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는 나이 30, 1616년 12월(광해군 8년)에 <병진소>를 올린다. 당시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간신 예조 판서
이이첨을 탄핵하는 소를 진사 신분으로 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1617년 2월에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간다.
1618년 그가 경원에서 유배중일 때 지은 시조가 시름의 노래 (견회요) 5수와 , 비온 뒤의 노래 (우후요)이다.
비온 뒤의 노래
굿은 비 개단 말가 흐리던 구름 걷난 말가
앞내의 깊은 소해 다 맑았다 하나산다.
진실로 맑기 곳 맑아시면 갓끈 씻어 오리라.
시름의 노래 5수
슬프나 즐거우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내몸의 하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밖의 여남은 일이야 분별할줄 있으랴
내 일 망령된 줄 나라 하여 모를쏜가
이 마음 어리기도 님 위한 탓이로세
아메 아무리 일러도 님이 헤어 보소서
추성 (경원의 다른 이름) 진호루 밖에 울어에는 저 시내야
무슴 하리라 주야에 흐르난다
님 향한 내뜻을 좇아 그칠 뉘를 모르나다.
뫼는 길고길고 물은 멀고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울고 가나니
어버이 그릴 줄을 처음부터 알았마는
임금 향한 뜻도 하늘이 삼겼으니
진실로 임금을 잊으면 그 불효인가 여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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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618년 겨울에 경상도 기장으로 이배되어 유배를 계속 살다가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유배가 풀린다. 만 8년간의 유배살이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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