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다시 읽고 있다. 사실 <목민심서>는 잘 안 읽히는 책이다. 내용이 어렵고 교훈 위주이며 딱딱하다.
그런데 최근에 메르스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정약용 공부도 하면서 <목민심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여러 권을 빌리고,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검색을 병행하고 있다.
먼저 <목민심서>란 어떤 책인가? 1818년 봄 강진 다산초당에서 이 책을 완성한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서 이렇게 적었다.
<목민심서>는 어떤 책인가? 현재의 법을 토대로 하여 우리 백성을 돌봐주자는 책이다. 율기(律己)ㆍ봉공(奉公)ㆍ애민(愛民)을 기(紀)로 삼고, 이전(吏典)ㆍ호전(戶典)ㆍ예전(禮典)ㆍ병전(兵典)ㆍ형전(刑典)ㆍ공전(工典)을 6전(典)으로 만들어, 진황(振荒) 1편으로 끝맺었다.
편(篇)마다 각각 6조씩을 포함하였다. 고금(古今)을 조사하여 망라하고, 간위(奸僞)를 파헤쳐 내어 목민관(牧民官)에게 주어, 백성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입는 자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그러면 다산은 왜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는가?
다산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하는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썩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하였고, <목민심서>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따라서 신음하는 백성을 살리고자 하는 구민(救民)의 의도에서 목민관들이 이 책을 읽고 실천하였으면 하는 것이 다산의 바램이었다.
목민심서의 요체는 무엇이라 하여도 율기이다. 여기에는 청렴과 바른 몸가짐에 관한 명언이 있다.
“청렴은 수령의 본무(本務)로서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됨이 없을 것이니, 이는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와 법과 상급자와 백성을 두려워하라. 소위 네 가지 두려움이다.
지금 공직자들도 새길 만이다.
“벼슬살이하는 데에 석 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맑음〔淸〕이고, 둘째는 삼감〔愼〕이고, 셋째는 부지런함〔勤〕이다.”
청은 청렴이고, 신은 신독(愼獨), 근은 부지런함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유산으로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주었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아전을 다스림(束吏)’이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징수하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아전은 지방 관청의 실무 집행자이고 전근 없이 한 곳에서 평생 근무하였다. 탐관오리(貪官汚吏)는 욕심쟁이 관리(탐관)와 썩은 아전(오리)을 말하는데,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가 날 뛰던 세상이었다. 그러므로 다산은 “목민관이 썩은 아전을 잘 다스려야 백성이 편안 해진다”고 하였다.
따라서 다산은 이렇게 경고하였다.
“목민관이 시(詩)나 읊조리고 바둑이나 두면서, 다스리는 일을 아전들에게만 맡겨 두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렇다. 부패하지는 않지만 무능한 공직자는 국민에게 가장 해악을 끼친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를 보지 않았는가? 무능은 부패보다 훨씬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