 노자가 한 말씀의 의미를 찾았다.
첫 질문인 “국민들은 무엇을 원하나?”의 답인 ‘실기복 강기골 實其腹 强其骨’은 <노자> 제3장에서 찾았다. “무위자연의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게 하고 배를 채우게 하며 의지를 약하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한다.” 복腹은 배이다. 배는 채워야 한다. 허기가 지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에게는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가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골骨은 뼈이다.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말은 구조 즉 경제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노자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위무위 爲無爲 사무사 事無事 ’라고 답변하였다. “무위를 행하고 일 없기를 일삼고”란 말은 <노자> 제63장 첫 머리에 나온다. 무위란 노자 철학의 명제인데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것이다. 무위를 행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법석을 안 떨고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일 없기를 일삼는다.” 는 것은 일을 자꾸 더는 것이다. 이는 작은 정부론이요, 탈규제론이며 간섭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부란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2,600년 전에 노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그때도 백성들은 위정자 등쌀에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가 너무 많이 일하는 것을 싫어했나 보다.
세 번째 질문은 “정치가는 국민들에게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여야 하는가?” 이었다. 노자의 답변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이었다. 상선약수는 <노자> 제8장에 나오는 말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나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노자는 물을 예찬한다. 왜 노자가 물을 칭송할까? 이는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이 없으면 우리는 살지 못한다. 물은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근원이다. 둘째 물은 다투지 않는다. 물은 형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동그란 사발에 있으면 동그랗고 네모난 그릇에 있으면 네모이다. 게다가 물은 부드럽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게 없으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물을 이길 만한 것이 없다. 무엇으로도 물의 성질을 바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제78장) 따라서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다. 그러므로 물은 투쟁을 모르고 상생을 이룬다. 우리의 노동관계도 물을 닮는다면 화합하고 상생할 것이다. 셋째 물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낮은 곳, 비천한 곳, 억압받은 곳이다. 그런데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결국에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겸손하다.
이처럼 노자는 물을 찬양한다. 이는 전쟁과 살육 그리고 침탈이 횡행하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연성정치를 바라는 민중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
덧 붙여서 “나랏일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나?”는 물음에 노자는 약팽소선 若烹小鮮 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노자> 제60장에 나오는 말이다.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 삶듯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나랏일을 할 때에는 작은 생선 삶듯이 자꾸 뒤집지 말고 조심스럽게 다스리라는 말이다. 기준을 잘 잡아서 조용히 밀고 나가야지, 백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자꾸 간섭하고 요란법석을 떨면 백성들은 갈피를 못 잡고 나라가 혼란스러워 진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이 말은 한번 쯤 새겨들음직한 명언이다.
마지막 질문인 “공무원들은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노자는 “여유 與猶”라고 답하였다. 이 말은 <노자> 제15장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에 도를 얻는 이는 미묘하고 그윽이 통달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지만 억지로 말해보자면, 머뭇거림은 마치 살 언 겨울 강을 건너는 것 같고 신중함은 마치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는 것 같으며 ”
머뭇거림과 신중함이 바로 여유 與猶이다. 겨울에 냇가를 건널 때는 강에 살얼음이 있어서 조심하여야 한다. 잘못하면 얼음이 깨져서 물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징검다리 돌도 얼어서 미끄럽다.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디디어야 한다. 사방에 적이 쳐들어 올 때는 경계근무에 신중하여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있다. 한편 여유는 바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의 이름이며 정약용의 호이기도 하다. 다산도 “조심하고 신중하게 처신하겠다.”는 뜻으로 이런 노자의 ‘여유 與猶’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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