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럭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 면앙정가비 앞에서(1)
한편 <면앙정부>를 지은 백호 임제와 송강 정철과는 서로 막역한 사이였던 것 같다. 송강과 백호가 송순의 제자이었으니 둘 사이에 교분이 있었으리라. 나는 <국역 송강집>에서 송강이 백호에 대하여 쓴 시들을 찾았다.
임자순 제(林子順 悌)를 이별하고 지음
새벽녘에 일어나 임 찾으니 임은 없고
은하수 구름 기운 두류산에 접했구려.
다른 날 죽림으로 찾아 준다면
아내 시켜 막걸리를 마련하겠네
임자순 제(林子順 悌)에게 주다
나그네 언제나 잠이 들건고
누 앞에 기세 찬 여울이 있네.
그대를 그리는 한 조각 꿈은
응당히 해남에서 돌아 올테지.
임자순 제에게 희증하다
백년을 긴 칼 차고 외로운 성에 기대어
바다로 술을 삼고 고래잡아 회를 치잤더니
가련한 이 내 신세 게으른 새와 같아
살림살이 기껏해야 일지에 지나잖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 면앙정에서 송강이 쓴 시를 한 수도 보지 못한 점이다. 그래서 송강이 송순에 대하여 쓴 시를 찾기 위하여 <국역송강집>을 다 뒤지었다. 마침내 나는 ‘면앙 상공의 화교(話敎)한 운에 봉증하다’ 는 시를 찾았다.
만 길 바위벽에 푸른 이끼 깎아내고
늙은 만년 안식처라 초당을 지었구려.
듣자니 신선 사는 정자가 멀지 않는 곳에 있어
가을 달, 봄바람에 흥취가 길어지네.
剔盡巖苔萬丈蒼 暮年棲息有茅屋
仙亭見說牛鳴外 秋月春風與更長
이렇게 나는 한참동안 면앙정 마루에서 면앙정에 얽힌 사연이 담긴 시와 문장을 보고 나서 마루를 내려온다. 그리고 면앙정 주변을 둘러본다. 앞에는 여러 산들이 보인다. 먼 곳에 금성산이 있다.
이제 나는 다시 <면앙정가비>가 있는 곳으로 간다.
면앙정가(俛仰亭歌).
면앙정 주변의 산수와 사계절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읊으면서 선비의 호연지기를 노래한 가사. 가사의 표현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여 조선가사의 별미라고 알려진 가사. 정극인의 <상춘곡>의 시풍을 잇고, 정철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호남 가사문학의 정수를 보인 이 가사는 지금도 <중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면앙정가비>에는 앞면이 이렇게 써져 있다.
면앙정가비 俛仰亭歌碑
너럭 바위 위에
송죽을 헤헤고
정자를 언쳐시니
구름 달 청학이
천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는듯
옥천산 용천산
나린 물이
정자 앞 너븐 들에
올올히이 펴진드시
넙거든 기디마나
프르거든 희디마나
뒷면에도 가사가 이어진다.
쌍룡이 뒤트는 듯
긴 깁을 차 펴난듯
어드러로 가노라
므삼 일 비얏바
닫난듯 따르는 듯
밤낮즈로 흐르는 듯.
므조친 사정(沙汀)은
눈가치 펴�거든
어즈러은 기러기는
므스거슬 어르노라
안즈락 내리락
모드락 훗트락
노화를 사이 두고
우러곰 좃니난뇨
이 노래는 송순선생의 면앙정가중에서 1절이다.
이가원 근서
이 비에 써진 글은 면앙정가의 앞 대목이다.
여기에서 <면앙정가> 전문을 처음부터 자세히 감상하여 보자.
면앙정가
무등산 한 줄기의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치고 나와 제월봉이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들에 무슨 생각하느라고
일곱굽이를 한데 머움쳐서 무더기무더기 벌여 놓은 듯
가운데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 머리를 얹어 놓은 듯하네.
그 다음에 <면앙정가비>에 적힌 ‘너럭 바위위에 송죽을 헤치고...’ 가 나온다.
이어서 가사는 다음으로 연결된다.
넓은 길 밖 긴 하늘 아래
둘러 있고 꽂혀 있는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실물인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 숨거니 보이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어지러운 가운데
이름난 양하여 하늘도 두려워 않고
우뚝 선 모습이 추월산을 머리로 삼고
용구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어져 있는데
원근의 푸른 언덕에 머문 것이 많기도 많구나.
흰 구름 뿌연 안개 노을 푸른 것은 산 아지랑이리라.
많은 바위와 골짜기를 제 집으로 삼아 두고
나며 들며 아양도 떠는 구나.
다음으로 가사는 춘하추동 사계절에 대한 생활로 넘어간다. 봄에는 남여를 타고 좁은 길을 가는데 녹양에 우는 꾀꼬리 소리가 교태스럽다.
오르거니 내리거니 장공(長空)에 떠나거니
광야를 건너거니 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 저녁 햇볕[斜陽]과 섞이어
細雨(가랑비)조차 뿌리는 구나. 남여(藍輿)를 재촉해 타고
솔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하는 적에
綠楊(푸른 버드나무)에 우는 꾀꼬리는 교태 겨워하는구나.
여름에는 녹음이 짙은 때에 난간에서 낮잠을 잔다.
나무 사이 우거져 녹음이 짙은 때에
백척(百尺) 난간에서 긴 졸음을 내어 펴니
水面의 凉風 (시원한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 구나.
그리고 가을에 벼가 익은 들판이 퍼져 있다.
된서리가 빠진 후에 산 빛이 금수(수놓은 비단)로다.
황운은 또 어찌 만경(끝없는 들)에 퍼져 있는고.
어부피리도 흥에 겨워서 달을 따라 부는 것인가
겨울에는 눈 온 뒤의 풍경이 좋다.
초목이 다 진 후에 강산이 매몰커늘
조물주가 헌사하여(야단스러워) 빙설로(얼음과 눈) 꾸며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눈 아래 펼쳐졌구나. 건곤도 풍성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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