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국화를 심으면서
김인후
나무를 심으려면 소나무를 심어야 하고
꽃을 심으려면 국화를 심어야 하네.
소나무는 사철에 봄을 머물게 하고
국화는 중앙의 황색을 타고 났네.
다행히 병들어 내 돌아오니
전원이 어찌나 마음이 드는지
북쪽 고개의 어린 소나무를 추울 때 옮기고
동쪽 울타리의 푸른 국화를 빗속에 나누었네.
천년의 눈서리를 겪은 등걸에
가을바람 늦은 향기가 스며드네.
이제 중산의 술을 빚으면
국화를 한 줄 따다가 술에 띄우리.
雨中種菊 우중종국
種木當種松 종목당종송
種花當種菊 종화당종국
松留四季春 송류사계춘
菊禀中央色 국품중앙색
幸我以病歸 행아이병귀
田園頗自得 전원파자득
寒移北領稚 한이북령치
雨分東籬錄 우분동리록
千年霜雪幹 천년상설간
秋風襲晩馥 추풍습만복
且釀中山醪 차양중산요
采采乏盈掬 채채핍영국
학문과 절의 節義의 큰 선비 하서 김인후(1510-1560). 인종 임금의 스승이었던 그는 인종이 죽고 명종의 즉위 직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칭하고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온다. 귀거래사를 하면서 그는 국화처럼 삶을 산다. 유독 도연명을 좋아한 그이기에 이 시는 더욱 의미가 있다.
첫 연에서 언급된 소나무와 국화는 참된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말한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도 소나무와 국화가 언급되고 있다.
자, 돌아가자. 歸去來兮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였고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하겠는가?
중략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온통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후략
삼경취황 송국유존. 이 말은 한나라의 연주자사 장후가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면서 정원 안에 소나무, 대나무, 국화가 심어진 세 갈래 길을 내 놓고, 구중과 양중이라는 친구만 오게 하여 놀았다는 고사 故事에서 나온 말로, 뒤에는 은자의 거처를 삼경이라고 하였다.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도 시들지 않았음은 그만큼 은자의 절개가 굳음을 비유한 것이다.
하서의 시 두 번째 연의 ‘동쪽 울타리의 푸른 국화를 빗속에 나누었네. (雨分東籬錄 우분동리록)’라는 표현도 도연명의 시 음주 20수중 飮酒 제5수의 ‘동쪽 울타리에 피어난 국화꽃을 딸 새, 무심코 저 멀리 남산이 보이노라(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를 연상케 한다.
마지막 연의 ‘이제 중산의 술을 빚으면 국화를 한 줄 따다가 술에 띄우리.’도 도연명의 음주 제7수중 한 수의 구절이 생각나게 한다.
가을 국화 빛이 너무 아름다워
이슬 젖은 꽃잎을 따서
수심 잊게 하는 이 술에 띄워 마시니
속세 잊어버린 이내 심정 더욱 깊어라
한편 장성 필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는 시와 시조를 잘 짓기도 하였는데 자연가’와 ‘소쇄원48영’ 시는 너무나 유명하다.
청산 靑山도 절로절로 녹수 綠水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늙기도 절로 절로하리라.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 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己矣哉 自然生來人生 將自然自然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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