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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살리기 -문사철, 시서화

인문대학의 위기...

 

 

  [동아광장/정옥자]인문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지난주 서울대 대학신문에 기초학문 단과대의 실정을 집중 취재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인문대? 법대 전과 위한 수단이죠’였다. 지난해에 다른 단과대로 전과한 학생이 59명인 반면 인문대로 온 학생은 9명에 불과했고 올해도 44명이 떠나고 8명이 왔다. 해마다 50여 명이 인문대를 떠나는 셈이다.

문리대 사학과 동기인 학장의 반응은 ‘창피하다’였다. 그의 한마디에는 지난 시절 문리대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물씬 묻어났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한 1961년은 정치적 격변기였다. 전해에 4·19혁명이 일어났고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이런 와중에도 학문의 전당이라고 일컫던 대학로의 문리과대와 중앙도서관은 문리대생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진 단과대에서 몰려온 학생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지금의 방송대 자리에 있던 법대에서는 구름다리를 건너 문리대로 와서 청강했다. 종암동에 멀리 떨어진 상대에서 온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단과대마다 배지를 달리했기 때문에 쉽게 식별됐다. 직사각형 감색 바탕에 은색으로‘文理科大學’이라 쓴 배지는 문리대생의 자부심을 대변했다.

인문대, 법대 전과 위한 수단?

61학번 서울대 전체 수석합격자는 철학과 지망생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변 중의 이변이지만 당시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기 때문이지만 인문학을 중시하던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한다.

라일락의 보랏빛 향기로 가슴 설레던 봄날, 해묵은 은행나무가 떨어뜨린 노란 은행잎의 향연이 펼쳐지던 가을날, 친구와 거닐던 문리대 교정의 낭만은 순수 학문에 대한 동경과 맞물린 소중한 추억이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전통 시대인 조선시대는 인문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인문학 구조인 문사철(文史哲)이 순서만 달리하는 경사문(經史文)으로 중시됐다.

오늘날의 철학에 해당되는 경학(經學)이 우선이고 다음이 역사와 문장학이었다. 경사문은 유기적으로 통합돼 인문학의 완성을 이루는 학문체계였다. 인간다운 삶의 지침과 모델을 인문학이 제시했다.

19세기 말 지식인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이른바 근대적 학제가 등장해 전통 학문의 전당이던 성균관의 위상이 추락하자 신발과 모자가 바뀌었다고 갈파했다. 인문학이 실용학문에 밀릴 것을 이미 예견한 셈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탐구해 바람직한 인간형을 길러 내고 인간의 품질을 높이려는 인문학의 근본정신마저 실종되고 말았다.

전통의 끝자락은 1960년대까지 문리대라는 존재로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974년에 문리대는 인문대 자연대 사회대로 갈라지면서 관악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문학을 중시하던 희미한 전통의 그림자도, 낭만과 멋을 구가하던 고색창연한 분위기도 없는 공장 같은 관악 캠퍼스로 자리를 옮긴 순간 인문학의 조종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억단일까?

인문학적 소양과 실용적 지식을 갖출 수 있는 연합 전공제도의 도입,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 졸업 후 취업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많이 만들어 지원하는 일 등은 모두 방법론으로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문학의 콘텐츠 문제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혼란은 결국 사람이 삶에 임하는 자세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인문학의 문제임을 통감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지표 설정, 삶의 질을 고양하는 인문적 교양의 질적 확충 등 인문학 자체의 콘텐츠를 채워 넣는 일이 시급하다. 인문학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공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자는 말이다.

필요성 공감할 콘텐츠 만들어야

다음에는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몸에 좋고 영양가가 많은 음식도 억지로 먹이면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체한다. 재미있고 유익한 교과과정을 개발해 학생이 좋아서 인문학 강의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의 편에 서서 그들이 듣고 싶은 강의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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