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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감상

고문진보

 

 

[내 인생의 책]고문진보(古文眞寶)
[세계일보 2004-12-17 17:27]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옛글의 참보배’란 뜻이다. 중국 고대의 명문 중에서도 보배로운 것만 골라 시로 된 전집과 문장으로 된 후집으로 된 책이며, 황견이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도 수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다. 옛 선비들에게는 시문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훌륭한 교과서 구실을 했다지만, 현대인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주옥 같은 명구들은 우리 전통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 민요 양산도의 한 구절 “삼산은 반락에 이수중분하니”도 기실 고문진보 중 하나인 이백의 시(‘등금릉봉황대’)가 원전이다.

내가 고문진보를 좋아하는 까닭은 여기에 실린 글에서 비록 고대 중국이긴 하나 옛사람의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인식과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때로는 위안을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권학문, 그 중에서도 “이르지 말라, 오늘 배우지 않으면 내일이 있다고, 금년에 배우지 않더라도 내년이 있다고…” 한 주문공의 ‘권학문’은 대학 초년병인 내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내가 즐겨 암송하는 이백의 ‘월하독작’, ‘산중대작’은 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하나를 이루려는 ‘자연무위’를 노래하고 있어 대학 시절 그의 호방한 기질을 닮아 보려고도 했다.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들, 예컨대 양귀비에 대한 짧고도 은유적인 문장들은 곱씹어도 맛이 나는 것이 많다. 자신의 며느리를 애인으로 삼아 나라를 기울게 한 당현종이 양귀비와 벌인 사랑 행각의 기승전결을 읊은 백낙천의 ‘장한가’는 단순히 로맨티시즘만 노래한 것이 아니리라. “아름다운 후궁이 삼천인데 삼천의 총애가 일신에 있도다. (중략) (임금의 말 앞에 죽음을 당해) 금으로 만든 꽃비녀가 땅에 떨어져도 거두는 사람이 없고…”라는 대목에 이르면 교훈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시름 많고 짧기만 한 인생을 자연에 빗대어 부른 노래(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나 친구간의 의리 없음을 한탄하는 시(두보의 ‘빈교행’) 등 인생살이에서 우러나는 다양한 감회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글들이 수없이 많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되새길 만한 벼슬아치의 글도 빼놓을 수 없다.

세속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면 어떠냐는 어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혼탁한 세상과 어우러지기를 거부하며 멱라수에 몸을 던지는 굴원(‘어부사’)에 비해 벼슬길에 잘못 들었다는 인식 하에 “지난 일은 잊고 다가올 일만 추구하자”며 유유히 전원으로 돌아간 도연명(‘귀거래사’)은 한결 성숙된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나는 30년 전, 대학 학창 시절에 만난 이 책을 아직도 서가에 보관하고 있다.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에도 나는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나듯 이 책을 가끔씩 일독한다. 많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지적인 자극과 호기심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김광조 교육인적자원부 인적자원총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