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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조선의 문화공간 2

 

 

 

책]조선의 문화공간 1∼4
[세계일보 2006-08-04 16:27]    

“이 책은 관광(觀光)을 위한 것이다. 관광은 빛을 본다는 뜻이다. 빛은 문명이다. 문명을 보기 위해서 눈과 다리만 가서는 되지 않는다. 마음이 따라가야 한다. 마음은 글에 있다. 옛사람이 사랑한 땅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그 빛을 보아야 한다. 흔적조차 없는 인왕산 아래의 주택가에서 인왕산에 대한 장혼(張混)의 글을 읽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압구정(狎鷗亭)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옛 사람이 남긴 빛을 보기 바란다. 아름다운 산수를 그린 글을 읽으며 그곳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지금 사라진 곳이라면 다시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또 그럭저럭 살고 싶은 마음에 ‘상상의 정원’을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조상이 사랑한 삶에 대한 기억의 끈을 현대인들이 놓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옛 정신문화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 국문학과에 재직 중인 한문학자 이종묵 교수의 ‘조선의 문화공간’ 서문에서 따온 말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고서의 보고인 연구원 장서각과 서울대 규장각 자료를 맘껏 뒤져 ‘옛사람이 살던 땅을 통한 조선시대 문화사’를 집대성해 네 권의 묵직한 책으로 엮었다.

◇세종대왕이 형 효령대군을 위해 지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의 정자 ‘희우정’, 단비가 내린 날을 기념하여 이름지은 것이다.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美不自美 因人而彰).” 조선 후기 문인 장혼이 ‘옥계아집첩’(玉溪雅集帖) 서문에 적은 글귀다. 소세양(蘇世讓)은 “산과 물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나게 된다”고 정자 현판에 써 붙이고,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이나 황주(黃州)의 적벽(赤壁)이 왕희지(王羲之)와 소동파(蘇東坡)의 붓이 없었더라면 거칠고 한산하며 적막한 물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었는가” 하고 읊조렸다.

여가를 활용해 아름다운 자연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은 현대인이나 옛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옛사람, 그 중에서도 시화엔 능한 선비들은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산수를 찾아 한때의 흥겨움을 누리고, 그 추억이 사라질까 염려하여 시화로 흥감을 표현하고 글로 자세한 여정을 기록했다. 현대인들이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하면서 어딜 가나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은 옛사람들의 기행 시와 기행문이 문명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각 권별로 ‘조선초기―태평성세와 그 균열’(1책), ‘조선중기―귀거래와 안분’(2책), ‘조선중기―나아감과 물러남’(3책), ‘조선후기―내가 좋아하는 삶’(4책) 등의 부제를 단 ‘조선의 문화공간’은 시대와 환경, 처지에 따라 무척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생생한 서사시와 격조 있는 풍경화로 담아냈다. 1책은 개국 후 태평을 구가하던 시기에서 각종 사화로 사람이 유배를 떠나는 시기까지를 다뤘다. 도성에 끌어들인 산수와 압구정·망원정 등 한강변의 누정들, 유배지, 그리고 강학의 공간 독서당을 살폈다. 2책은 선조 대에서 광해군 대까지 문화사에 자취를 남긴 중요한 인물과 관련한 공간을 다뤘다. 이 시기는 사림 정치가 본격화되던 때로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한 귀거래와 그곳에서 수양에 힘쓰거나 풍류를 즐기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3책은 광해군과 인조 대에 영욕의 세월을 산 문인과 이후 17세기 사상계와 문화계를 호령한 명인들이 살던 땅에 얽힌 사연을 펼쳐보인다. 4책은 18∼19세기 문학과 학문, 예술을 빛낸 문인들의 이야기들이다. 벌열가의 화려한 원림에서, 궁벽한 땅에서 예술혼을 사른 사람들이 대비되는 가운데 세상을 구하고자 한 실학자들의 기백이 돋보인다.

조선의 문인들은 대개 정치가이면서 사상가이고, 또 시인이기도 했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혁명가였고, 때로는 은둔하며 심신을 수양하고 강학에 몰두하며 이념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개국, 태평성대, 유배, 은둔, 강학 등 새로운 도전과 좌절, 꿈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살며 ‘조선’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만들어 냈다. 조식 이황 이이 서경덕 이언적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김안국 허균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서유구 등 87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재능이 뛰어나 붓끝으로 조선의 산하를 시와 그림으로 엮어냈다. 따라서 책 행간에는 문학 사상 예술 풍류를 아우른 조선의 사람과 땅, 그 시대의 문화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감칠맛 나게 담겨 있다. 무더운 여름밤 냉수에 발 담그고 조선의 선비들이 먼저 떠난 역사기행에 동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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