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1.09 23:44
- “전 나이 먹는 게 좋아요. 한 살 더 먹으면, 마음 속 정원은 한 뼘 더 넓어지니까요.”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이라고 반응한다.
그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사람이 팍팍해지고, 만나는 사람도 줄어든다고 하소연한다. 한마디로 성질머리가 삶은 사태보다 더 뻑뻑해지는 자신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일단 외톨이를 자처한다. “어이, 오늘은 (38일째 스트레이트로 죽 먹어온) 대구탕이나 먹으러 갈까”라는 선배 말에 “약속 있습니다”라고 확 받아친다. 선배의 얘기는 지루하고, 후배들의 태도는 거슬린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아쉬운 소리 해야 할 상황도 적잖지만, 그건 ‘테크니컬’ 하게 잘 넘어간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40개’ 이상 넘은 이 사회에서 ‘장년층’.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거나, 적어도 나이로 꿀릴 일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잃는 이유는 ‘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이 많을수록 사람들을 유형화할 데이터는 많아진다. 척 보면 안다. 좋은 레스토랑에 예약해 놓고는 “후식은 공짜로 주는 거지?” 묻는 걸 보니 ‘폼생폼사쪼잔형’, 아무에게나 무슨 주제든 꼬치꼬치 설명하며 아는 척하기를 일삼는 것을 보니 ‘과잉지식습득부작용형’, “철수랑 제가 동기 아닙니까. 몇 학번? (인상 찌그러진 것 확인 후) 이신가요?” 스리슬쩍 들이대다 움찔하는 걸 보니 “민족대출신쾌남가장소심남’, “아, 우리 오랜만에 젊은이들 많은 홍대앞 어때어때? 내가 이래도 아저씨야?” 오, 노무에 지친 ‘핀트안맞는노무(노모어엉클)강박증환자’.
미국 미주리주의 워싱턴대학 심리학 박사과정 연구자들은 과거 자신의 추억을 회상할 때 활동하는 뇌 영역과 미래의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는 영역이 ‘놀랍게도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는 보고를 내놨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중 상당수는 과거 회상을 못하는 건 물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데, 바로 이런 걸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연구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미 있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오늘 우리 곁의 뻔하디 뻔한 인간의 군상이 바로, 미래를 상상하는 나의 두뇌 작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뻔한 사람들’의 뻔하지 않은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미래상을 풍성하게 만들 거라는 사실. 그래서 오늘의 급훈은, 옆에 있는 자들에게 예의를 갖추라는 것. 혹은 ‘(옆에) 있으면 (그냥)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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