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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선일보 창간 86주년 기념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전이 개막 3주 만에 누적 관람객 수 9만6000명을 넘어섰다. 평일에도 4500명 이상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12일 관람객 10만 돌파를 앞두고, 전시회에 걸린 명작에 얽힌 대가들의 사연을 곁들여 ‘그림 깊이 읽기’ 붐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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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처음 온 소녀 애들린
이번 전시회에 걸린 94점은 보험 평가액 총액이 6억8000만 달러(6460억원)에 달한다. 모두 한국에 처음 왔다. 청동상인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채색 석판화인 에드바르크 뭉크의 ‘죄’ 등 딱 두 작품만 같은 작품의 다른 에디션이 온 적이 있다.
그중 ‘애들린 라부 양의 초상’(1890년작)은 반 고흐의 마지막을 지켜본 소녀 애들린을 한국 땅에 처음 데려온 작품이다. 애들린은 반 고흐가 자살 직전 세 들어 살던 파리 북쪽 작은 마을 여인숙의 13살 난 딸이었다. 반 고흐는 애들린의 초상화를 3점 그렸다. 그 중 2점은 개인 소장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에 있던 나머지 한 점이 이번에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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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를 울린 여자
뭉크의 ‘죄’(1901년작)를 놓고 지난 몇 년간 서양 미술계에선 논란이 일었다. 무섭고도 쓸쓸한 눈동자를 가진 이 여자가 뭉크의 애인 툴라 라슨(1869-1942)이라는 게 정설이었으나, 최근엔 이 여자가 툴라가 아니라 뭉크가 고용한 직업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나왔다.
유재길(劉載吉) 홍익대 교수(미술사)는 “뭉크는 막연한 현대인의 불안을 그린 작가”라며 “특정 모델의 초상화라고 보기 보다, 뭉크의 내면이 우러나온 작품이라고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툴라와 뭉크는 1898년에 만나 1902년에 결별했다. 사귀면서도 내내 격렬하게 다퉜다. 이탈리아로 함께 여행갔다 크게 다툰 뒤, 뭉크가 툴라를 혼자 돌려보내기도 했다. 화해하려고 만난 자리에서 툴라는 뭉크의 왼손에 총을 쐈고 이 일로 둘은 갈라섰다. 뭉크는 평생 총상이 남은 손을 볼 때마다 “내 인생에서 3년을 낭비했다”고 괴로워했다고 노르웨이 뭉크 박물관은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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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르가 사랑한 여자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저녁 식사 후’(1921년작)엔 보나르의 아내 마르트가 등장한다. 보나르는 25살 때 파리 전차에서 만난 가난한 아가씨 마르트에게 한눈에 반해 평생 380점 넘게 그녀를 그렸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 평론가 피터 슈젠달은 마르트를 “결핵·천식·건강 염려증·광장 공포증 환자에다, 강박적으로 목욕을 반복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마르트가 나이 들어 피부병이 든 뒤에도 한결같이 젊고 매끄러운 모습을 그린 보나르를 놓고, 미술평론가 이주헌(李周憲)씨는 “둘은 새 주인과 새장 속의 어여쁜 새 같은 관계였다”고 했다. 함께 걸린 보나르의 ‘낭트로 가는 길’(1929년작)에는 두 사람이 온천여행 다니면서 즐긴 풍광이 담겼다.
- ‘여인의 초상’(1917-1918년작·왼쪽)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파리의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며 그린 초상화들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처음 왔다/‘잠자는 여인을 어루만지는 미노타우르스’(1933년작·오른쪽)는 파블로 피카소가 1939년에 펴낸‘볼라르 판화집’에 들어있다. 피카소는 46세이던 1927년 17살짜리 소녀 마리 테레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 판화 속 여인은 마리 테레즈, 황소 머리에 사람 몸을 한 신화 속 괴물 미노타우르스는 피카소 자신이라고 미술사가들은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