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보는 두 가지 시각 |
그런데 최근 서양에서 이 사군자 중 대나무가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국내 일간지에 의하면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환경단체와 건축가들이 친환경 주택의 원자재나 바닥 및 가구의 소재로 대나무에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즉 대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배출하는 기능이 다른 나무보다 35% 정도 뛰어나서 친환경적이고, 좌우나 상하로 당기는 힘에 견디는 능력이 강철보다 우수하고 압착(壓搾)에 저항하는 힘이 콘크리트보다 강해서 건축자재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프레임이 대나무로 된 자전거까지 등장했는데, 탄소섬유 프레임의 자전거보다 충격과 떨림을 잘 흡수해서 장거리 주행의 피로감을 덜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의 사이클 선수인 닉 프레이는 최근 대나무 자전거를 구입했다고 한다. 뉴스위크는 이런 현상을 ‘대나무 혁명(bamboo revolution)’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이 서양인들이 대나무를 보는 시각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반면 동양인들이 대나무를 보는 시각은 다분히 정신적이다. 중당(中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쓴 「양죽기(養竹記)」에는 대나무의 미덕을 4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뿌리가 단단하여(固) 뽑히지 않고, 둘째 성질이 곧아서(直) 기울지 않고 똑바로 서있으며, 셋째 속이 비어서(空)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넷째 마디(節)가 정절(貞節)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고(固), 직(直), 공(空), 절(節)은 모두 군자가 본받아야 할 정신적인 덕목이다. 이 중 대나무가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과 ‘절’이다. 온갖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움으로써만 그 자리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대나무는 가르쳐 준다. 또 마디와 마디 사이는 막혀 있어서 서로 넘을 수 없다.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게 된다. 이것이 군자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예절(禮節), 절개(節槪), 절조(節操), 정절(貞節) 등의 어휘에 대나무 마디를 뜻하는 ‘節’자가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양인은, 강철보다 강하고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대나무의 속성을 발견하고 건축자재로 활용할 생각을 하는 반면에 동양인은,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를 보고 군자의 절개를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서양인은 물질적인 실용을 중시하고 동양인은 정신적인 수양을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실용을 중시하는 서양인이 대나무의 공(空)과 절(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실용을 추구한 나머지 자칫 정신의 황폐함을 초래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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