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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사 이야기

최인호와 최정호

 

 

 

비즈니스와 문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 최정호 · 최인호의 형/제/생/각/
달인의대화
지면을 빌려 고백하자면 최정호 박사와 최인호 작가를 만난 후 이 두 사람에게 반해버렸다.
몇 천 미터 암반수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깊디깊은 문화적 식견과 이보다 훨씬 더 깊은 형제애는 참 인상적이었다. 최근 책을 발간한 형 최정호 박사를 위해 기꺼이 인터뷰에 끌려나왔다는 최인호 작가. ‘비즈니스’와 ‘문학’이라는 동떨어진 분야에서 각각 최고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가족과 형제에 관한 얘기를 가슴으로부터 들었다.

 최정호 박사는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달인으로 통하는 전문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대우캐리어와 대우자동차 판매 사장을 거친 그는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해외 50여 국에서 국제적인 사업가로 명성을 날렸고, 지금은 한양대 산업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동생 최인호 작가 소개는, 너무 유명해 생략해도 될 것 같다. 인터뷰의 달인 최인호 작가는 이날 형을 위해 옷 색깔을 맞춰 입었고, 한남동 집필실도 인터뷰 장소로 기꺼이 제공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각별한 사이, 늘 형제간 대화 나누기를 좋아해
 

최인호_ 6남매에 삼형제였는데 우린 각별한 사이였어요. 형은 기업 쪽이고 저는 글 쓰는 쪽이라서 하는 일과 분야는 다르지만, 형은 문화적 코드가 워낙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와 통하는 게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형은 나보다 독서량도 많고 소문난 수재였어요. 고등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 서울대 음대 들어가라고 했을 정도로 노래도 진짜 잘했죠. 아마 음대 들어갔어도 좋았을 거야.(웃음)

최정호_ 최 작가와는 형제의 사연을 넘어서 학창시절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문화를 토픽으로 시대정신을 교류해왔습니다. 이러한 습벽은 사회에 나와 우리 두 사람이 작가와 비즈니스맨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장남기질 vs 차남기질

최정호_ 사실 저와 최 작가는 성격상 다른 점이 많아요. 저는 장남이니까 보수적인 데다가 책임감이  강하고, 반면 최 작가는 차남 기질이 있어요. 도전적이고 파격적이고… 그게 아마 저랑 다른 점일 거예요.
최인호_ 차남이면서 중간이라 어릴적부터 제가 손해본 게 참 많아요.리 삼형제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래서 형이 입던 교복을 다 물려받았죠. 한번도 교복을 사본 적이 없어요. 동생은 교복을 물려입으려 해도 이미 제가 입고 났을 땐 걸레가 되어 먼저 새 교복을 사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중간에서 나만 참 불쌍했네. 그리고 옛날부터 습작을 쓰면 형한테 보여줬어요. 형은 나의 제1의 독자였다고. 하지만 작가와 평론가 사이는 좋지 않은 법이죠. 저는 열심히 썼는데 형이 ‘이 부분을 지워라’ 하면 속으로는 욕도 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형은 수긍할 만한 얘기들을 많이 해줬어요. 날카로운 비평을 많이 해주었죠. 제 작품 중에 ‘별들의 고향’ ‘견습환자’ ‘겨울 나그네’ 같은 제목은 형이 다 지어준 거예요.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지만 형제간이니까…. 요즘은 인터뷰에 불려 다니면서 형을 빛내주고 있죠.
최정호_ 한창 영화가 뜰 때는 ‘겨울 나그네’라는 간판이 술집, 카페 등등 해서 모두 열다섯 개나 된다고 누군가 말해주더라고요.
최인호_ 특히 우리 형은 영화광이었는데, 형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그 영향을 받아 문화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형은 수업시간까지 영화 보다가 정학도 받았어요. 왜 그런 얘긴 안 해? 그런 게 인간적이지. 


지칠 때 힘이 되는 원천, 가족

최인호_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형은 중학생 때였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자상함 같은 건 잘 몰라요. 그런데도 아버지를 잊지 못하겠는 게 있다면… 우리 아버지는 가족이 누구 하나 잘못하면 가족을 모두 앉혀놓고 형부터 자기 밑의 동생에게 차례로 키스를 하게 했어요. 우리 아버지 참 웃기는 짬뽕이야. 형은 누나한테 키스하고 누나는 나한테 키스하고 나도 동생한테 키스했지. 어릴 땐 그게 참 계면쩍었어요. 무슨 외국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것이 참 희한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선명하게 기억나거든. 형은 어떨지 모르겠어. 또 사람은 살다 보면 나이가 주는 질풍노도의 시간이 있죠.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40대 때 저는 욕망의 화신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이렇게 안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힘은 가족이에요. 지치고 쓰러질 뻔했을 때 늘 힘이 되는 존재, 제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 건 가족이에요.
최정호_ 저 역시 늘 가족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최 작가가 어릴 적 얘기를 많이 했는데, 3년 전에 가족 모두 모여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던 일도 참 좋은 추억이었어요. 일주일 동안 온 가족이 모여 갔다 왔는데, 배 위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최인호_ 제가 우리 가족 이름을 붙였는데 ‘라틴’ 가족이라고. 모두들 기질이 라틴스러워. 노래하고 떠들썩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우리 형 별명이 카루소였어요. 노래 한 곡 쫙 뽑으면 너무 멋있지. 형, 지금 한 곡 불러봐. 그리고 자기가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 닮았다고 스스로 ‘그레고리 최’라고 쓰고 다녔죠.
최정호_ 얼마 전엔 사람들이 신문에 나온 사진 보고 마이클 더글라스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난 하지만 그레고리 펙 닮았다는 얘기가 더 좋아.
최인호_ 우리 형제들이 나만 빼고 다들 잘생겼어요. 지금은 내가 더 매력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말이야. 형은 눈도 크고 코도 크고 그레고리 펙 닮았는데 저는 트위스트 킴 닮았다는 얘길 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어요. 게다가 형은 학교 다닐 때 1등만 했으니까, 난 공부 말고 글이나 써야겠다 싶어 글을 쓴 거예요. 형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냐 하면, 학창시절 제가 형 영어 사전을 물려받았어요. 제가 찾는 단어마다 이미 형이 밑줄을 그어 놓은 거예요. 한번도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단어를 찾아본 적이 없어요. 에라… 난 글이나 써야겠다 결심했죠. 형은 나한테 좋은 의미로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미래는 문화의 시대, 서로간 문화 스킨십 필요
  
최인호_ 형은 지금도 알아주는 문화 애호가예요. 얼마 전 21세기는 ‘문화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형이 말한 적 있어요. 저는 형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예전엔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잘해야 한다 그랬는데 이젠 영어만 잘해야 되는 게 아니죠.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문화입니다. 
최정호_ 제가 처음 비즈니스 할 때는 수출 쪽에 있었는데, 외국 소위 바이어들과 만나면 살벌한 비즈니스를 하잖아요. 비즈니스를 하다가 점심 때나 저녁때 커피 브레이크할 때는 살벌한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이때부터 인간적인 체취가 나오는 거예요. 1998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에 참가했을 때 일이에요. 저녁식사 자리에서 독일인 최고경영자가 소설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무대가 다보스인 걸 아느냐고 물었어요. 전 ‘마의 산’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아득해졌지요. 그런데 대학시절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을 읽은 게 떠오르더라고요. 토마스 만의 소설을 영화화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본 것도 생각나고. 그 얘길 했더니 대화가 풀렸습니다.
최인호_ 제가 7~8년 전부터 형한테 글을 좀 써보라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이번에도 이런 얘기들을 모아서 책을 냈는데 참 기분이 좋아요. 외국에서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은퇴 후 글을 써서 사회에 기여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불후의 작품을 쓴 사람들을 보면 현역에서 은퇴한 후 뒤늦게 글을 쓴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양질의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특히 형이 앞으로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너무 잘 쓰면 질투나잖아. 난 질투가 많거든. 

글_모은희 기자 사진_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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