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의 시무팔조소 時務八條疏
효종 3년 1652년 10월 22일윤선도의 8조목의 상소)
* 효종 3년 8월에 효종은 윤선도를 예조참의를 특별임용하였다, 그는 병을 이유로 사직소를 올렸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해 10월 22일 윤선도는 나라를 이끌 8개 사항에 대한 소를 올렸다. 이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따온 것이다.
예조 참의 윤선도(尹善道)가 상소하기를,
“첫째,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畏天) 《서경》에 이르기를 ‘내 일은 하늘이 시킨 것으로 내 몸에 큰일을 내리고 어려운 일을 맡겼다.’ 하였습니다. 역(役)은 《맹자(孟子)》에 이른바 인역(人役)의 역과 같습니다. 임금은 곧 하늘이 부리는 사람이니,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하늘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곧 이(理)이니, 이에 순응하면 하늘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하늘을 섬기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효도는 부모의 얼굴빛을 살펴 그에 잘 따르는 것인데, 하늘에 무슨 살필 만한 기색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엄숙하면 시기에 맞게 비가 따르고, 조리가 맞으면 시기에 맞게 햇볕이 따르고, 지혜로우면 시기에 맞게 따뜻함이 따르고, 지모가 있으면 때맞추어 추위가 따르고, 성스러우면 때맞추어 바람이 따르며, 경망하면 계속 비가 따르고, 어그러지면 계속 햇볕이 따르고, 게으르면 항상 따듯함이 따르고, 조급하면 항상 추위가 따르고, 몽매하면 항상 바람이 따른다.’ 하였습니다. 비내리고 볕나고 따듯하고 춥고 바람부는 것이 다 시기에 알맞으면 내가 능히 하늘에 순응하여 하늘이 기뻐하는 기색으로 응답하였다는 것을 점칠 수 있고, 비내리고 볕나고 따듯하고 춥고 바람부는 것이 다 시기를 잃고 계속되면 내가 하늘에 순응하지 못하여 하늘이 나무라는 기색으로 응답하였다는 것을 점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가을·겨울의 날씨가 지나치게 따듯합니다. 이것은 곧 항상 따듯하다는 것인데 겨울 안개와 겨울 장마와 겨울 천둥은 다 따듯한 탓에 발생하는 현상이니, 성조(聖朝)에 예(豫)의 흠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채침(蔡沈)의 주석에 예를 풀이하여 게으른 것이라 하였습니다마는, 예라는 것은 게으른 것을 뜻할 뿐 아니라 구차하게 당장의 편안함을 찾아 우유부단함이 다 예이고, 곽공(郭公)이 선한 자를 선하게 여기되 쓰지 못하고 악한 자를 악하게 여기되 물리치지 못한 것도 모두 예입니다.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둘째,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治心) 요(堯)가 순(舜)을 명할 때에 이르기를 ‘하늘의 역수(曆數)가 네 몸에 달려 있다. 진실로 중도를 지키라. 사해(四海)가 곤궁하면 천록(天祿)이 영원히 끝나리라.’ 하였고, 순이 우(禹)를 명할 때에 이르기를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희미하니 정수(精粹)하고 전일(專一)해야 진실로 중도를 지키리라.’ 하였으니, 그 말이 지극합니다. 임금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말하면 이것을 버려두고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러나 요가 순을 명할 때에 ‘역수가 네 몸에 달려 있다.’ 하고 나서 곧 ‘천록이 영원히 끝나리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대개 또한 천명은 믿기 어렵고 일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임금이 중도를 지키지 못하고서 국가를 보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이 우를 명할 때에 다시 세 마디 말을 더한 것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정수하지 않으면 형기(形氣)의 사사로운 것을 살필 수 없고 전일하지 않으면 본심의 바른 것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임금이 정수하고 전일하지 못하고서 진실로 중도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아, 요임금이 사방을 비추고 하늘과 백성을 감동하게 하며 진실로 모든 벼슬아치들을 다스려 뭇 공적이 다 확충된 것과 순이 구관(九官)643) 을 임명하고 사흉(四凶)644) 을 죄주며 거듭 빛나서 요임금에 부합하고 사해가 공덕을 추대한 것은 모두가 정수하고 전일했던 효과입니다. 후세의 임금은 정치에 있어서는 어질다가 어리석다가 하고 사정(邪正)에 대해서는 밝았다가 어둡다가 하여 쇠미(衰微)가 잇따르고 난망(亂亡)이 계속되는 것은 모두가 정수하고 전일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수하고 전일한 학문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셋째, 인재를 가리는 것입니다. (辨人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정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하고 《서경》에 이르기를 ‘임금이 어진이를 얻지 않으면 다스리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고금천하에 어찌 인재를 얻지 못하고서 치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을 알아보면 밝은 것인데 요임금도 이것을 어렵게 여겼습니다. 어진이를 간사하게 여기고 간사한 자를 어질게 여기고 지혜로운 이를 어리석게 여기고,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다스리는 자의 공통적인 병통입니다. 그러니 임금으로서 어찌 인재를 가리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의(經義)에 통달하여 도(道)를 알고 간언을 아뢰어 임금의 잘못을 바루는 자는 경악(經幄)에 둘 만하고, 출납을 오직 미덥게 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자는 상서(尙書)를 맡길 만하고, 사람을 알아보고 지극히 공정한 자는 전형(銓衡)을 맡길 만하고, 글을 잘하고 지극히 공정한 자는 시험을 맡길 만하고, 학문에 밝고 덕이 높아서 잘 가르치는 자는 교화를 펴게 할 만하고, 많이 듣고 지식이 넓어서 사리에 통달한 자는 예를 맡길 만하고, 임금의 혜정(惠政)을 받들어 펴고 출척(黜陟)을 밝게 하는 자는 방백(方伯)을 맡길 만하고, 요역(徭役)을 고르게 하고 부세를 가볍게 하여 백성을 잘 어루만지는 자는 목민(牧民)을 맡길 만하고, 의용(義勇)·기정(奇正)645) 을 갖추고 일에 임하여 조심하고 계책을 잘 써서 성공하는 자는 병사(兵事)를 맡길 만하고, 관반내화(官反內貨)646) 를 금단하고 밝게 살피고 공경하고 조심하며 아울러 천위(天威)를 엄하게 하는 자는 형정(刑政)을 맡길 만하고, 속이지 않는 충직함이 있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는 대각(臺閣)에 있을 만하고, 부세(賦稅)를 고르게 하는 도리를 알고 함부로 거두어들이지 않는 자는 재용(財用)을 다스릴 만합니다. 이러한 인재를 얻어서 맡긴다면, 전하께서는 옷을 드리우고 가만히 계셔도 다스릴 수 있고 높이 팔짱끼고 계셔도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아, 인재가 모자란다는 한탄은 쇠퇴한 세상에서는 늘상 하는 이야기인데 전하께서도 세상에 마땅한 인재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옛 임금은 목마르듯이 어진이를 찾아서 얻지 못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전하께서 찾으시는 것 이 정성스럽지 않아서이지 어찌 어진이가 모자라는 세상이 있겠습니까. 다만 인재는 참으로 알기가 어려운데,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취할 때는 그 몸으로 하고 그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 한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도로써 자신을 수양함이 과연 지극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가 있는지를 알기가 어찌 어렵겠습니까. 도끼 자루를 잡고 도끼 자루 감을 베는데 어찌 그 규격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께서 이를 생각하소서.
넷째, 상벌을 밝히는 것입니다. (明賞罰)대저 상벌이라는 것은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방법이니, 어진이를 천거한 자를 상주어야 하고, 어진이를 엄폐한 자를 벌주어야 하고, 선을 행한 자를 상주어야 하고, 악을 행한 자를 벌주어야 하고, 임금에게 충성한 자를 상주어야 하고, 나라를 저버린 자를 벌주어야 하고, 곧은 자를 상주어야 하고, 속인 자를 벌주어야 하고, 공변된 자를 상주어야 하고, 사사로운 자를 벌주어야 하고, 직분을 다한 자를 상주어야 하고, 직분을 버려둔 자를 벌주어야 하고, 나라를 이롭게 한 자를 상주어야 하고, 자기를 이롭게 한 자를 벌주어야 하고, 백성을 아끼는 자를 상주어야 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벌주어야 하고, 함께 삼가고 서로 공경하는 자를 상주어야 하고, 제 붕당은 감싸고 자기와 뜻이 다른 자는 공격하는 자를 벌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주고 벌주는 것이 공정해야 하고 균등해야 하므로 상은 반드시 삼가고 벌은 반드시 행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상주고 벌주는 권한은 위에 있어야 하고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다섯째, 기강(紀綱)을 떨치는 것입니다.(振紀綱) 인재가 가려지고 상벌이 밝아지고 나면 기강의 진작은 조치하는 가운데에 있을 뿐이어서 다시 힘을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훌륭한 법의 아름다운 뜻이 문서에 널려 있고 금과옥조가 법전에 분명히 실려 있습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 느슨해진 것을 긴장시키고, 떨어진 것을 들어올리고, 무너진 것을 세우고, 희미해진 것을 밝혀서 늘 천하를 경륜하는 큰 법을 힘쓰소서. 또 임금의 권세가 느슨하여 정권이 아래에 있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또한 위태할 것입니다. 영(令)이 행해지지 않아서 금지할 것이 금지되지 않으면 기강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떨쳐지겠습니까.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임금이라야 복록(福祿)을 주고 위형(威刑)을 준다.’ 하였으니, 의미있는 말입니다. 천심(天心)은 만물 사랑하기를 주로 하나 때때로 다시 바람과 천둥으로 진작시키고 서리와 눈으로 엄숙히 하니, 임금이 하늘의 도리를 체득하여 인의(仁義)가 아울러 행해진다면, 어찌 다만 수수방관할 뿐이겠습니까. 내가 한 일이 과연 사사로운 희로(喜怒)에서 나왔다면 자기를 극복하고 욕심을 막아서 물 흐르듯이 간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이 과연 정대한 의리에서 나왔다면 어찌 경박한 의논에 흔들리고 선동하는 말에 굽힐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양강(陽剛)한 도리가 이러하여서는 안 됩니다. 중장통(仲長統)이 탁군(涿郡)의 최식(崔湜)이 지은 글을 보고 말하기를 ‘임금이 한 통을 베껴 써서 좌우에 두어야 한다.’ 하였는데, 전하께서 어찌 일찍이 이 의논을 보지 않으셨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정수하고 전일하여 진실로 중도를 지켜서 강기를 숙정(肅整)하소서.
여섯째, 붕당을 깨는 것입니다.(破朋黨) 생명을 해치는 방도가 하나뿐은 아니나 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망국하는 방도가 하나뿐은 아니나 붕당이 있는 나라는 반드시 멸망합니다. 우리 나라의 붕당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거니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날로 심하고 달로 성해 갑니다. 둘에서 서넛이 되고 서넛에서 대여섯이 되었는데 자기에게 붙는 자는 흠을 숨기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자는 흠을 들춥니다. 좁은 나라에 인재가 모자라는데 오륙분의 일만을 쓴다면 어느 겨를에 가려서 벼슬에 맞는 인물을 얻겠습니까. 붕당으로 말하면 피차에 본디 선악의 구별이 없으나 사람으로 보면 피차에 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없는 붕당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이 없는 붕당이 없는데 이른바 착한 사람은 잠시 습속을 따르더라도 내심으로는 실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능히 현량(賢良)을 임용하여 공도(公道)를 넓히고, 과장(科場)에서는 오직 글 잘하는 사람을 뽑고, 벼슬길에는 오직 재능있는 사람을 가리는 한편 죄가 있으면 신구(伸救)하는 자가 많더라도 반드시 죄주고, 착하면 배격하는 자가 많더라도 반드시 등용하여 세월을 두고 지속한다면 붕당에 이로운 것이 없어질 것이고, 이로운 것이 없어지고 나면 누가 그것을 즐겨 하려 하겠습니까. 선비들은 오직 학문에 힘쓰고 벼슬하는 사람은 오직 스스로 닦기를 힘써서 사람마다 크게 변하여 모두가 전에 한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니 상을 준다 해도 붕당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일곱째, 나라를 강하게 하는 데에는 도가 있습니다. (强國有道)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무비(武備)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천하에 위세를 떨치지 않는다.’ 하고, 또 ‘인자(仁者)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 하고, 또 ‘임금이 백성에게 인정을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부렴(賦斂)을 가볍게 하면, 깊이 밭갈고 잘 김매 장자는 틈나는 날에 효제(孝悌)·충신(忠信)을 닦아 집에서는 부형을 섬기고 나가서는 장상(長上)을 섬겨서, 막대기를 가지고 진(秦)나라나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兵器)를 쳐부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니, 의미있는 말입니다. 예전부터 나라를 강하게 하는 도리를 논한 것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역경(易經)》 사(師) 괘에 이르기를 ‘사(師)는 정(貞)하니 장인(丈人)이면 길(吉)하다.’ 하였습니다. 장인이란 재덕(才德)이 겸전(兼全)한 사람을 말합니다. 대개 군사를 거느리는 자는 반드시 장인이라야 길하다는 것입니다. 대저 군사라는 것은 평소에 나라를 지키고 변란에 임하여 적을 막으므로 참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傳)에 이르기를 ‘군사는 불과 같으니 그치지 않으면 스스로 불타게 된다.’ 하였고, 두목(杜牧)이 말하기를 ‘군사가 밖에 있으면 반역하고 안에 있으면 찬탈한다.’ 하였는데, 이것은 다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이니, 매우 두렵게 여겨야 하고 매우 삼가야 합니다. 가을 능행(陵幸) 때에 신이 보건대 호가(扈駕)한 백료(百僚)와 각종 군병(軍兵)이 매우 정제(整齊)되지 못하였으니, 사마(司馬)647) 의 기율이 엄숙하지 못한 것을 알 만합니다. 많을수록 더욱 잘 처리하는 사람을 얻어서 거느리게 하지 못한다면, 경중(京中)의 상비군은 오히려 많은 것이 걱정이지 적은 것이 걱정이 아닙니다. 또 농부 1백 명이 한 명의 군사의 늠료(廩料)를 대지 못하니, 군사가 많고 보면 국력이 먼저 소모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군사 늘리기를 힘쓰지 말고 장인 얻기를 힘쓰소서. 또 기보(畿輔)에서 군사를 거느리는 사람은 신중히 가려야 하고 서방·남북·북방의 방어도 장인에게 맡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혹 변이라도 있게 되면 그 의지할 바가 어떠하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네 융복(戎服)과 병기(兵器)를 잘 닦으라.’ 하였으니, 융복과 병기도 본디 닦지 않을 수 없으나, 이것은 또한 말단의 일인데 어찌 일삼을 것이야 있겠습니까. 갑옷 만드는 일을 도로 멈추고 병거(兵車)를 수리하는 일을 곧 그만둔 것은 모두 잘하였거니와, 마지막에 기교를 부려 버티는 것은 처음에 서투르나마 계책을 세우는 것만 못합니다. 신은 당초에 이것을 주장한 자가 혹 삼시충(三尸蟲)648) 의 꾐을 받았을 듯한데, 삼시가 몰래 참소하였다면 그 삼시가 아무 의도 없이 한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尸)가 혹 아직 있다면 경계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개 상비(常備)하는 물건은 본디 닦아야 하겠으나, 해당 벼슬에 적격자를 얻는다면 직분 안의 일이므로 절로 잘 할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리(天理)를 즐기는 자이며,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이다. 천리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나라를 보전한다.’ 하였습니다. 이것도 나라를 강하게 하는 지극한 계책인데, 탕왕(湯王)과 문왕(文王)이 끝까지 행한 것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여덟째, 학문에 들어가는 데에는 요령이 있습니다. (典學有要) 옛사람이 학문하는 것은 대개 다 자신에게 절실하게 하였으니, 자기에게 절실하게 하는 것이 곧 학문하는 요령입니다. 자신에게 절실하지 않으면 성경(聖經)·현전(賢傳)이 한 마당 이야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전하의 뛰어난 자질로 학문하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마는, 임어하신 지 4년이 되어도 아직 정치하는 요령을 얻지 못하셨으니, 전하께서 학문하실 때에 혹 자신에게 절실히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에게 절실하게 살펴보면 수신(修身)하는 대법(大法)은 《소학(小學)》 한 책에 거의 다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는 《중용(中庸)》·《대학(大學)》 두 책이면 족합니다. 《중용》 안에서 구경장(九經章)이 가장 절실한데 구경장 안에서도 ‘정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한 가지가 더욱이 절실하고, 《대학》 안에서 혈구장(絜矩章)이 가장 절실한데 혈구장 안에서도 진서(秦誓) 이하의 세 글이 더욱 절실합니다. 여기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울 것입니다. 한 광무제(漢光武帝)는 《상서(尙書)》를 배워 대의(大義)를 통하고서 옛것을 다시 회복하고 자신이 태평을 이루었습니다. 대개 등우(鄧禹)가 ‘영웅을 맞아들이고 민심을 기쁘게 하기를 힘쓰라.’는 말을 하자 문득 첫째 가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늘 머물려 두고 함께 계획하였으니, 이는 《상서》에 있는 ‘스스로 스승을 얻는 자는 임금노릇 할 수 있다.’는 뜻을 쓴 것입니다. 경감(耿弇)·풍이(馮異)를 얻어 장수로 삼아서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이는 《상서》에 있는 ‘여상(呂尙)을 시켜 목야(牧野)에서 무용을 떨치게 하였다.’는 뜻을 쓴 것입니다. 그 밖에 《서경》에 부합하는 일을 어찌 죄다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광무제가 58편(篇)의 뜻에 정숙(精熟)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절실한 것을 살펴서 그 가장 중요한 것을 뽑아 자신에게 적용하였으므로 그 효험이 이러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바야흐로 《서경》을 읽으시므로 신이 광무제의 일을 말하여 전하께서 본뜨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 예전에 태갑(太甲)이 이윤(伊尹)의 가르침을 받아 능히 윤덕(允德)을 끝내 지켰고, 고종(高宗)이 감반(甘盤)·부열(傅說)의 가르침을 받아 은(殷)나라의 사업을 중흥하였으니, 학문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다 편리한 것이 없다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사람을 가까이할 줄 아는 것이 또한 학문하는 요령입니다.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끝내 늘 학문에 힘쓰시되 학문하는 요령이 자신에게 절실히 함과 사 람을 가까이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잘 생각하소서.
신이 아뢴 것은 대개 임금의 양강(陽剛)한 덕과 국사를 도모하기에 앞서 스스로 다스리는 도리를 전편의 대지(大旨)로 삼았으니, 지금 백성을 안정시키고 하늘과 덕을 짝하며 덕을 닦고 허물을 살펴 재앙을 그치게 하는 도리에 이보다 더할 것이 다시 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대경(大經)·대법(大法)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말마다 절실하고 글자마다 간절하니 두세 번 읽어도 그칠 줄 모르겠다.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말에 넘치니 매우 감탄한다. 내가 불민하기는 하나 가슴에 간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 이변이 거듭 나타나서 인심이 어수선하고 상도 의구하였는데, 윤선도가 상의 뜻에 영합하여 예삐 보이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마침 직언을 구하는 분부에 음이 성하고 양이 희미하여 아래에서 위를 엄폐한다는 하교가 있자 즉시 상소하여 시무(時務)라 칭하면서 실은 상의 뜻을 몰래 흔들고 상의 귀를 어지럽히려 하였다. 그 임금의 마음을 헤아려 흉악하고 교활한 계략을 성취하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였으나 상만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도타운 비답을 내려 장려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다 개탄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9장 A면
【영인본】 35책 579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註 643]구관(九官) : 국정을 맡은 아홉 벼슬. 곧 사공(司空)·후직(后稷)·사도(司徒)·사(士)·공공(共工)·우(虞)·질종(秩宗)·전악(典樂)·납언(納言). ☞
[註 644]사흉(四凶) : 순(舜)임금 때에 처벌된 네 악인. 곧 공공(共工)·환두(驩兜)·삼묘(三苗)·곤(鯀). 《서경(書經)》 순전(舜典). ☞
[註 645]기정(奇正) : 기병(奇兵)·정병(正兵), 혹은 기습(奇襲)·정공(正攻). ☞
[註 646]관반내화(官反內貨) : 관은 관의 위세로 죄를 가감하는 것, 반은 은혜·원수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죄를 가감하여 갚는 것, 내는 내알(內謁)로 곧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믿고 청탁하는 것, 화는 재화로 뇌물을 써서 청탁하는 것. 《서경(書經)》 여형(呂刑). ☞
[註 647]사마(司馬) : 병조(兵曹). ☞
[註 648]삼시충(三尸蟲)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사람 뱃속에 있다는 세 마리 벌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