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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쩐의 전쟁 드라마가 폭발적이라니...

[월요아침] `쩐의 전쟁`과 금융약자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 "남자는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이자를 남긴다 ." "돈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야 빚이 되지 않는다 ."

마치 시대를 앞서 살았던 어느 현인이 남긴 명언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말들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SBS TV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의 대사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시청률이 방영 3주 만인 지난주 목요일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를 얻는 기준선인 30% 벽을 넘어선 것만으로도 증명이 된다.

증권사 엘리트 직원이 아버지 카드빚과 고리사채로 졸지에 부모와 가정을 잃고 노숙자라는 밑바닥 생활까지 겪은 후 사채업자로 변신해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의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돈의 속성을 통찰력 있게 꿰뚫어 보는 감칠맛 나는 명대사도 이런 인기를 낳은 요인일 것이다.

조폭 못지않게 무섭다는 사채업자들의 행태를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있는 것도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배역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연기자들의 열정적인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요소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채업자 때문에 고통을 겪는 딱한 처지의 이웃들이 우리 주위에 많음은 이 드라마를 그저 흥미 만점의 여흥 거리로만 여기기 어렵게 만든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한 정당이 사채업을 제대로 알고 보자는 자료까지 내고 있음은 이 드라마가 재미로 끝나지 않고 현실에도 파장이 큼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채권 추심의 폭력성이 다시 부각되지 않았다면 정부 당국자가 "(대부업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밝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275만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11%에 달하는 막대한 숫자다.

신용도가 떨어져 은행 등 제도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쓸 수 없는 서민까지 고려하면 사금융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금융 약자`들은 더욱 늘어난다.

현행 대부업법에서는 최고 금리를 연 66%로 정해놓고 있다.

이런 금리 수준도 높지만 그나마 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특히 미등록 대부업체들은 관리가 더 안 되는 실정이니 금리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이런 고리사채를 빌려 쓰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사채업자들이 `쩐의 전쟁`에 등장해 멋진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처럼 매력적으로 보일 리 만무하다.

정부는 등록ㆍ미등록 대부업체의 이자 상한선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 선의가 오히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일이 잦다.

아파트 경비원의 최저임금을 올리니 경비원을 해고해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하는 행태가 나타나는 것도 이런 사례다.

서민들의 부담 경감이라는 명분에 치우쳐 금리를 너무 낮추다보면 이들이 급전을 조달하는 길마저 좁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 법정금리를 낮추는 게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을 상대함으로써 돈을 떼일 위험이 큰 사금융의특성을 감안할 때 법정이자율을 무턱대고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금융 약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등록ㆍ미등록 대부업체들의 횡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19세기 미국의 거부 바넘의 말처럼 돈은 불과 같은 양면성을 지닌 존재다.

채권자에게는 휴일이든 일하는 날이든, 밤이든 낮이든, 궂은 날이든 마른 날이든 이자를 벌어주는 충실한 하인이다.

거꾸로 채무자에게는 공휴일에도, 잠을 자는 시간에도 이자가 늘어나니 돈보다 더 무서운 주인은 없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의 행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금융약자를 도울 제도개선에 관심을 보이게 한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통속적인 드라마를 뛰어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젊은 세대에게 돈의 실체에 대한 바른 인식까지 심어주는 살아 있는 금융교육까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성철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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