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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미술관 기행 [35회]인상주의 화가들–마네 · 르누아르 · 드가 등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미술관 기행 [35회]
  •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5.04.2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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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들–마네 · 르누아르 · 드가 등
 
 

괴테 초상화를 보고 나서 마네 ·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았다.
2023년 3월 14일에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보르네 미샤’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그림을 본 후 1년 만이다. 인상주의 그림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다.

슈테델 미술관의 인상주의 그림들

먼저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용어의 탄생 경위부터 살펴보자.
10년이 넘도록 ‘살롱전(국전)’에서 거부된 젊은 예술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1873년 12월 모네,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시슬레, 세잔, 모리조 등은 “무명 화가 및 조각가, 판화가 협회”를 창립하고 단체전을 열기로 했다.
1874년 4월 15일에 마당발인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친구인 사진사 다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살롱전’보다 15일 전에 개막한 것은 ‘낙선전’으로 오해받을 염려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드가, 푸른 옷의 발레리나 (티센보르네미샤 미술관 소장)

이 전시회에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폴 세잔, 카미유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알프레드 시슬레 등 30명의 화가들이 165점을 출품하였다.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유화 다섯 점과 세점의 파스텔 크로키를 출품했다. 유화는 <카퓌신 대로> <점심> <인상, 해돋이> <르 아브르항> <항구를 빠져나오는 어선들>이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의 맏형격인 마네는 이 전시회에 출품하지 않았다.
그는 ‘살롱전’에서 인정받을 호기를 맞았는데, 출품으로 ‘살롱전’ 심사 위원단의 심기를 자극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마네는 법무부 고위 관리인 아버지와 스웨덴 주재 프랑스 외교관의 딸인 어머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길을 걸었는데 네델란드,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안목을 넗였다.

1859년에 들라크루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출품작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 ‘살롱전’에서 낙선하였다. 1861년에 마네는 <오퀴스트 마네 부부의 초상>과 <스페인 가수>를 살롱전에 출품하였는데, <스페인 가수>가 등외가작으로 뽑혔다.

한편 1863년에 마네는 ‘살롱 낙선전’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출품하였다.
이 그림은 즉각 스캔들을 일으켰다. 왜 정장을 한 두 신사는 나체의 여자 앞에 앉아 있는가? (당시에 파리 서쪽의 부아 드 블로뉴 공원에서는 매춘이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208*26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65년에 마네는 <올랭피아>를 ‘살롱전’에 출품하였다. 당시에 ‘올랭피아’는 창녀들이 많이 사용하는 예명이었다. 관람객들은 너무 외설스럽다고 경악했다.
고전적인 여신이나 님프가 아닌 현실의 매춘부를 그렸다는 것이다. 더욱 심한 것은 정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는 이들이 창녀를 찾아온 고객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네는 퇴폐적인 화가로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소설가 에밀 졸라는 걸작이라고 마네를 지지했다.

마네, 올랭피아, 130.5 * 190cm, 파리 오르세미술관

(필자는 1997년 여름, 영국에서 유학 중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꾸준히 ‘살롱전’에 출품하여 1874년 ‘살롱전’에서 출품작 <기찻길>이 당선되었다.

한편 인상주의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 그림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림 제목은 모네가 직접 지었다.

“전시회 카탈로그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 르누아르는 모네가 단순히 ‘바다’라고 이름붙인 그림을 보면서 모호하지 않는 다른 제목을 요구했다.
모네는 ”그렇다면 바꾸지, ‘해돋이, 인상’이라고” (소피 포르니 다게르 · 김혜신 옮김, MONET, 열화당, 1994, p 62)

모네,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1873년,48*63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소장

모네는 르 아브르 항구에 머무는 동안 아미로테 호텔의 창문을 통해 해돋이 장면을 신속히 포착해 짧고 빠르게 그렸다.

그런데 미술 평론가이자 풍경화가인 르루아는 '르 샤리바리' 신문에 기고한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 제목의 글을 통해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악평하였다.

"인상이라고! 나도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어딘지 방자하고, 어딘지 미적지근하다. 붓질에 자유와 편안함이라니! 미숙한 벽지조차도 이 해안 그림보다는 더 완성적일 것이다.”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지음 · 김주원 옮김, 클로드 모네, 마로니에 북스, 2005, p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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