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월드]한·중·일 3색 ''대나무코드'' | ||||||
[세계일보 2006-01-13 17:39] | ||||||
조선 중기 시인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선조들은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를 절개 있고 강직한 군자의 인품에 비유하며 남다른 애정을 표현해왔다. 그런데 대나무에 대한 사랑이 우리 민족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 중국과 일본의 문화 속에서도 다양하게 표출됐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 속에서 대나무가 어떻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등 20여명의 저자가 대나무와 관련된 3국의 문화를 낱낱히 비교·분석했다. 이는 한중일 문화코드 일기로 기획된 시리즈의 하나로, ‘매화’와 ‘소나무’에 이어 세 번째 주제이다.
“고기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 서예 대가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 역시 “어찌 하루라도 ‘이 사람(此君)’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며 대나무를 사람처럼 여기며 아꼈다. 대나무가 이처럼 문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과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식물이면서 동시에 의연한 선비의 기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절개를 지킨 인물의 일화 속에 대나무가 빠지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 위진(魏晋) 교체기 끝없는 전쟁을 피해 대숲으로 들어간 ‘죽림칠현’과 고려를 부정하는 역성혁명에 반대하다 철퇴로 척살된 정몽주가 숨진 선죽교(善竹橋), 구한말 을사조약에 반대하며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이 숨진 곳에서 자라났다는 혈죽(血竹) 등 모두 대나무로 그 절개가 기려진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 대나무는 선비의 문화코드로 작용했지만, 일본에서는 상업적 코드로 기울어 세속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무사들은 대나무로 만든 다구(茶具)를 모으고 즐겼으며, 상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 일찍부터 눈을 떴다. 대나무를 상징화한 행사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에디슨과 일본 대나무의 인연도 특별나다. 1879년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6000여가지 재료로 실험했지만 실용화 단계의 전구를 개발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런 이를 구해낸 것이 일본 야와타(八幡)의 오토코야마 대나무. 에디슨은 이 대나무를 이용해 1450시간 동안 빛을 밝히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후 텅스텐 필라멘트가 대체할 때까지 대나무 필라멘트 전구가 세상을 밝혔다. 야와타 시민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지금도 에디슨을 대나무 상징으로 바뀌 신처럼 모시고 축제를 벌인다.
대나무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대나무는 풀인가 나무인가. 이름에 ‘나무’가 들어 있으니, 나무인듯 싶지만 벼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열대우림지역에서 잘 자라는 대나무는 물과 친하지만 중국에서 폭죽의 소재로 사용되는 등 불의 상징도 갖는다. 대로 만든 붓은 선비를 상징하지만 창과 화살은 무사를 뜻한다. 문구와 무구의 소재로 동시에 사용되는 대나무는 문무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받는다. 곧디곧은 성질로 유명한 대나무지만 항상 그런 성정을 지킨 것만도 아니다. 대나무는 한번 뿌리박은 자리에서 함부로 옮겨 심으면 죽는다. 그런데 일 년에 한번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날이 있으니 음력 5월13일 죽취일(竹醉日). 선조들은 대대로 이날 대나무를 옮겨 심으면 뿌리가 잘 내린다고 믿었다. 아무리 고매한 선비라도 일 년 내내 맑은 정신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일탈과 여유의 미학이 드러난다. 생활 속 대나무는 플라스틱 등 다른 소재에 상당 부분 그 역할을 잠식당했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쉰다. 조그만 이쑤시개부터 김밥을 만드는 발, 치약과 각종 건강식품은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죽비와 대금, 해금으로 변신한 대나무는 사람들의 사랑과 감정을 대변하고 깨달음의 도구로 사용된다. 저자들은 한중일 3국의 정신문화 속에 대나무의 기강과 절개는 여전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높이 508m의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 대나무의 마디를 형상화해 만든 이 초고층 빌딩은 대나무의 절개와 영성을 믿는 인간의 믿음과 함께 지구상 가장 큰 ‘대나무’로 우뚝 솟아 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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