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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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sunflower 하면 연상되는 것이 3가지가 있다.
그 하나,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영화 “해바라기”의 마지막 장면.
강렬한 태양이 비추이는 크로아티아의 해바라기 밭에 서 있는 그 녀.
이역만리 러시아 땅을 다 헤매어서 2차대전에 나가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았지만 그는 전쟁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젊은 여자와 새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그 둘, 빈센트 반 고호(1853-1890). 37세에 정신착란으로 권총 자살한 고호 그림의 대명사는 해바라기이다. 연한 파랑색을 배경으로, 진한 노랑색의 해바라기 그림은 태양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 셋,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지하철 광고. ‘고용지원센터와 함께 내일도 활짝 웃으세요‘ 란 글과 함께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몇 송이의 해바라기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무덤 주위에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시를 쓴 함형수(1916-1946). 그 또한 고호처럼 해방 후 정신착란으로 31세에 요절하였다.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와 해바라기를 노래한 시인이 모두 정신착란으로 죽은 것은 우연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일편단심으로 해를 향하려는 예술가들의 천형(天刑)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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