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3.02 22:26 / 수정 : 2007.03.02 22:28
- 정민 한양대 국문과교수
- 3월의 캠퍼스는 활기에 넘친다. 흥분과 기대에 들뜬 새내기들의 호기심에 찬 눈빛만으로도 대학은 생동한다. 합격증을 받아든 환호도 잠깐, 이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숨을 골라야 할 때다. 전쟁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대들은 이제 출발선에 다시 섰다.
대학 입시를 위해 유치원부터 논술과외를 시킨다고 난리인 나라에서, 12년의 긴 터널을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그대들은 행운아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지긋지긋한 문제풀기, 학교와 학원과 과외로 이어지던 미로에서 해방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비로소 자기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와 맞대면하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한다. 지난 세월 여러분을 지탱시켜 준 삶의 목표는 사라졌다. 다음 진군 목표는 정해졌는가?
슬프게도 오늘날 대학은 만신창이다. 학문의 전당이란 말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실용의 미명 아래 기초학문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공계는 힘들다고 외면당하고, 인문학은 쓸모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렸다.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무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돈 잘 벌어 출세해서 부자로 사는 길을 찾기만 바쁘다.
나는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벌써부터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고, 토플 토익 성적에 목을 매는 영악한 젊은이가 되지 않길 바란다. 더 좋은 대학, 취직 잘 되는 학과로 전과(轉科)하고 편입하기 위해서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시 공부에 인생을 거는 맹목적인 청춘이 아니길 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안 된다. 출세가 곧 성공이라고 착각하지도 마라.
분위기 파악이 영 안 되는 대학 강의실, 연일 이어지는 선배들과의 술자리, 뜻밖에 많은 과제물의 중압감 속에 우왕좌왕하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도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게 대학이었느냐고 말하지 마라.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다. 누구도 입 벌려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속단하지 마라. 힘들다고 주눅들 것도 없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누구나 당황스러운 것이 대학의 새내기들이다.
대학은 그대들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렘과 흥분은 얼마 못 가 심각한 혼란과 좌절로 바뀔 것이다. 누구나 그랬고 언제나 그랬다. 대학은 끝내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이제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제 힘으로 풀어야 한다. 기댈 언덕은 없다. 물러설 곳도 없다.
내면의 목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라. 목표는 달성되는 순간 사라진다. 새 목표를 잘 세워야 삶은 제 길을 찾고, 과정은 차례를 얻는다. 그러지 않으면 열심히 할수록 일은 더 꼬인다. 길 가다 눈이 떠져 좋아하다가 제 집을 못 찾아 우는 눈 뜬 장님 꼴이 된다.
카르페 디엠!(지금의 매 순간에 충실하라) 그대들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을 한껏 즐겨라. 더 깊이 고민하고, 참담하게 좌절하라. 소아(小我)의 각질을 깨고 ‘참 나’로 우뚝 설 때까지. 주체를 세우려면 더 많은 책을 읽어라.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 여가는 그저 생기지 않는다.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옛 사람은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즉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여행하는 속에 인생의 대답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눈길은 깊어지고, 마음속에는 호연한 기운이 쌓인다.
그대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희망과 설렘을 지나, 절망과 좌절을 건너, 눈 맑고 귀 밝은 듬직한 젊음으로 거듭날 것을 축원한다. 나는 누군가? 나는 나다. 그 나를 찾아라.
'짧고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이란 ? (0) | 2007.04.16 |
---|---|
우리 삶의 현장이 곧 도량 (0) | 2007.03.05 |
다음 기회는 없다. (0) | 2007.03.01 |
글 잘 쓰려면 1 (0) | 2007.02.25 |
학자와 저서 -박석무 (0) | 2007.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