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가 없었다면 이충무공도 없었으리.
설날에 고향 여수를 방문하였다. 성묘를 한 후에 모처럼 충무공 이순신 유적지를 두루 찾았다. 먼저 오동도 분수대 광장에서 거북선과 함께 서 있는 ‘약무호남 시무국가’ 비석을 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에 이순신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적은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 역시 없었으리.”라는 글을 보면서, 나는 “여수가 없었다면 이충무공도 없었으리.” (약무여수 시무이충무공)라는 생각을 하였다.
여수는 이순신에게 왜군과의 해전에서 첫 승리를 안겨준 곳이다. 수군 통제영인 진남관(임란 당시는 진해루라 불림)은 거북선을 처녀 출전 시킨 곳이고 한산대첩의 출발지이다. 이순신은 이곳 여수에서 군관민승이 합심하여 구국 救國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런 만큼 이 충무공 유적지 여수는 호국의 본산지이다. 충민사는 1601년에 세워진 최초의 사액사당이고,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같이 있는 타루비는 이 충무공을 애도하는 신하들이 세운 눈물의 비이다. 흥국사, 석천사 또한 조선시대에 천시 받았던 승려들도 나라를 구하는 데 일조한 호국불사이다. 충민사 유물관 입구에 조각된 군관민승의 국난극복 부조를 보면서 나는 ‘조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였다.
한편 이충무공은 효도가 지극한 분이었다. 송현리 마을의 이충무공 어머니 변씨가 살던 집은 충무공의 지극한 효성을 알 수 있는 유적지이다. 충무공은 전쟁 중에도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면서 자주 문안 인사드렸다는 일화는 그가 쓴 난중일기에도 나온다.
충과 효의 이충무공 유적의 본산지 여수를 둘러보면서, 여수는 2012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역사적 항구임을 새삼 느낀다. 앞으로 여수시에서 이충무공 유적지 탐방 시티투어를 마련하고, 비디오를 제작하여 널리 홍보를 한다면 여수 관광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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