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봉 기대승

고봉, 퇴계를 그리워하다.

 

 

    고봉 , 퇴계를 그리워하다.

 

 

   머리말 (초안) 

     


   <송강문학기행> 책을 발간 한지 1년 만인 2008년 12월 말,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봉서원 뒷산에 있는 고봉 기대승 묘소를 찾았습니다. 높은 봉우리의 철학자는 너무 외로운 모습이었습니다.


   2009년 4월, 고봉 선생 춘향제 제사에 처음 참석한 이후 고봉 답사 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월봉서원, 고봉이 태어난 곳, 부모 묘소, 고봉 살림집터, 낙암, 무등산 규봉, 전북 정읍시 태인동헌과 매당, 옛 월봉서원터, 귀전암, 백우산등 고봉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고봉의 삶과 철학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습니다. <국역 고봉전서>와 고봉학술원에서 발간한 <전통과 현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등은 이번 기행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6월부터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매주 1회씩 기행 글을 연재 하였습니다. 이 연재를 하면 할수록 고봉 답사의 백미는 고봉 기대승(1527-1572)과 퇴계 이황(1501-1570)과의 이야기이었습니다. 퇴고 退高라 불리는 퇴계와 고봉은 조선 철학사의 최대 논쟁인 사단칠정논변의 장본인입니다. 고봉은 퇴계를 스승으로서 극진히 모시었고 퇴계는 26살이나 아래인 고봉을 후학으로 아끼면서도 학문 탐구에 있어서는 도반처럼 여기었습니다. 특히 13년 동안의 편지 왕래는 4대 사화 이후 침체된 조선의 성리학을 중흥시킨 대 사건이었습니다.  

    

   한편 저의 주된 관심은  철학 논쟁이나 인물평가보다도  인간적인 면모와 인간관계 이었습니다.  퇴계는 태어난 지 1년도 안되어 아버지를 여의었고 고봉은 8세 때 모친이 별세한 점, 퇴계가 죽은 아들과 정혼한 며느리 감에게 다시 혼인하라고 한 이야기, 고봉이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퇴계에게 글로 보낸 사실, 퇴계가 고봉에게 아버지 묘갈명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 등등 고봉과 퇴계와의 정겨운 이야기는 문화 관광 스토리텔링으로 가치가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퇴계와 고봉의 신위가 나주의 경현서원에 함께 있어 죽어서도 인연 맺음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 큰 선비 고봉 기대승을 찾아나서는 기행집이기는 하나, 부록에 고봉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추가로 찾아 볼 고봉의 흔적들을 소개하고 있어 역사 인물 연구 자료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자부합니다. 또한 문화관광 콘텐츠로서 남도 관광 진흥에도 도움이 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