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강 정철을 찾아서

송강정 3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3)


  이어서 나는 한 쪽 마루 귀퉁이에 붙어 있는 ‘신원에 있으면서 습재에게 부치다’ 시를 본다. 


매번 생각하니 송강의 옛 별장도 거칠었음을

 풀무장이 해중산도 산양을 떠났으니

 세상 밖에서 은거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인간세상에서 관직에 근무하느라 바쁘구나.


 일 년에 아홉 번 옮기던 일 모두 꿈이려니

 조정에 거듭 들어간 적이 몇 해던고

 춘양 가지고서 다시금 남주로 멀리 가나니

 선정전의 성덕을 뵈올 길 없어라.

 

  每憶松江舊業荒 

  鍛爐中散離山陽   

  消殘物外烟霞想 

  辦得人間卯酉忙  


  一歲九遷都夢寐 

  修門重入幾星霜  

  舂糧更適南州遠

  宣政無由覲耿光


 이 7언 시의 한문들을 조금 풀어보자. 먼저 ‘중산이산양(풀무장이 해중산이 산양을 떠났다)’이다. 풀무장이 해중산은 중국 진나라 사람인데 그는 벼슬을 사직하여 산양(山陽)이란 곳에 숨어서 풀무장이를 하였다 한다. ‘물외연하상’은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노을과 안개를 느끼면서 사는 그런 은거하는 마음을 말한다. ‘인간묘유망’은 옛날에 관리들은 묘시에 출근하여 유시에 퇴근하였다 한다. 즉 아침 5-7시 사이에 출근하였다가 오후 5-7시에 퇴근하였다. 지금 공무원 출퇴근 시간과 비교하여 보면 출근 시간은 더 빠르고 퇴근 시간은 비슷하다.    

  다음은 두 번째 7언시 3째 구절의 ‘춘량(舂糧)’ 이다. 이 단어는 <장자(莊子)>책 맨 첫 장인 소요유(逍遙遊) 편의 붕새(붕새는 등허리가 몇 천리 되는 전설상의 큰 새이다)이야기에 나오는 단어인데, 여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까운 교외로 나가는 사람은 세끼만 준비하여도 온 종일 배부를 수 있지만,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밤새 방아를 찧어 식량을 준비하여야 하고(適百里者, 宿春糧),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전부터 식량을 준비하여야 한다(適千里者,三月聚糧).’  그러므로 송강은  꽤나 먼 길을 가기 위하여 ‘춘량’ 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는 제목이 말하여 주듯이 송강이 고양 신원에 있으면서 습재 권벽(1520-1593)에게 보낸 시이다. 권벽은 서인 강경파로서 송강과 친하게 지낸 사람이었다. 그의 벼슬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시문에는 상당한 일가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송강의 제자인 당대 최고의 시인 석주 권필(1569-1612)이다. (권필은 그의 꿈에 나타난 술에 취한  충장공 김덕령장군을 노래하는 취가곡을 지은 시인이기도 한데 이 취가곡이 있는 곳이 광주 충효동 환벽당 옆의 취가정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시 이야기 하련다.)


  1585년 8월 송강은 당초에 부모의 묘가 있는 경기도 고양 신원에 머물렀다. 그런데 동인과 사헌부․사간원 양사의 압박이 너무 심하여 멀리 남쪽 창평으로 오게 된다. 이런 정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시가 바로 이 시이다. (원래 이 시는 2수이다. 첫 번째 시는 습재에게 신원의 생활을 알리는 시이고 두 번째 시가 바로 우리가 지금 감상하는 시이다.)


  이렇게 서울에서 천리 떨어진 창평에 온 송강은 그의 마음을 도연명의 귀거래와 비유하여 귀래(歸來)라는 시를 읊는다. 


 돌아오다


  꼭 세상을 등지자고 돌아온 게 아니라 

  우연히 도연명처럼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네.

  황국화 실컷 따다 취하도록 즐기거늘

  두건도 벗겨진 채 남쪽으로 온 기러기는 소리 높여 읊나니.


  歸來   


  歸來不必世相違 

  偶似陶公悟昨非   

  采采黃花聊取醉 

  倒巾高詠鴈南歸   


  다시 남방으로 곧 창평으로 내려 온 것이 아예 세상을 등지자는 것  은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도연명처럼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한문 작비(昨非)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각금시이작비(覺今時而昨非)’ 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벼슬을 안 하겠다고 깨달은 지금은 옳고(今時), 벼슬을 하겠다고 한 어제는 잘못이었다(昨非).’


  황국화를 따다가 만든 술을 실컷 마시고 취하면서 즐기거늘, 두건도 벗겨진 채 남으로 온 기러기는 소리 높여 읊고 있다. 이 국화 술도 도연명의 음주 시에서 자주 나오는 대목이다. 귀거래를 하는 은자의 삶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 국화 술이다.


  송강은 자신을 기러기에 비유하면서 ‘비록 아예 머물자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왕에 이렇게 낙향하여 사는 몸이니 이제라도 도연명의 삶을 본으로 삼아서 잠시라도 현실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하고 살자. 귀거래의 무위자연을 즐기자.’ 고 이 시에서 읊고 있다.


  한편 나는 송강의 시 4수가 같이 있는 마루 위 현판의 마지막에 있는 ‘사암의 운에 차하다(次思菴韻)’ 라는 시를 감상한다.


 이 몸은 병든 학과 같아, 못가노라 고향 산천

  시냇가엔 송죽이  늙고, 골짜기엔 난초가  늙었으리.

  한강의 가을바람 수심 속에 지나고

  고향 길은 꿈속인양 아련하구나.


  야릇한 인심  겪노라니 머리는 온통 희였고

  쓰다 쓴 세상맛 보아가니 이가 또한 시리구나.

  그 옛날 송강에서 낚시하던  벗 그리워.

  달밤에  노를 저어 앞 여울로 내려가네.

     次思菴韻   


    身如病鶴未歸山     溪老松筠谷老蘭 

    漢水秋風愁裏度     楚雲鄕路夢中漫

    人情閱盡頭全白     世味嘗來齒更寒   

    遠憶松江舊釣侶     月明搖櫓下前灘  


  힘든 세상살이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포근히 해줄 고향을 그리는 시이다. 고향길이라 함은 창평을 말하는 것이다. 그 옛날 송강(松江)에서 송강과 같이 낚시하던 벗은 박순일 수 있다. 사암 박순은 송강보다 나이가 13살이나 위이나 벗으로서 형으로서 같이 놀았으리라. 더구나 사암이 살았던 광주와 송강이 살았던 창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두 사람은 성산 자락에서 같이 어울렸을 것이다. 

   

  사암 박순(1523-1589).

  그는 나주 출신 재상으로서 눌재 박상의 조카이며, 그의 아버지 박우가 개성유수로 있을 때는 화담 서경덕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는 31세인 명종 8년(1553년)에 장원 급제 한 후 34세(1556년)에 중국에서 들여오는 부마의 밀수품을 압수하여 이름을 날리었다. 그는 시에도 뛰어나 당나라 시풍의 시를 쓰고 최경창·백광훈·이달 등 삼당시인을 가르친 문인이기도 하다. 1565년에 대사간이었던 그는 강직한 언론으로 당시의 세도가 윤원형을 몰아내어 사림의 기반을 잡고 정계의 핵심이 되었다. 또한 그는 15년간을 정승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서울에 집 한 채 없는 청렴한 선비이기도 하였다. 한편 그는 이이·성혼·정철 등과 친하여서 서인의 영수로 알려졌는데 1585년 8월에 서인들이 몰락하자 그도 영의정에서 물러나고 마지막 생을 경기도 포천의 백운산 근처에서 지내다가 1589년 7월에 별세한다.


  이 때 송강 정철은 사암 박순에 대한 만시를 이렇게  쓴다.


사암의 부고가 오다. 思菴訃至 2수  기축 7월


나는 떼를 잃은 기러기 같네.

이 몸을 어느 곳에 의탁하리오.

외로이 나는 갈대밭 사이에

그림자 찬 구름과 함께 사라지도다.


백순이 복이 없는 까닭은

천하가 복이 없기 때문이요.

운명이라 마침내 어찌하리.

가을바람에 한바탕 통곡을 하네.


  1589년 기축년 7월, 이때는 송강이 창평에 낙향한지 만 4년이 되는 해이다. 가장 후원자였던 사암 박순마저 죽었으니 그의 심정은 길 잃은 기러기였으리라.


  그런데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어 임을 향한 일편단심을 읊어 보아도 임금의 부름이나 예전의 성은은 없다. 더욱이나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 시절 때 같이 근무하였던 조헌은 여러 번 임금에게 정여립을 비판하는 글과 서인을 등용하라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임금께서 아무 대답이 없자, 1589년에 도끼를 들고 상경하여 동인의 전횡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이에 선조임금은 크게 노하여 조헌을 함경도 길주로 귀양 보내었기에 송강의 마음은 더욱 쓸쓸히 하기만 하다.


 

'송강 정철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강정 5  (0) 2007.03.27
송강정 4  (0) 2007.03.21
송강정 2  (0) 2007.03.10
송강정에서 1  (0) 2007.03.01
소쇄원 7 - 송강문학기행  (0) 2007.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