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지리정보]
도산서원은 본래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1574년(선조7)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尙德祠)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典敎堂), 동ㆍ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1575년(선조8)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조대에는 퇴계의 학덕을 추모하여 서원 앞 솔나무숲과 강변에서 과거가 실시되었으며, 그 자리에 시사단(試士壇) 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도산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1969년 5월 28일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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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 [지리정보]
조선시대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종택이다. 원래의 가옥은 구한말 일본헌병들이 의병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불을 질러 전소되어 없어졌으며, 지금의 가옥은 퇴계의 13대 후손인 하정공 이충호가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종택의 크기는 총 34칸으로 ㅁ자형이며 전체 면적은 2,119㎡이다. 종택 오른쪽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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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태실
1454년(단종2)에 퇴계의 조부 노송정 이계양이 지은 집으로, 뒤에 이 집에서 퇴계 이황이 태어났다 하여 퇴계태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몸채는 ㅁ자형으로 중앙에 퇴계태실이 있고 몸채 동쪽에는 별당형 정자인 노송정(老松亭)이 있다. 집 전체는 노송정종택이라고도 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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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묘소
퇴계의 묘소는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 가량 떨어진 토계동 건지산 남쪽 산봉우리 위에 있다. 퇴계의 유언에 따라 묘비의 앞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써있고, 뒷면에는 선생의 자명과 문인 기고봉이 지은 묘갈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통상 비석을 배치하는 방법과 달리 특이하게 동쪽을 등에 지고 서쪽을 바라보고 서 있으며, 비석의 윗부분에는 좌우대칭의 구름무늬 한가운데 앞면에는 태양이, 뒷면에는 반달이 그려져 있다. 이 비석은 원래의 것이 아니라 1906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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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서원 [지리정보]
1575년(선조8) 여강서원을 세워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하였는데, 1605년(선조38) 대홍수로 인해 유실되자 중창하였다. 1620년(광해군12) 퇴계의 큰 제자인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였다. 1676년(숙종2) 사액을 받고 ‘호계(虎溪)’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병호시비(屛虎是非) 사건으로 퇴계는 도산서원, 학봉은 임천서원, 서애는 병산서원으로 각각 위패를 옮김으로써 지금은 강당만 남게 되었다. 원래 월곡면 도곡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이 건설되자 수몰을 피해 197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