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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49)- 김시습, 방랑을 계속하다.

순례자의 노래 (49)

- 김시습, 방랑을 계속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시습은 춘천 부근 길을 걷다가 길을 가다(途中)’란 시를 읊었다.

 

도중(途中)

 

맥국(춘천일대)에 첫눈 날리자.

춘성(춘천)에 나뭇잎 성글다.

가을 깊어 마을에는 술이 있지만

객지 생활 오래도록 생선을 못 먹네

 

산 멀어 하늘이 들에 드리웠고

강 멀어 땅이 허공에 붙었구나

외로운 기러기는 석양 밖으로 날고

나그네 말()은 머뭇거릴 뿐

 

춘천은 옛날 맥국의 수도였다는 전설이 있다. 김시습은 춘천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풍광엔 서글픔이 서렸다. 이처럼 이 시엔 먼 길을 가는 방랑자의 심사가 잘 나타나 있다.

 

한편 김시습은 어느 역루(驛樓)에 올라서 시를 지었다.

 

등루(登樓)

 

날 저물자 산빛이 아름다워라

옛 역루에 올라 바라보네

말 부르짖으며 사람은 떠나가고

파도는 기슭을 씹어대건만 노 소리 부드럽다.

유량(庚亮)의 흥취 옅지 않으니

왕찬(王粲)의 수심을 녹일 만하군

내일 아침 관문을 나서면

구름 가에 산봉우리 겹겹이겠지.

 

유량의 흥취가 옅지 않다.’는 말은 중국 동진(317-420)의 유량이 막료들과 함께 누대에 올라 달 구경했던 흥취에 견줄 만큼 가을날 달밤의 흥취가 옅지 않다는 뜻이다. ‘왕찬의 수심을 녹일 만하군은 한나라 말엽에 왕찬이 형주의 누대에 올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허균은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이 시를 조탁(彫琢:매끄럽고 아름답게 만듬)을 가하지 않았고, 퇴고(推敲)를 하지 않았는데도 절로 고아하고 절로 평원 (平遠)하여 더 할 나위 없이 최고의 품격이라고 평했다.

 

김시습은 방랑을 계속했다. 춘천에서 홍천 가는 길에 고탄을 지나다가 시를 지었다.

 

고탄(古呑)

 

청산은 아득히 멀고

걷고 또 걷네, 푸른 물가를

높은 뫼에는 저녁 햇살 남아있고

오솔길은 개암나무가 막아섰다.

 

하늘과 땅 일만 리

뜻 잃어 평생 보잘 것 없는 이 사람

이제야 나그네 소원 알았네.

가난하더라도 한곳에 머물고 싶어라.

 

방랑 길은 새로운 풍경과 인간을 만나 환희를 느끼는 일이지만, 산 넘고 물 건너는 고난의 연속이다. 문득, 김시습은 차라리 한 곳에서 머물며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락산에서 처와 같이 살던 시절이 그리웠나 보다.

 

한편 김시습은 한때 산에서 살았다. 이때 한 도인을 만나 친하게 지냈다. 그는 산속에 살면서 산속의 도인에게 주다 (山居贈山中道人)’라는 담백한 연작시가 남아 있다.

 

김시습은 자신을 동진 때 승려로 명사들과 교우했던 지둔(支遁)에 비하면서, 지둔과 허순이라는 사람이 세속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교유했던 일을 추억했다.

 

그러면 연작시 제4, 5, 7수를 읽어보자. 먼저 제4수이다.

 

산거증산중도인(山居贈山中道人)

 

봄 산을 동무 없이 홀로 가노라니

원숭이는 쌍쌍이 앞뒤로 따르네

떡갈나무 잎은 시냇가를 덮어 오솔길 없어지고

소나무 그루터기는 바위에 넘어져 길을 막았네

 

해마다 밤()을 주워 가난을 잊고

곳곳마다 초가 엮어 편한대로 살아가네

평생 따져 보아도 바쁜 일이 없어

세간의 구속을 겪은 적 없네

 

5수이다.

 

손님이 와서 말없이 평상에 마주 앉으니

숲속 아지랑이는 저녁 노을에 물들었네

산신령이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은 두렵지 않아도

들쥐란 놈이 양식 훔치는 것은 정말 화가 나네

화로에 불을 피워 밤을 구우려 하고

구리 탕관에 샘물 따라 탕을 끓이려 하네

이런 괴로움은 육신 위해서 시달리는게 아니거니

숨은 선비가 살아가면서 늘상 있는 일이어라.

 

7수도 읽는다.

 

또 다른 삶이 있어 푸른 산에 사니

한가로운 정취를 세인에게 말하지 않으련다.

이끼 낀 외길을 긴 대숲으로 내고

소나무 천 그루로 작은 산을 에워쌓네

 

산 새 내려와 종병사(宗炳社) 법회(法會)를 엿보고

골짜기 구름은 찾아와 조사(祖師)의 현관을 보호하네

누가 날 위해 초은사(招隱士)를 지어

붉은 계수나무를 어떻게 오르려오?”라고 하랴

 

종병사(宗炳社)는 중국 동진 때 여산 동림사의 고승인 혜원이 종병, 뇌차종등 승속(僧俗) 18인과 더불어 결사를 맺고 염불을 하였다. 이 절의 연못에는 백련(白蓮)이 있어 이 결사를 백련사(白蓮社)라 하였다. 종병사는 바로 이를 가리킨다. 종병사는 후대에 스님이나 부처를 존숭하는 문사를 읊는 전고(典故)로 사용했다.

 

회남소산왕 유안은 초은사계수나무가산속 깊이 무성히 자라서 가지가 서로 얽혀 있도다. ... 원숭이는 떼지어 휘파람 불고 있나니, 계수 나무 붙들고 잠시 머물리로다라고 읊었다.

 

김시습은 이를 생각하면서, 아무도 나를 불러줄 사람이 없으니 홀로 푸른 산속에 살겠다는 다짐했다.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베개, 2021, p 500-506 ; 허경진 옮김, 매월당 김시습 시선, 평민사, 2019, p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