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고봉 기대승의 탄생
고봉 기대승. 그가 탄생한 날은 1527년 11월18일이다. 장소는 광주 소고룡리 송현동 집이다. 고봉집의 고봉선생 연보에는 그의 탄생이 이렇게 적혀 있다.
중종 공희왕(中宗恭僖王) 22년 명 세종(明世宗) 가정(嘉靖) 6년 정해(1527) 11월 18일 임진 진시(辰時) 에 선생은 광주(光州) 소고룡리(召古龍里) 송현동(松峴洞) 집에서 출생하였다. 선생의 본관은 행주(幸州)인데, 지금의 고양군(高陽郡)이다. 선세(先世)는 대대로 서울에서 거주했었는데, 물재공(勿齋公)이 아우 복재(服齋) 준(遵)과 함께 성리학을 전공하다가 복재공이 기묘년(1519, 중종14)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자, 세속의 일을 단념하고 광주로 물러가 살았기 때문에 선생이 광주에서 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물재공이 바로 기대승의 아버지 기진이다. 그는 아우 복재 기준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21년에 죽자, 이를 계기로 광주로 내려와 벼슬 하지 않고 살았다.
광주에서 임곡 가기 전에 비사동 마을이라고 있다. 거기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데 신촌마을 2km라는 팻말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오른편에 제각 같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그곳에 덕성군 물재 기진 유허비가 있다. 이곳이 바로 물재 기진이 살던 곳이다.
이 자리가 고봉이 태어난 자리라 한다. 물재공이 줄곧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고봉은 둘째 아들이다. 위로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형 대림이 있고, 아래로는 나이가 일곱 살 차이 나는 동생 대절이 있다.
고봉의 동생 대절은 어머니 강씨를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여의었다.
(어머니 강씨는 고봉의 나이 8살 때 즉 1534년에 돌아가시었다.)
그리고 1567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봉의 시 중에는 아우 대절에 대한 만시가 있다. 또한 형 대림도 1565년에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고봉이 미리 보아둔 묘 자리를 형이 죽자 형에게 양보하였다 한다.
고봉이 19살에 쓴 ‘자경설’에 의하면 고봉은 누이도 있었는데 어릴 때 죽었다 한다. 또 이 자경설에는 외가 집에서 형과 그가 자랐으며 그가 외조모와 외종조모가 그를 정성스럽게 키웠다는 글이 있다. 어릴 때 모친을 여의었으니 외가에서 그를 측은하게 여기어 예쁘게 키웠으리라.
그리고 보니 아버지 물재 기진이 광주로 내려온 것은 이곳이 기의 처가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물재공 유허비에서 조금 가면 고가 기와집이 나온다. 이곳에는 행주기씨 덕성군 문중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위쪽 산에 고봉의 부모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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