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유리왕, 도읍을 옮기다. - 중국 집안 국내성
우리 일행은 오녀산성을 뒤로 하고 서둘러서 길림성 집안시로 향한다. 국내성과 장군총, 광개토대왕비등을 본 다음에 통화에서 백두산 가는 야간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환인에서 집안으로 가면서 나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유리왕 이야기를 떠 올린다.
주몽은 북부여에 있을 때 예씨부인과 결혼 한다. 그리고 가족을 데리고 가지 못한 채로 피신을 가서 졸본부여에서 고구려를 세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태어난 유리는 주몽의 재위 18년(BC 19년)에 주몽을 찾아간다. 주몽은 동강 난 두 개의 칼 조각을 맞추어 보고 그가 아들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유리는 태자가 되고 예씨부인은 왕비가 된다. 졸지에 후비가 된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왕자를 데리고 졸본 땅을 떠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소서노를 나라를 세운 유일한 여자 제왕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소서노가 죽은 후에 미추홀에 자리 잡은 비류는 망하였고 하남 위례홀에 자리를 잡은 온조는 백제를 세운다.)
주몽이 BC 19년 그의 나이 40세에 죽자 유리는 왕이 되었고 재위 22년 (서기 3년)에 환인의 오녀산성에서 집안의 국내성으로 천도를 한다.
<삼국사기>에는 국내성 천도에 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을 가서 그 돼지를 �아 갔는데 돼지를 잡은 곳이 바로 국내 위나암 이었단다. 둘러보니 지세가 좋고 주변도 평평하여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한다.
집 가(家)자 한자는 돼지를 나타내는 시(豕)와 집의 지붕을 나타내는 면(宀)을 합한 글자이다. 돼지가 있으면 뱀과 같이 사람을 해치는 동물이 근접하지 못한다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집 주변에 돼지를 많이 길렀다 한다.
관광안내원은 유리왕이 도읍지를 국내성으로 옮긴 이유는 두 가지 이유라고 이야기 하여준다. 가장 큰 이유는 고구려의 국력이 커지고 백성들도 많아 져서 산악지대의 오녀산성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득권 세력인 졸본 부여 지역 호족들과 결별하여 더 큰 정치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는 것이다.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를 가니 집안시가 나온다. 집안시는 압록강 중류의 통구분지에 자리 잡고 있고 북한 만포시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용산(龍山), 북쪽에 우산(禹山), 서쪽에는 칠성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압록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천혜의 지형조건이다.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국내성은 장수왕이 427년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까지 424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이었다.
집안시는 고구려 고분의 집합소
한편 집안시는 고구려 고분의 집합소이다. 고분이 13,000개 정도이고 지금 남아 있는 것도 7,600여개 이며 왕릉급이 42개 이란다. 특히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장군총이 이곳에 있고 무용총, 각저총(씨름 무덤)등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벽화가 그려진 무덤들도 여기에 있다.
안내원은 우리에게 밭에 즐비한 고분들을 보라고 말하여 준다. 그러면서 미천왕의 고분과, 고국양왕의 고분인 천추묘를 알려준다. 이 고분들은 1,600여년이 지났으나 그런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그것은 청나라가 나라의 발상지인 집안시를 비롯한 백두산 일대를 1630년부터 200 여 년 동안 사람 출입을 금지시킨 덕을 톡톡히 입고 있다.
4시 반 경에 버스는 시내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보이는 곳이 국내성의 중심부인 고구려 유지(遺趾)공원이다. 고구려 유적을 찾으려고 옛 시청 자리인 이곳을 헐었으나 유적이 별로 나오지 않아 공원으로 만들었단다.
우리 일행은 <문화로>라고 표시된 길을 따라서 국내성 북쪽 벽을 구경하러 간다. 20만 명이 넘은 집안 시내는 온통 아파트 단지이다. 성터는 아파트 주변사이로 곳곳에 남아 있다. 국내성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지성으로서 동서남북에 총 길이 2.7km의 성벽을 쌓았고 성문은 6개 이었단다. 성벽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2004년 7월에 국내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잘 보존되고 있다 한다.
드디어 북쪽 성벽에 도착하였다. 나는 아파트 화단 쪽에 놓인 성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이 강이 바로 통구하 通口河 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2.5 Km 북쪽에 환도산성이 있다. 고구려의 성 체계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국내성은 평지궁성으로서 평상시 도성이고, 환도산성은 산성으로서 전쟁등 비상시의 도성이다.
(200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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