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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 모음

부의 미래 2- 시간, 공간, 지식 혁명

 

 

 

[‘부의 미래’] 시간·공간·지식의 혁명이 한국을 뒤흔든다

공간혁명

시간혁명과 맞물리면서 공간혁명은 공간인식과 공간압축이라는 두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갈릴레오의 망원경 이후 우주 먼 곳에 대한 인식의 지평은 공간적으로 계속 확대되었다. 허블 망원경이나 전파 망원경은 은하의 끝에서 전해지는 성운의 모습을 포착하면서 공간인식혁명이 진행된다. 한편 교통과 운송에서 비약적인 기술발전은 공간을 비약적으로 압축해왔다. 80일 만에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일이 경이롭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불과 100여년 전인데 아리랑 2호는 685㎞ 상공에서 100분 만에 지구를 한 바퀴씩,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이나 돈다.

자본주의는 공간에 대한 세밀한 통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수퍼마켓에 들어서서 계산대를 빠져 나오기까지 더 많은 선반 사이를 통과하도록 만든 설계도는 1917년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그 이후, 선반 높이에 따라 어떤 상품을 진열해야 하는지도 연구하면서 공간효율화에 박차를 가했다. FTA는 경제 활동에서 국가라는 공간적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부의 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본과 노동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신이 방문한 곳을 지도 위에 표시해 보자. 여기에 전자적으로 움직인 공간, 즉 수신한 이메일의 발신지, 온라인으로 방문한 사이트의 서버가 위치한 도시를 더하여 표시해 보면 자신이 지구 상에서 움직이고 접촉한 공간적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를 기업의 종업원 모두의 업무활동에 적용한다면, 기업의 활동 범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활동 범위를 10년 전의 것과 비교한다면, 개인이나 기업의 공간 범위는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벗어난 우주로 향한 공간혁명도 새로운 부의 근원을 마련하고 있다. 유료 우주여행 상품이 생겼으며, 미항공우주국(NASA)은 앞으로 우주여행사업이 항공산업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자신 있는 시장 전망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거부들을 상대로 여행비용을 100만달러로 낮추면 2030년에는 350억달러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위성을 이용한 위치확인시스템(GPS)은 이미 소포의 전달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여 소비자에게 소포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GPS는 어린이 유괴 방지를 위해 사용되거나, 부근에 위치한 자동차 정비소를 알려주는 등 적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세계적인 검색업체 구글이 제공하는 ‘구글어스’는 서울의 도로와 건물뿐만 아니라 지구의 어느 구석도 위성 사진으로 찍어 무료로 제공하면서 광고 수입을 올리고 있다.

▲ 우주여행 상상도
공간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상공간의 확대이다.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에 생겨난 어느 마을에서 살기 위해 신용카드로 사이버 머니를 산다. 3차원 가상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땅이나 건물을 분양 받은 후 자신의 얼굴과 옷 등의 아이콘을 구입하여 마을에 정착한다. 사이버 커뮤니티에 이사 온 이웃집 사람과 사귀고, 자신의 전문지식을 살려 변호사 상담이나 꽃 배달 가게 등을 개업하여 돈을 벌기도 한다. 이 마을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이버 주민끼리 온라인에서 사이버 섹스를 즐기거나 결혼서약을 하고는 가상 신혼여행을 떠난다. 사이버 커뮤니티에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 생겨났으니, 확장된 공간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시간·공간혁명은 따로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공의 압축’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축지법처럼 공간이 압축되면 공간 이동에 걸리는 시간도 함께 압축되어 분·초의 단축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시·공의 압축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했던 경계들을 함께 무너뜨린다. 시·공에서 경계가 무너지는 예를 생각해보자.

10년 전에 비하면 요즘 화장실에는 야한 낙서가 별로 없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터넷 기술 발달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만족시키는 데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의 벽을 인터넷이 허물었기 때문이다. 주로 밤 시간대 또는 으슥한 곳에서 성적 자극에 접하던 사람이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상의 성적 자극에 노출될 수 있는데, 굳이 화장실에 앉아서까지 낙서로 성욕을 표출할 동기가 줄어든 것이다.


지식혁명

부가 창출되는 심층기반 중 가장 핵심은 의문의 여지 없이 지식혁명이다. 시·공혁명은 단지 지식혁명의 결과 또는 지식혁명이 적용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전통적인 통계 지표들은 아직 지적재산권으로부터 발생하는 부가가치나 수익을 체계적으로 집계하지 못해 지적재산권 수익의 규모를 국가별로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는 휴대전화 매출액의 5%가 미국의 퀄컴이라는 회사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 특허사용료로 지불된다는 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IBM에 연간 2000만달러 이상의 특허료를 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적재산권이 만드는 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개인이나 대학이 보유한 특허를 사들인 다음, 기술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 대여하는 중개회사가 생겨나서 큰 수익을 내기도 한다. 토플러의 주장대로 부를 창출하는 지식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지식이라는 자산은 일반적인 자산과 매우 다른 특징이 있다. 상품은 소비하면 없어지지만 지식은 소비해도 남아 있다. 또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에 시승을 해 보아도 차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토플러의 예에서처럼 노스롭사가 경쟁사인 록히드의 비밀 데이터를 사는 경우는 사뭇 다르다. 지식이나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려면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내용을 아는 순간 비밀 데이터의 가치는 손상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떤 과학자가 지식을 공개하는 순간, 다른 과학자가 자신의 영감을 덧붙여 더 가치 있는 지식으로 바꾸어 줄 수도 있다. 한 상품에 다른 상품을 결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는 어려워도, 지식에 새 지식을 더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는 무척 쉽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지식혁명은 가속화(加速化)하는 성격이 있다.

지식혁명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혁명의 두 가지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지식은 상호작용하면서 거대하고 복잡한 지식체계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지식은 점차로 학문의 경계를 넘는 지식이다. 즉 사람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전통적 학문의 경계를 무시하면서 지식이 발생한다. 물리학과 사회학이 만나고, 생물학과 공학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것이다. 둘째, 지식의 빠른 변화는 지식의 절반이 쓸모 없게 되는 ‘지식 반감기’를 단축한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산업사회에 기반을 둔 지식 생산체계에 커다란 도전을 던진다.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공·지(時·空·知) 혁명은 한국에도 도전과 기회를 던지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IT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은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앞장서 올라타고 있을지 모른다. 과연 토플러가 역설한 시·공·지혁명이 한국에 어떤 미래를 열어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학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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