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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살리기 -문사철, 시서화

한학이 인기라니...

 

 

한학 인기… “실생활에 고전의 지혜 큰 도움”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소학ㆍ논어ㆍ맹자 공부… 소모임 학습 활발하고 현장답사도
“지도자 꿈꾸는 젊은이는 반드시 한문 고전을 읽어야… 역사ㆍ한자 공부에도 유익”

지난해 12월 26일 화요일 저녁 6시 무렵,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민족문화추진회의 1층 대강의실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부터 직장인, 가정주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까지 참석자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두꺼운 책을 하나씩 들고 자리를 잡는 이들은 6시30분에 시작하는 한학 특강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이다. 80석이 훨씬 넘는 강당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잠시 후 강사가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된다. 이날의 수업 교재는 ‘맹자’. “今王(금왕)이 與百姓同樂則王矣(여백성동락즉왕의)시리이다. 지금 왕께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신다면 천하의 왕노릇을 하실 수 있습니다.” 강사가 책을 읽어 내려가자 남녀노소 학생 모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따라 읽는다. 한 학생은 선생님의 리듬에 맞춰 끊어 읽는 곳에 밑줄을 긋느라 정신이 없다. 독음을 재빨리 받아쓰는 학생도 있다. “맹자의 문장은 호흡이 길어요. 하지만 놓치지 말고 잘 따라하도록 노력하세요.” 강사의 말에 학생들은 다시 한 번 장단을 맞추며 낭독한다.

▲ 국어연수원에서 '논어'특강을 듣는 사람들이 강의에 열중하고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의 부설기관 국역연수원에서는 1976년에 일반인을 위한 한학 특강을 개설했다. 과목은 맹자와 논어, 두 과목이 있고 각각 주 3일씩 두 달간 진행된다. 수업료는 과목당 10만원이다.

모든 것이 서구화·디지털화 돼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한학 공부는 다소 생뚱맞고 시대에 뒤지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 한학에 심취한 사람이 한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교육기관에서 주관하는 강좌뿐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사설기관 또는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한학 수업이 여럿 된다. 한학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자발적으로 뭉쳐서 공부하기도 한다.

▲ 두꺼운 한문 고전을 열독하는 학생들.
국역연수원의 맹자 특강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자리를 잡고 교재를 열독하고 있는 주창경(57)씨는 일산에서 특강을 들으러 온다. 주씨는 왜 한학을 공부하는 걸까.

“우선 한학 공부가 재미있어요. 그리고 한학에는 철학적 내용이 많아서 삶의 지혜를 찾을 수 있어요. 중국 고대사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좋고, 한문을 많이 접하고 읽다보면 문장 해석력이 길러지기도 하지요.” 주씨는 한학이 현대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같은 강의를 듣는 고등학교 3학년 변성환군은 수능시험이 끝난 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누나와 함께 이곳에 와서 맹자를 공부한다. 변군은 “오늘이 네 번째 수업이라 아직 적응이 덜 됐지만 한자를 많이 배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변군은 중국어를 전공할 예정이다.

‘입시교육의 메카’이자 ‘사교육의 천국’으로 통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도 ‘한문서당’이 있다. 강남구가 지역 주민을 위해 지난해 12월 초 개설한 것으로, 대치3동 문화센터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열린다.

이 서당의 훈장 선생님은 서울 마포에서 동천서숙 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최권흥(78)씨다.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7시. 새하얀 머리에 자그마한 체구의 훈장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어린 여학생이 일어나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외친다.

“子曰 君子 不重則不威(자왈 군자 부중즉불위)니 學則不固(학즉불고)니라. 主忠信(주충신)하며 無友不如己者(무우불여기자)요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니라. 공자 말씀하시길 ‘군자는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느니라’. 옛날에는 지도자가 되려면 무게가 있어야 했어요. 예전에는 배도 좀 나오고 그래야 군자라고 할 수 있었어요. 요새는 다들 가벼워지려고 난리지요?” 훈장 선생님의 입담에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태어나기를 가볍고 조그맣게 태어난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길이 있지요. 두 번째 구절이 바로 그 길을 알려주고 있어요. 모든 일에 충성스럽게 정성을 다하고 믿음직스럽게 행동하면서(主忠信)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사귀고(無友不如己者) 잘못이 있을 때는 바로 고치는(過則勿憚改) 태도를 가지면 누구나 묵직해질 수 있어요. 크기가 작아도 묵직한 금덩이와 같아요. 가볍게 태어났어도 행동을 바르게 하면 무게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훈장의 찬찬한 설명에 웃던 학생들이 사뭇 진지해지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고령의 훈장이지만 칼칼하고 절도 있는 목소리는 교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인자한 웃음이 사라질 줄 모른다. 그날 배운 구절을 최 훈장이 시조창을 하듯 외어주는 것으로 수업은 끝난다.

서울 대치1동에 사는 주부 학생 양수애(49)씨는 “수업 내용이 실제 생활과 접목이 되는 부분이 많다”며 “선생님께서 역사적인 맥락도 짚어주시기 때문에 역사 공부도 된다”고 했다.

지방으로 가면 한학을 공부하는 모임은 훨씬 더 활성화 돼 있다. 대전에는 전통 서당식으로 학생이 직접 쓰고 읽고 외우게 하는 송양정사 서당이 있다. 이곳은 13년 전 유학자 서암 김희진 선생이 후진을 강학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현재 이곳의 훈장으로 있는 유창중 선생은 “한학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이라면서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거의 사라져가는 동양의 예의와 도덕을 조금이나마 붙잡기 위해서 한학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송양정사 서당은 대학생반과 초·중등학생 반으로 나눠진다. 방학 때는 각각 25명, 10명 정도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한다. 대학생은 논어, 맹자, 대학을 배우고 어린이는 사자소학을 배운다. 유 선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1대1로 개인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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